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삼성전자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인공지능(AI)반도체 사업 주도권 확보 난항으로 인한 반도체 위기, 스마트폰과 PC 수요 감소, 3분기 실적 부진 등 잇단 악재가 쌓이면서다. 한국 IT산업 선도기업의 부진에 국내외 투자자들 사이에선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고위 임원진을 중심으로 변화와 쇄신에 대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불안정한 대외적 경제 상황, 반도체 및 스마트폰 업황 등은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이에 삼성전자가 4분기 재도약에 성공할 수 있을지 전 세계 산업·증권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삼성전자 주가,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있다”
삼성전자 사업 부진의 그림자가 가장 먼저 드리운 곳은 ‘주식시장’이다. 현재 삼성전자 주가는 7일 기준 5만7,300원대를 횡보하고 있다. 한때 ‘10만전자’를 꿈꿨던 삼성전자가 ‘5만전자’로 반토막난 것이다.
이 같은 삼성전자 주가 하락은 여러 요인이 지목된다. 그중 가장 직접적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3분기 실적 부진이다. 지난달 31일 삼성전자가 발표한 3분기 실적은 연결기준 매출 79조1,000억원, 영업이익 9조1,800억원으로 집계됐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8%, 278% 증가했다. 특히 매출은 역대 분기 중 최대치를 달성했다.
표면적으로 삼성전자 3분기 실적은 우수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부진을 면치 못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 12% 줄었다. 뿐만 아니라 증권가 전망치에도 크게 못 미쳤다.
최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전망했던 삼성전자 3분기 매출, 영업이익은 각각 80조원, 10조7,717억원이다. 실제 실적은 각각 1.25%, 18.4% 부족하다. 역대급 매출에도 불구하고 ‘어닝쇼크’를 기록한 것이다.
스마트폰과 PC, 반도체 사업 약화가 실적 부진의 주 원인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삼성전자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메모리 경쟁력’ 약화가 뼈아팠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삼성전자 3분기 실적 발표에 따르면 반도체 사업 부문 영업이익은 3조9,000억원. 증권가 전망치였던 4조2,000억원보다 약 7.2%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3분기 어닝쇼크와 주가하락, 반도체 사업 부진 모두 ‘고대역폭 메모리(HBM)’ 경쟁 약화가 주요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Trendforce)’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3%, 삼성전자 38%, 마이크론 9%로 나타났다.
38%의 점유율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도체 1위 기업’으로 꼽히던 삼성전자 입장에선 상당히 부진한 성적이다. 여기에 3위 마이크론의 추격도 매섭다. 마이크론은 지난 6월 2025년 HBM 시장 점유율 25%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한 바 있다.
증권가 반응도 심상치 않다. 연초 증권가 9만원 후반 목표 주가를 설정했다. 하지만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줄줄이 8만원 초중반대로 목표 주가를 하락 조정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주요 증권사 8곳은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11% 가량 낮췄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부진에 국내 반도체 소부장 업계 불안감도 커지는 상황이다. 이건재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산업 성장에 대한 불안함과 지금쯤은 구체화됐어야 할 삼성전자의 내년 투자 계획이 축소 혹은 보류되고 있다”며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의 반등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 위기 타개 전략은 ‘AI’… ‘지식그래프’ 기술력 확보에 속도
삼성전자 역시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여러 전략 마련에 고심 중이다. 특히 4차 산업시대 게임체인저로 꼽히는 ‘인공지능(AI)’ 경쟁력 확보에 기업 명운을 걸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일 열린 삼성전자 창립 55주년 기념식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부회장)의 창립기념사에서도 이 같은 의지가 담겼다.
이날 기념사에서 한종희 부회장은 “미래 10년을 주도할 패러다임은 AI”라며 “AI는 버블과 불확실성의 시기를 지나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일상화되는 ‘AI 대중화’ 시대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직원 모두가 사활을 걸고 우리의 본질인 기술 리더십을 더욱 강화해 한치의 부족함 없는 품질 경쟁력을 확보하자”고 주문했다.
4일 개최된 ‘삼성 AI 포럼 2024’에서 강조된 삼성전자의 AI전략은 ‘지식그래프(Knowledge Graph)’ 기술력 확보다. 지식그래프는 각 데이터 개체(entity) 사이의 관계(relation)를 그래프의 선(edge)으로 나타내는 개념이다. 여러 정보가 각각 연결돼 있어 빠른 정보 검색과 추론을 가능케해, 생성형 AI기술의 핵심 개념으로 꼽힌다.
쉽게 말해 지식그래프는 지식을 ‘그래프’ 형태로 표현한 것이라 이해하면 된다. 예를 들어 ‘고양이’에 대한 지식그래프는 ‘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한다’, ‘고양이는 발톱이 있다’, ‘고양이는 귀엽다’ 등의 지식을 하나로 엮어 일종의 마인드맵처럼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이해준 삼성리서치 마스터는 “거대언어모델의 효율적인 학습을 위해서는 고품질의 데이터, 효율적인 아키텍처, 안정된 훈련 기법 등이 필요하다며”며 “이를 통해 비용과 성능을 동시에 개선할 수 있다”고 지식그래프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식그래프 기술력 확보를 위해 삼성전자는 지난 7월 영국 스타트업 ‘옥스퍼드 시멘특 테크놀로지(OST)’를 인수했다. OST는 2017년 옥스퍼드 대학교 이안 호록스 교수, 보리스 모틱 교수, 베르나르도 쿠엔카 그라우 교수 3인이 공동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데이터를 사람의 지식 기억 및 회상 방식과 유사하게 저장, 처리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그래프 기술을 보유했다.
김대현 삼성전자 삼성리서치 글로벌 AI센터장(부사장)은 “생성형 AI 기술 발전에 따른 디바이스 AI의 일상 변화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며 “다가오는 AI 시대의 새로운 가능성을 논의하고 공유해야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 4분기, 최악은 지나가나… 임원진 경영쇄신은 ‘필수 과제’
다만 오는 4분기에 대한 전망은 아직 긍정적이다. 하나투자증권은 “삼성전자의 HBM 매출 비중도 착실하게 확대되고 있고 주요 고객사향 공급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 만큼 메모리 중심의 실적 및 투자심리 개선은 가능할 것으로 보여진다”며 “주가의 핵심인 메모리 부문의 대내외 환경이 최악을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유진투자증권은 “삼성의 시간과 시장의 시간, 그리고 삼성의 언어와 시장의 언어에는 분명 아직 간극이 있어 보인다”며 “삼성이 극적 변화를 통해 이 간극을 줄여나 가게 된다면 삼성도 점차 예전의 위용을 회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혁신 의지에 대해 아직까지 완전한 믿음을 주기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최근 ‘혁신’ 전략을 계속해서 발표하지만 HBM, AI 부문 모두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진 못하고 있어서다. 특히 일각에서는 심각한 반도체·AI 인력 유출과 조직간 유대감 저하, 임원진들 사이에서 만연한 보신주의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 임직원 불만 역시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은 1일 성명을 통해 “회사 창립 55주년을 맞아 대표이사는 임직원 모두에게 ‘사활을 걸자’는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정작 정작 위기를 외친 임원진은 3,880억원의 성과금을 수령했다”며 “과연 누가 사활을 걸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표이사는 기술 리더십 강화와 변화, 쇄신을 강조했으나 임원진은 이미 막대한 성과금을 받으며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며 “임직원 모두에게 절실함과 승부근성을 요구하기 전에 경영진부터 그 각오를 보여야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말로만 변화와 혁신을 외치는 것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현장의 직원들은 경영진의 공허한 약속이 아니라 실질적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신뢰할 수 없다”며 “직원들의 헌신을 요구하기 전에 경영진부터 제대로 된 책임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나투자증권도 “단기적으로는 HBM의 매출 확대를 통한 펀더멘털 변화가 필요하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회사의 체질 개선 및 기술 리더십 회복이 중요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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