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 유명한 외식 기업 매물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거래도 활발하다. 고물가와 경기침체로 외식업계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자, 유명 프랜차이즈를 헐값에 사들이려는 시도가 늘어난 탓이다.
7일 외식업계에 따르면 명륜진사갈비와 매드포갈릭, 요아정, 컴포즈커피 같은 유명 프랜차이즈는 올해 하반기 이후 모두 새 주인을 만났다.
지난 7월 아라치치킨을 운영하는 삼화식품은 트릴리언즈 지분 100%를 400억원에 인수했다. 요아정을 품에 안았다. 트릴리언즈는 2021년 요거트 아이스크림 브랜드 ‘요거트 아이스크림의 정석(요아정)’을 설립한 회사다.
요아정은 인수 당시 매장 수가 470여개였다. 삼화식품은 인수 직후 8~9월 두달 동안 170여개 매장을 새로 열었다. 지난달에도 70여개 매장과 신규 개점 계약을 맺었다. 요아정 인수 이전 삼화식품 핵심 브랜드였던 아라치킨은 매장 수가 85개다. 삼화식품은 요아정 인수로 단숨에 외식사업 부문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사모펀드(PEF) 운용사 포레스트파트너스는 지난달 외식 프랜차이즈명륜진사갈비 인수에 나섰다. 명륜진사갈비는 뷔페식 양념돼지갈비 전문점이다. 2017년 1호점을 열었고, 현재 국내와 해외를 합쳐 60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포레스트파트너스는 명륜진사갈비 구주와 신주를 인수하기 위한 배타적 협상권을 확보한 상태다. 외식업계에 따르면 명륜진사갈비 몸값은 구주 1200억원, 신주 400억원을 합쳐 1600억원 수준이다. 포레스트파트너스는 현재 인수 자금 조달을 위해 주요 기관투자가(LP)를 구하고 있다.
한국맥도날드는 운영자가 바뀌었다. 카타르 기업 카말 알 마나는 지난달 맥도날드 아시아·태평양·중동 지역 총괄법인(맥도날드APMEA)가 가지고 있던 한국맥도날드 운영권을 넘겨받았다.
알 마나 그룹은 카타르와 튀르키예에서 맥도날드를 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맥도날드의 주요 투자자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이번 운영권 변경 이후, 알 마나 그룹이 탁월한 경영 성과를 보여주면 운영권을 넘어 지분 매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 밖에도 임마누엘코퍼레이션은 지난 9월 매드포갈릭 브랜드를 운영하는 MFG코리아 지분 100%를 500억원에 사들였다. 저가 커피 체인 컴포즈커피는 필리핀 글로벌 외식기업 졸리비에 팔렸다. 매각가는 4700억원으로, 3년 전 경쟁사였던 메가커피 몸값 1400억원 대비 3배를 넘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내 인수합병 시장에는 외식 기업 매물이 쌓여있다.
버거킹은 2021년부터 매각을 추진 중이다. 가맹점 700개가 넘는 노랑통닭도 새 주인을 찾고 있다. 맘스터치, 피자나라치킨공주 역시 시장에 나왔다. 맘스터치는 희망 매각가로 1조원을 주장했다.
인기 베이커리 브랜드 런던베이글뮤지엄도 올해 상반기부터 전략적 투자자(SI)와 재무적 투자자(FI)에게 인수 의사를 묻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식 기업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부터 인수합병 시장에서 사모펀드(PE)에 인기가 많았다.
외식업은 어음이나 외상없이 인수 즉시 매출이 발생한다. 가맹점 로열티, 물류 대금은 꼬박꼬박 현금으로 들어온다. 자연히 현금 흐름을 살피기 좋아 사업 안정성이 높다. 여기에 식자재 납품처를 바꾸거나, 인력을 효율화하는 식으로 시스템을 바꾸기도 쉽다.
과거 사모펀드들은 외식 기업을 헐값에 사들인 후 이렇게 몸값을 높여 다시 팔았다. 그 과정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차익을 거뒀다.
가령 유니슨캐피탈코리아(UCK)는 2014년 음료 프랜차이즈 공차를 사들여 2019년 6배 차익을 보고 매각했다. 이 인수 후 매각건은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케이스 스터디로 쓰일 정도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VIG파트너스는 2012년 두산그룹이 가지고 있던 버거킹을 1000억원에 인수했다. 이후 3년 만에 홍콩계 PEF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210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앵커에쿼티스 역시 4500억원을 투자했던 투썸플레이스를 1조원에 칼라일그룹에 넘겼다.
국내 치킨업계 1위 bhc치킨도 주인이 수차례 바뀌었다. bhc치킨은 2013년 제너시스BBQ가 미국계 사모펀드 로하틴그룹에 팔았다. 이후 2018년 박현종 전(前) 대표이사가 엘리베이션에쿼티파트너스, MBK파트너스 등과 손잡고 스스로 인수했다. 현재 최대주주는 2020년 지분율을 60% 가까이 끌어올린 MBK파트너스다.
그러나 2021년 이후 인건비를 포함한 물가가 급격히 오르면서 외식 기업 인기는 꺾였다. 세계적으로 오른 식자재 가격과 구인난도 인수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국내 식음료 기업 관련 PEF 투자는 2019년 13억원에서 2020년 3100억원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2021년에는 741억원으로 반의 반토막이 났다. 이듬해 2022년에도 1100억원에 그쳤다. 올해 1분기에는 아예 외식 기업 관련 거래가 없었다.
사모펀드가 재차 외식 기업에 입맛을 다시기 시작한 시점은 올해 2분기부터다. 외식업 경기가 바닥을 치기 시작한 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외식산업경기지수는 75.6을 기록했다. 2023년 2분기 83.26에서 9%포인트(P)가 떨어졌다. 외식산업경기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밑이면 매출이 줄어든 곳이 늘어난 곳보다 많다는 뜻이다.
앞으로도 낙관할 상황은 아니다. 식재료 가격은 계속 뛰고 있다. 올해 9860원이었던 내년 최저임금은 1만30원으로 오른다.
외식 기업 투자 경험이 있는 한 금융권 관계자는 “모든 인수합병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두 가지를 꼽으라면 첫 번째는 성장 가능성, 두 번째는 파는 쪽과 사는 쪽이 희망하는 가격 차이”라며 “올해 외식업 경기가 이전보다 더 안 좋아지자, 인수 희망가를 높게 불렀던 기업들이 매각가를 낮춰서라도 일단 팔고 보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외식 기업 손바뀜이 매장을 이용하는 일반 소비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모펀드는 특성상 단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뒤 되팔아 수익을 보는 경우가 많다. 불황에 빠진 업계에 큰 자본을 불어넣는 긍정적인 효과 뒤에는 무리한 사업 확장과 비용 절감 같은 근시안적 매출 전략도 숨어있다.
서비스의 질보다 가격을 올리거나 외형적인 성장에 집중하다 보면 가맹점주와 상생이나 소비자 서비스 개선을 위한 투자는 뒷전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외식기업을 인수한 사모펀드가 가맹점주 혹은 경영진으로 남은 설립자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한국외식업중앙회 마포구지회 관계자는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은 몇 년 뒤 또다시 매물로 나오고, 다른 곳에 팔리는 패턴이 반복된다”며 “경우에 따라 새로운 계약 조건을 제시하거나, 재계약을 해주지 않아 매장이 문을 닫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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