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붐의 대표 수혜기업인 SK하이닉스가 9월 신입·경력 채용 지원 서류 접수를 마감한 지 한 달 만에 경력 채용 공고를 내고 서류를 접수받는다. 올해만 5번째 경력직 모집이다. 최근 반도체 업계에서 SK하이닉스로 이직 러시가 확대되면서 블랙홀처럼 고급 인력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모양새다.
SK하이닉스는 10월 25일부터 경력사원 채용 공고를 내고 서류 접수를 받고 있다. 서류 마감은 11월 4일까지다. 반도체 유관 경력 2년 이상 보유자 대상으로 모집 중이다. 근무 지역은 서울과 경기 이천 등 2곳이다.
경력 채용 직무는 ▲회로 설계 ▲프로세스 통합(Process Integration, D램) ▲애플리케이션 엔지니어링 ▲B2B(기업 간 거래) 영업 등이다. 회로 설계와 B2B 영업 직무는 모두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관련된 업무다. B2B의 경우 HBM 수요·공급 관리를 수행한다.
SK하이닉스는 9월 10~23일 신입과 주니어 탤런트(반도체 유관 경력 2~4년 차 경력사원) 지원자를 모집했다. 7월에도 신입·경력 사원을 모집한 적 있다. 최근 자사 선호 분위기를 파악하고 물 들어올때 노를 젓는 SK하이닉스의 행보다.
SK하이닉스로 인재 쏠림이 뚜렷해진 것은 회사의 달라진 위상도 있지만 일한 만큼 보상 받는 공정한 성과급 체계와 투명한 재원 구조 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연봉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성과급 산정 기준을 ‘경제적부가가치(EVA)’가 아닌 영업이익으로 3년 전 과감하게 바꾼 것이 결정적이다. 2021년 내부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성과급 산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주장에 회사가 적극 화답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상·하반기 각각 반기별 생산량 목표치와 영업이익률을 지표로 PI를 책정한다. 영업이익률이 30%를 초과할 경우 기본급의 150%를 받을 수 있는데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최고 수준인 150% 지급이 유력하다.
반면 삼성전자는 성과급 제도인 OPI(초과성과이익금)를 초과이익 20% 한도 내에서 지급한다. 초과이익은 EVA에 따라 산정된다. EVA는 세후 영업이익에서 자본비용이 차감된 값을 뜻하는데 산정방식은 비공개다. 앞서 삼성전자 DS부문은 7월 사내 공지를 통해 기본급의 최대 75%를 성과급으로 책정한다고 발표했다.
비유하자면 맛있게 차린 밥상에 손님이 몰린 격이다. 인기 많은 고기반찬 위주로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린 이천쌀밥집(SK하이닉스)이 입소문을 탔고, 비용 절감으로 갈비 품질과 양이 줄어든 수원갈비집(삼성전자)의 메리트가 사라진 것이다.
사측과 임금 교섭 중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도 성과급 지급 기준을 EVA 대신 영업이익 기준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를 지속하고 있다.
손우목 전삼노 위원장은 5월 29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임금 1~2% 인상이 아니며 일한 만큼 공정하게 지급하라는 것이다”라며 “경쟁사인 SK하이닉스도 영업이익 기준으로 성과급 제도를 운영하는데 삼성전자는 EVA 기준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공정하고 투명한 노동의 대가를 원한다”고 말했다.
3분기 실적에서도 양사의 희비가 엇갈리면서 더 많은 보상을 원하는 반도체 인력의 SK하이닉스 쏠림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3분기 7조300억원에 이르는 영업이익을 거뒀다. 삼성전자는 증권가 예상치(4조원대)에 못 미친 3조8600억원에 그쳤다. 올해 3분기 누적으로도 SK하이닉스(15조3845억원)는 삼성전자(12조2200억원)의 영업이익을 앞질렀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HBM 개발 및 수율 개선에 필요한 반도체 고급 인력의 쏠림 현상이 이미 장기화 한 상황이다”라며 “삼성전자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삼성맨’이라는 자부심에 걸맞은 처우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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