[최보식의언론=검비봉 논설위원]
오랜만에 집회에 참가했다. 동화면세점부터 대한문까지 태극기 물결이다.
광화문 나가는 길에 전철 노인석에 앉았더니, 앞자리의 부부가 자리를 잡으며 의미 담긴 눈빛으로 나를 건너다 본다. 집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눈을 감고 수년 전 조국, 문재인 반대집회를 매일 참가할 때를 떠올려 본다.눈 뜨고 코 베임을 당하듯이 탄핵으로 정권을 잃고, 마치 미아를 찾아 다니는 부모의 심정으로 추우나 더우나 애를 태우던 집회였다.
정권이 바뀌고 오늘처럼 집을 나서는 심정은 그때와는 다른 양상으로 가슴이 답답하다. 과거의 그자리로 돌아가서 또 무엇을 구하는 외침으로 태극기를 혼들어야 하나. 각주구검, 잃어버린 그 자리에 다시 가는 일의 반복은 어떤 연유인가.
“인간이 그렸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완벽하고 거대하다.”
남미의 신비 나스카의 지상화(위 사진)를 평한 말이다. 드넓은 벌판에 그려진 도형물은 우주인의 작품이라는 말도 있다. 우주인이 수백 Km 떨어진 공중에서 레이저를 쏘아서 그렸을 수도 있다. 원주민들의 솜씨라면, 수많은 인원과 지휘부가 동원되었을 것이다.
원주율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전제에서, 원을 제대로 그리려면, 원심(圓心)에 선 지휘부가 제대로 된 위치에 서야 올바른 원을 그릴 수 있다. 지휘하는 자의 위치와 정신이 오락가락할 경우, 원주를 그리려고 늘어선 많은 국민들은 헛수고만 하고 만다.
종로에 중국의 오성홍기처럼 거대한 붉은기가 부대를 이루고 행진하는 이 난국에 언론과 사법은 지름과 반지름을 제시하는 컴퍼스의 역할을 해야 한다. 다리가 부러진 컴퍼스로는 아무것도 그릴 수 없다.
수많은 함성과 열망이 행여 헛수고가 되는 날, 언론과 사법은 그 책임을 두고두고 면하기 어렵다. 되지도 않는 잡설을 사설이라고 올리지 마라. 어느 편의 손에 죽을지 모르는 살얼음판이라면 올곧은 담론을 펴고, 용기 있고 떳떳한 재판을 하다가 죽어라. 당신들이 이 땅 위에 그려놓은 그림은 천년 후에도 남을 것이다.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노파가 옆에 와서 앉는다.
“집에서 TV로 보시지 힘들게 왜 나오셨어요?”
“마음이 갈급해서 집에만 있을 수가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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