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게임? 외국산 게임?
우리는 상품에 ‘국산’이나 ‘외국산’ 이란 단어를 붙이곤 한다. 게임도 마찬가지여서, 미국에서 만들어진 게임은 미국산,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게임은 국산…이렇게 라벨을 달곤 한다. 얼마 전 중국에서 출시된 「검은 신화: 오공」이라는 게임의 흥행을 두고 일부 한국 언론들이 “중국산 게임의 침공”, “국산 게임의 위기” 등 시선을 확 끄는(?) 제목을 내놓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우리는 게임에 단일 국적을 부여하는 데 무척이나 익숙하다. 필자도 그런 류의 사람 중 하나이다. 어릴 적부터 필자가 해온 게임들에는 으레 국산, 일본산, 미국산이라는 타이틀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세계 모든 이들이 나와 같지는 않다는 사실도 (이제는) 알고 있다. 물론 어릴 적 습관이 지금도 남아 여전히 게임을 이야기할 때 여전히 나라 이름을 덧붙이곤 하지만 말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북유럽의 핀란드라는 나라를 예로 한번 들어보겠다. 「클래시 오브 클랜 (Clash of Clans)」, 「브롤 스타즈 (Brawl Stars)」를 개발 및 서비스하고 있는 핀란드 대표 게임 회사 슈퍼셀(Supercell)은 게임에 “Made in Finland”라는 타이틀을 굳이 강조하지 않는다. 「클래시 오브 클랜」의 주요 핵심 테마인 ‘바이킹’도 따지고 보면 옆동네 스칸디나비아 3국의 이야기이지 핀란드와는 관련이 없다. (참고: 핀란드는 바이킹 역사와 별다른 접점이 없다. 핀란드 사람들은 이를 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바이킹마저 너무 추워서 거른 나라’라는 말을 하곤 한다.) 비슷하게 「앵그리 버드(Angry Bird)」의 로비오(Rovio), 「앨런 웨이크 2 (Alan Wake 2)」의 레메디 엔터테인먼트 (Remedy Entertainment)도 핀란드라는 나라 이름을 강조하지 않는다. 외국에서 ‘어? 그게 핀란드에서 만든 게임이야?’라는 반응이 나와도 현지 언론과 게임 업계 관계자, 심지어 핀란드 유저들도 비교적 무덤덤하게 대응하는 편이다. (물론 사람 마음이란 건 어쩔 수 없는지라 ’00가 핀란드 게임’이라고 누가 인정해주면 속으론 살짝 으쓱하는 느낌이 들긴 한다곤 한다.) ‘핀란드산’ ‘국산’ 게임을 더 하라고 국가나 현지 언론이 독려를 하는 현상도 없다. 옆 나라 스웨덴의 「마인크래프트(Minecraft)」가 핀란드 아이들 사이에서 널리 플레이되더라도 그것을 굳이 ‘외국산’ ‘침공’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냥 게임일 뿐이다. 마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처음에 나는 이 현상을 매우 기이하게 생각했다. 아니, 왜 게임에 “Made in ( )”를 언급하지 않는 걸까? 왜 그걸 상관하지 않을까? 지난 몇 년 간 필자가 꾸준히 궁금해왔던 이 주제를 가지고 나름 썰(?)을 풀어 내보고자 한다.
유럽 게임 산업
유럽 게임 개발자 연맹 (European Games Developer Federation)의 자료에 따르면, 유럽은 모바일(68%), 콘솔(58%), 그리고 PC 게임(48%) 플레이어들이 골고루 분포된 게임 시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래 사진 참고). 2022년 기준, 유럽 게이머의 평균 연령은 약 32세로 파악되며, 게임 관련 매출의 83% 이 모바일 인앱 구매 또는 온라인 구매에서 발생할 정도로 디지털 게임 유통이 일반화되어 있다. 나아가 유럽 현지 게임사의 상당 수가 PC 또는 모바일 플랫폼 게임을 주력으로 개발 및 서비스한다. 콘솔 개발 비중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이다. (단, 예외가 있으니 폴란드다. 이 곳은 유럽에서 거의 유일하게 콘솔 게임 개발이 주류로 인식되는 곳으로 꼽히는데, 이는 「위쳐 (Witcher)」와 「사이버펑크 2077 (Cyberpunk 2077)」을 만든 폴란드 국민게임사 CD Projekt의 압도적인 체급 덕분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럽은 27개 나라가 소속된 유럽연합(EU) 경제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성공해 단일 시장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중 상당 수가 ‘유로(EUR)’라는 단일통화까지 쓰고 있다. 더 나아가 유럽 솅겐 (Schengen) 협정을 맺은 국가들은 기업과 개인들의 계좌간 송금과 결제는 물론이오 국가 간 이주가 자유롭다. 이들은 심지어 전화요금과 모바일 데이터도 서로 국내요금 만 낸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국가 마다 인건비와 물가, 세율은 또 천차만별이다. 나아가 각 지역 별 또는 국가 별로 문화, 사회관, 국가체계 등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또 서로 다른’ 특수한 환경을 이해해야만 유럽 게임 시장도 이해할 수가 있다.
유럽의 IT산업은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에서든지’ 업무가 가능하다는 점, 즉,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이점을 십분 살려 유럽 전역에 걸쳐 분업을 하는 공정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고급 전문인력과 인프라가 풍부한 나라에 본사를 두고, 낮은 세율과 인건비를 제공하는 나라에 아웃소싱(외주) 파트너를 두는 것이다. 이러한 범-EU적 다국적 개발 공정은 또 다른 IT산업인 게임 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유럽 게임사들은 유럽 전역에 분포하고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잘 알려진 게임 대기업들은 대개 유럽의 서쪽과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대체적으로 서유럽과 북유럽이 사회적, 산업적 인프라가 풍부하고 사업하기에 안정적인 법률 체계와 자본 시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들 지역은 인건비가 높고 물가, 생활비가 높다는 단점이 있다. 반대로 동쪽으로 갈 수록, 남쪽으로 갈 수록 물가와 인건비가 비교적 저렴하다.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에서도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를 응용해, 서유럽과 북유럽의 게임 스튜디오들은 직접 고용 인력을 적정 수준으로 맞추고 그 대신 다른 유럽 국가에 위치한 에이전시와 외주 개발자들을 활발하게 활용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 파리에 법인을 둔 게임사가 서버는 아이슬란드에, 기획과 개발은 스웨덴에, 2D와 3D 그래픽은 스페인에, QA(Quality Assurance)는 폴란드에서 진행하는 식이다. 마케팅, PR, 현지화 외주는 기본이고 게임 주요 콘텐츠 (예: 소스코드) 들도 이렇게 생산된다. 실무자들이 하루 근무 시간 중 상당 부분을 다른 나라에 있는 개발자들과 원격으로 소통을 해야 하기에 게임 개발과정에서 영어 사용이 강제될 수밖에 없다. 만들어지는 게임도 소수 언어 보다는 유럽 전역에서 공동으로 사용될 수 있을만한 중립언어, 또 북미라는 거대한 시장 진출도 점칠 수 있는 바로 그 언어, 영어 지원이 우선시된다.
핀란드의 게임사 슈퍼셀(Supercell) 사례를 다시 한 번 보자. 2010년대 중반 「클래시 오브 클랜」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던 시기, 슈퍼셀에 직접 고용된 인력이 약 200-300여 명 남짓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는 현지에서 유명하다. (최근에는 사람을 좀 더 뽑아 약 500명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슈퍼셀 내부에서 「클래시 오브 클랜」 서비스에 직접적으로 동원된 인력도 세 자릿 수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나머지는 신규 게임 개발 또는 다른 게임 서비스에 투입되어 있었다. 왠만한 게임회사 인력이 백 또는 천 단위에서 오가는 한국 게임업계와 비교해보자면, ‘어떻게 그 적은 인원으로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하는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상당한 부분의 게임 개발과 서비스 공정을 외주(아웃소싱) 한 것이다. 즉, 범-EU 다국적 개발공정이 슈퍼셀의 초기 성장에 결정적인 환경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2020년 출시된 「폴 가이즈(Fall Guys)」 게임을 개발한 미디어토닉(Mediatonic)사는 영국과 스페인에 스튜디오를 둔 게임 회사이다. 그리고 이 게임을 퍼블리싱한 것은 미국에 거점을 둔 에픽 게임즈 (Epic Games)이다. 그런데 또 이 게임의 음악은 핀란드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개발 업무 중 소통은 영어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자, 그러면 「폴 가이즈」는 영국 게임일까? 미국 게임일까? 아니면 스페인 게임일까? 아니면 게임 노래만 똑 떼어내어다가 이걸 ‘핀란드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상황이 이러하니 자연스럽게 유럽 게임 개발자, 더 나아가 게이머들도 ‘국산 게임’에 대한 개념이 한국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희박한 편이다. 현지 유럽 게이머들(나아가 현지 정치인, 공무원들)에게 게임의 ‘국적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오히려 ‘그 게임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가 (= 일자리를 창출하는가)’ 또는 ‘그 게임이 우리 나라에 세금을 내는가 (= 소득세, 법인세 등을 어느 나라에 내는 가)’ 등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그 게임이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부흥 한다거나,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해준다거나 하는 상징적인 것들은 ‘있으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부차적인 문제 정도로 인식된다.
어찌보면 게임이 특정한 나라 한 곳에서 만들어지질 않기에 ’00산 게임’이라는 명칭을 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다. 거기에 더 해 유럽은 역사적, 문화적 국경이 현 정치적 국경과는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나라 문화와 역사를 다룬 국산 게임!’이라고 말을 잘못했다간 ‘그게 왜 네 역사인가?’라고 의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단 적인 예로, ‘모차르트’의 음악은 독일 음악일까 오스트리아 음악일까? (답: 엄밀히 말하자면 둘 다 아니다. 그냥 그런거 생각하지 말고 즐기자!)
물론, 출처가 아주 명확해서 그 나라의 자부심과 직결되는 일부 지적재산(IP)이 있긴 하다. 폴란드의 국민 소설겸 게임 「위쳐 (Witcher)」 시리즈, 벨기에의 자부심 「틴틴 (Tintin)」과 「아스테릭스 (Asterix)」, 핀란드의 자랑 귀여운 「무민 (Moomin)」을 소재로 만든 콘텐츠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위쳐」, 「아스테릭스」, 「무민」 게임들도 한 나라에서가 아닌 유럽 전역에서 개발되고 있다. 최근에 출시된 「무민」 게임은 핀란드가 아니라 라이선스 계약을 한 노르웨이 게임사에서 만들었고, 필자는 작년 모 학술회에 방문했다가 벨기에 만화 소재의 게임을 개발 중이라는 스페인 개발사 관계자를 우연히 만났었다. ‘왜 벨기에 만화 원작의 게임을 스페인에서 만드는가?’ 물어봤더니 “Why not? (왜? 안됨?)”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 음, 그렇지…? 안되는 건 아니지만, 나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홍길동전」을 원작으로 하는 게임이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서 개발된다고 하면 우리는, 우리 언론은,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유럽의 게임 개발 인력은 언제나 이동한다
서로 연결된 단일 시장이나 서로 다른 인건비가 주어지는 지역이기에, 유럽 게임 개발자들도 기회가 된다면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이동한다. 게임 경력이 쌓여서 시니어 개발자가 되었다면, 단순히 게임 에셋이나 소스코드를 만드는 실무 수준이 아니라 게임을 기획하고 팀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이 증명된다면, 인건비가 높은 유럽 대륙 서쪽과 북쪽으로 이동하며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이다. 그 나라에 남아서 자국의 게임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사명감을 지키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상당 수가 ‘영어만 된다면’ 이주를 통해 더 큰 무대에 오르고 몸값을 높이는 방향을 선택한다. 서로 국경이 붙어 있으니 육로로 손쉽게 옆 나라로 넘을 수 있겠다, EU 국적자라면 유럽연합 내에서 비자 없이 이사가는 것도 자유로우니 이들을 어찌 막으랴.
때문에 핀란드의 경우, 게임 산업 종사자의 30%가 외국인으로 파악되고 있다 (출처: Neogames Finland). 이들은 주로 경력 6년 차 이상의 중견 ~ 시니어 게임 개발 인력들이며 유럽 각지에서, 심지어 유럽 너머 (북미, 아시아)에서 포트폴리오를 쌓고 핀란드로 넘어온 소위 ‘고급인력’ 이민자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운영되는 핀란드 게임산업은 핀란드에서 가장 많은 세수입을 올려주는 효자 산업으로 등극해 매년 연말정산 시즌마다 핀란드 주요 언론들의 극찬을 받는다. (참고: 노르딕 복지모델의 국가인 핀란드는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과 기업들을 칭찬하는 정서가 있다. 이들 덕분에 복지제도가 힘을 얻는다는 논리에서다.) 동유럽의 경우 동-서 가교 역할을 하는 국가에 게임 개발 인력들이 쏠리곤 하는데, 독일과 국경을 맡대고 있는 체코와 폴란드가 대표적이다. 체코는 아예 외국인 비중은 절반에 가까운 무려 40%에 육박하며 (출처: GDACZ), 이들 중 상당 수가 동유럽이나 남유럽 등 자체 게임개발산업이 작거나 미미해 외국에서 주니어-중견 커리어를 쌓고 있는 자들로 파악되고 있다.
게임 산업의 다국적 현상은 이제 유럽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덩달아 핀란드, 스웨덴, 폴란드 등 소위 ‘게임 성공 사례’를 보유한 유럽 국가 사례들이 연달아 나오면서, 해외 개발 인력을 얼른 수입해 하루라도 빨리 게임이라는 고부가가치 산업을 성장시키려는 유럽 국가들도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소위 ‘반이민 정서’가 현대 정치 담론을 장악하고 있는 와중에서도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IT 및 게임 관련 인력 수급과 관련된 이민정책을 고치고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디지털화가 특히 느린 독일이 최근 IT 기술자에 대한 이민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겠다고 나서는 것, 북유럽 국가들이 보수적인 이민 정책에도 불구 고급인력에 대해선 예외 조항을 내걸고 있는 것 (그리고 그 조항이 게임산업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 모두 이러한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한쪽에선 이민을 반대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철저히 자국 이득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유럽 게임산업에게 남겨진 숙제
물론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외주 개발이 활발하다는 것은 특정 게임 개발사에 ‘직접 고용’되는 인원 수가 비교적 적다는 것이고, 이는 개발 인력 간 노동 환경의 격차를 야기한다. 같은 게임을 만들더라도 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근로 조건과 조직 문화에 노출되어 있으며, 누구는 게임 크래딧에 이름이 오르고 누구는 누락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이는 결국 개발자 간의 계급화와 서열화, 고용 주체와 책임 이슈, 고용 안정성 문제로도 이어진다. 한 예로,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당시 유럽 게임산업에 비대면 근무가 자리잡는 양상 또한 서유럽과 동유럽 간에 차이가 존재했다. 서쪽과 북쪽의 ‘직접고용’된 주체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재택근무로 전환될 수 있었던 반면, 동쪽과 남쪽의 ‘간접고용’된 개발자들은 오히려 더 통제된 환경에서 개발을 이어나가야 했다. 동유럽에서 관련된 내용을 조사한 연구원의 말에 의하면, 보안 유지를 명목으로 근무 시간 동안 방에서 나갈 수 없다거나 원격 통제되는 컴퓨터에서 실시간 카메라 감시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 앞으로도 범-EU 다국적 개발공정은 당분간 유럽 게임산업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나의 유럽’이라는 슬로건의 EU가 가질 수 있는 독특한 개발 공정이기도 하거니와, 자본주의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비용대비 효율적인 노동력 운용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양상이 조금은 변화하고 있는 조짐도 보이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게임 개발환경의 격차와 인권 문제가 점차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노동계를 넘어) 업계 내에서도 점차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개발자가 즐거워야 만들어지는 게임도 재미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말마따나 일할 맛이 나는 개발 환경이어야 더 좋은 퀄리티의 게임도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이에 ‘아웃소싱’ 보다는 ‘파트너’라는 표현이 쓰이기 시작하고, 갑을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로서의 파트너쉽을 논의하는 게임 기업들도 점차 늘고 있다.
그 와는 별개로, 현재 유럽 게임 산업에서 가장 큰 변수가 또 하나 있으니 바로 전쟁이다. 한 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개발인력은 많은데 인건비가 매우 저렴하다는 이점 덕분에(?) EU 국가가 아님에도 불구 유럽 게임 개발 외주 에이전시 산업의 핵심 지역 중 하나로 손 꼽혔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테트리스(Tetris)」의 고향답게 우수한 게임 개발인력이 많기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두 나라간에 전쟁이 터져 버렸고, 당장 유럽에 본사를 둔 게임 개발사들의 러시아 서비스가 대부분 중단되었다. (물론 그래도 러시아 게이머들은 여전히 VPN을 통해 해외 게임들을 즐긴다고 한다) 러시아에 위치한 게임 개발 아웃소싱 회사들은 문을 닫거나 중립국가로 이전하였으며, 우크라이나의 젊은 게임 개발자들의 상당 수가 전쟁에 동원되면서 순식간에 개발 인력 공백이 생겨났다. 그렇게 2023년은 유럽 게임 산업에서 유례없는 혼돈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몇 십년을 유지해 왔던 다국적 게임 개발공정이 뿌리 채 흔들리는 이 상황을 과연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와 걱정, 다양한 시도들이 시작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혼돈을 겪고 바야흐로 전쟁이 발발한지 1년이 넘게 지나고 있다.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긴 하지만 지금 현지 게임업계 반응을 보면 ‘그래도 2023년 초반 보다는 예측이 가능한’ 상황 같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 듯하다. (어찌보면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무덤덤해져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자, 그럼 과연 2025년 유럽 게임산업은 어떻게 또 변화할 것 인가. 앞으로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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