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자신들이 합의하고 통과시킨 금융투자소득세(소득세법 개정안)를 폐지하는 데 동의하기로 했다고 밝혀 파문이다. 금융투자소득세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얻은 일정 금액(주식 5000만 원 등)이 넘는 소득에 과세하는 제도로 2020년 통과됐으나 유예를 거듭하다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었다.
민주당은 금투세를 시행하는 게 원칙에 맞지만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고, 야당 비판의 정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그동안 부자감세 정책을 목청껏 규탄하고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을 비판하면서 정작 불로소득인 거액의 금융투자소득에 부과하겠다는 금투세를 스스로 폐지하는 모순을 저질렀다는 비판이 나온다. 자신들이 발의하고 자신들이 폐지하는 자기부정이자 불로소득, 투기세력에 대한 투항이라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4일 최고위원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참 고민이 많았다”며 “원칙과 가치에 따르면,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강행하는 것이 맞겠습니다만, 지금 현재 대한민국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고, 또 여기에 투자하고 주식시장에 기대고 있는 1500만 주식 투자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아쉽지만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동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 문제를 유예를 하거나 또는 개선 시행을 하겠다고 하면 끊임없이 정쟁 수단이 될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대표는 “원칙과 가치를 저버렸다고 하는 개혁진보진영의 비난, 비판, 저희가 아프게 받아들이고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앞으로 더 하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 말을 하기에 앞서 금투세 시행이 맞는다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는 “땀흘려 번 소득에 대해서도 과세를 하는데, 자본소득에 대해서 과세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시행하는 것이 맞는다”고 역설했고 주가 하락의 원인이 금투세 시행 탓이 아니라 정부 정책에 있다며 △주가조작 만연 △‘우량주 장기 투자’가 어려운 우리 증시 구조 △경제산업 미래의 불확실 △분단 국가, 군사적 긴장이 있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민주당을 규탄하고 나섰다. 조국혁신당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는 차규근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표를 향해 ‘프레지덴셜하다’(대통령답다는 뜻으로 쓰이는 표현)는 말에서 깨어나라며 실망이라고 비판했다. 이 표현은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5월28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국민연금 여당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에 “최근 이 대표가 굉장히 ‘프레지덴셜(대통령처럼)’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 것을 뜻한다.
차규근 의원은 “여야가 합의를 통해 도입한 금융투자소득세를, 시행도 안 해보고 폐지하자는 것은 프레지덴셜한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라며 “민주당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불합리한 세제를 그대로 둔 채 자본이득에 눈감아주는 그런 세상이냐”고 반문했다.
차규근 의원은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펑크로 세수 경보가 울리고 증권거래세도 폐지되는 마당에 금투세까지 폐지하면, 이재명 대표의 대표 철학인 기본소득 정책은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것이며, 13조 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민생회복지원금은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것이냐”며 “모든 결정은 일부 반대자들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금투세 폐지는 깊은 고민은 없이 눈앞의 표만 바라본 결정”이라고 성토했다.
정혜경 진보당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금융투자소득세는 조세원칙을 구현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자 주식시장의 고소득자에게 부과하는 세금”이라며 “금투세의 대상은 1500만 개미투자자가 아니다. 연 50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얻는 주식 투자자 0.9%(6만 5000명)에 부과하는 세금”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정 원내대변인은 “금투세가 있었더라면 주가조작을 통해 부정한 부를 축적한 김건희와 그 주변 인물들에게도 세금이 부과되었을 것”이라며 “금투세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주식투기세력, 고액 투자자들일 뿐이다. 윤석열의 부자 감세를 비판한 민주당이 금투세를 포기한 것은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정의당도 “‘윤석열 정부의 부자감세에 협력한 것”이라며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정의와 ‘원칙과 가치’로부터 생명력을 얻는 정치 신뢰도 함께 폐지됐다”고 비판했다.
민변 복지재정위원회와 민생경제위원회, 민주노총, 참여연대도 이날 공동 논평에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선언에 나선 이재명 대표를 규탄한다”고 비판한 뒤 “정부의 ‘부자감세’를 비판하면서도 뒤에서는 동조해왔던 민주당이 이제는 앞에서도 정부여당과 다를 바 없는 선택을 하겠다면, 부자감세를 저지하고 목 놓아 주장하는 민생회복지원금을 추진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단체들은 금융투자소득세가 시행되면 큰손이 떠나 주가가 하락한다는 금투세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두고 “2023년 말 기준 상장주식 10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는 0.39%에 불과하고, 이미 한국조세재정연구원도 금융투자소득세가 주식시장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이 없다고 분석한 바 있다”며 “그런데도 다시금 주식시장이 어렵다는 이유로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을 불과 58일 남기고 폐지하자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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