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 바다, 싱싱하게 죽는 밴댕이
강화는 인천이다. 별스런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이 있다. 인천 시내에서 강화로 가려면 경기도를 거쳐야 한다. 김포를 밟고 지나야 강화다. 그러다보니 강화를 경기도로 편입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소속은 인천시인데 규제만 많지 혜택이 없어 차라리 경기도민이 되면 살림이 나아지리라는 논리다. 요즘은 가라앉았지만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인천시 입장에서 강화는 놓칠 수 없는 보물섬이다. 풍부한 역사를 품은 이야기 보따리며 산과 물이 어우러진 자연경관도 빼어나다. 인삼과 쌀을 비롯 특산물로도 인천이라는 광역도시의 매력을 보태 준다. 강화가 빠진 인천을 상상해 보면 무언가 허전하다. 옹진군에 점점이 뿌려져 있는 섬들과 강화라는 섬은 차이가 있다. 강화는 면적도 크거니와 섬 같지 않은 섬이다. 한때 왕도였던 품위 탓인지 의젓하고 육중하다. 마니산만 봐도 그리 높지 않으면서 산세에서 오는 위압감이 남다르다. 강화는 기개가 넘치는 땅이다.
강화로 모여드는 세 강줄기도 기세를 뽐낸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모인 ‘삼합수(三合水)’ 가 바다를 만나 기수지역을 이룬다. 영양분이 풍부한 데다가 적당히 짜고 어느 정도 심심한 물에는 물고기가 가득하다. 그물을 걷으면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가히 황금 바다다. 해질녘, 노을빛에 반사된 생선 비늘은 금빛 찬란하다. 건져 올리면 은색으로 휘황하다. 강화 바다는 금은보화를 품었다가 어부들에게 내어준다. 숭어도 뛰고 망둥이도 뛰는 이 바다에 밴댕이가 떼 지어 몰려온다. 새우를 쫓아 몰려든 무리를 수면 위로 끌어내면 성질 급하게 숨을 거둔다. 밴댕이는 싱싱하게 죽는다. 저장 방법이 마땅치 않던 시절, 강화에서만 맛볼 수 있는 횟감이 된다. 인천 연안에 밴댕이횟집이 무수하지만 강화라서 더 고소하게 씹힌다.
▲ 주안과 백운에 있던 연탄불 밴댕이구이역
밴댕이는 구이로도 일품이다. 궤짝으로 받아 쌓아놓고 수북하게 접시에 담아 연탄불에 구워 술안주로 먹는다. 인천의 주당들은 한때 밴댕이가 뿜어낸 구수한 냄새를 옷처럼 걸치고 귀가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냄새난다는 지청구를 감수해야 했다. 개중에 더러 점잖은 이들은 택시를 이용했다. 술에 절은 구취와 밴댕이구이 기름기에 쩔어 있는 옷가지는 코를 틀어막게 했다. 기사님께 머리 조아리고 창문 내리고 숨을 참는 게 그나마 예의였다. 집에 도착해서도 냄새를 지우지 못하니 겉옷부터 벗어들고 휘휘 바람에 흔들다가 들어갔다. 밴댕이구이 냄새는 다음날까지도 배어 있어 전날 술자리를 반추하게 한다. 저녁 어스름 무렵이 다시 오고 주당들은 주안역, 백운역 밴댕이구이 거리로 또 모여든다.
밴댕이구이는 천 원 몇 장이면 소주 두어 병 안주 거리가 되었다. 살과 잔가시를 함께 씹으면 얕은 맛이 술을 재촉하고, 술이 들어가면 얕은 맛으로 입을 달랜다. 옛 사람들은 입에 들자마자 달게 끌리는 맛을 얕은 맛이라고 했다. 가벼워 보이는 표현이지만 밴댕이는 두께가 얇아 씹는 순간 맛이 올라온다. 씁쓰레한 소주 맛과 단맛 강한 밴댕이 살, 잔가시 속에 들어있는 고소함을 동시에 음미하게 한다. 가성비 높고 속도감 있게 입을 채우는 그 맛이 술꾼들을 불러 모은다. 연탄불 위에 직접 올려 구우면서 냄새로 한 잔 마시고, 뭉텅 베어 물어 잘근잘근 씹으며 소주를 털어 넣다가 질리면 주인장이 가르쳐 준 대로 발라낸 살만 맛본다. 불 위에서 잘 익은 밴댕이살은 대가리를 쥐고 훑어내리면 보드라운 살만 남는다. 양파쪽을 곁들여 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거나 소금 살짝 뿌려 먹으면 살이, 말 그대로 살살 녹는다.
백운역 바로 아래 번성했던 구이 거리는 사라졌다. 부평공원 앞 쌍굴다리 쪽에 남아있는 밴댕이 횟집들에는 젊은이들이 모여든다. 다종다양한 포장마차 술집들이 들어선 그 곳에서 옛 밴댕이 거리가 뿜어내던 냄새를 다시 맡기 어렵다. 다닥다닥 붙어 있어 옆 테이블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빼곡했던 원통형 연탄불구이 상에선 낮에도 기름진 생선 냄새가 났다. 십 리 밖에서도 맡을 수 있다는 밴댕이구이 냄새는 또 다른 역이 되어 취객들을 세웠다. 밴댕이구이역, 머물다 갈 수밖에 없는 냄새로 골목과 거리를 채웠던 그 역이 그리운 이들은 연안부두를 찾거나 강화 풍물시장을 찾는다. 회와 구이, 게다가 무침까지, 밴댕이로 맛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춘 밴댕이 전문점이 객들을 맞는다. 한 자리에서 강화 바다와 백운 거리를 동시에 만날 수 있어 편하기는 한데 옛 정취가 떠오를 땐 어딘가 서운하다.
▲ 강화 풍물시장, 회와 무침, 구이로 차린 세상의 모든 맛
인천 연안부두에서 명성을 얻은 밴댕이 전문점들은 무침이 일품이다. 연안부두에서 크게 성공해 구월동으로 밴댕이 골목을 확장했다. 곁들임으로 나오는 박하지 게장과 된장국이 별미다. 외지 관광객들은 밴댕이무침에 엄지척 만족감을 표한다. 미나리, 양배추 등 야채가 넉넉하게 들어가고 초고추장으로 버무린 무침에서 어슷 썬 밴댕이가 씹힌다. 달고 고소한 무침에 갓 뜸 들인 흰 쌀밥을 비벼 먹는 맛이 기가 막히다. 참기름을 한 바퀴 두르고 쓱쓱 비벼 크게 한 술 떠 입에 넣으면 우물우물 입을 움직일 때마다 갖가지 맛이 올라온다. 밴댕이는 비리지 않은 비린 맛으로 음식 속 감초 역할을 맡는다. 야채가 씹히고 참기름이 밥알을 감싸고 도는데, 달면서 살짝 비린 듯한 밴댕이살이 이 사이에서 맛을 뿜어낼 때, 박하지 게장 한 입 깨물고, 된장국으로 입을 가시면 세상 모든 맛이 입안을 다녀간다.
강화 풍물시장에는 밴댕이 전문점들이 성업 중이다. 회와 무침, 구이를 고루 맛볼 수 있는 정식을 메뉴로 개발했다. ‘옛날 집’은 상호만으로도 만만치 않은 이력을 보여 준다. 무허가 포장집에서 시작해 오늘에 이른 게 무려 45년이다. 풍물시장에 자리 잡은 것만도 20년 세월, 연륜은 밴댕이를 다루는 짧은 회칼이 날렵하게 포를 떠내는 데서 일거에 드러난다. 옛일을 말하는 입은 소리를 내고 손은 부지런히 밴댕이 뼈와 살집을 발라낸다. 밴댕이를 손에 쥐고 선도가 괜찮으면 통째로 살을 발라 횟감으로 쌓고, 살이 무르다 싶으면 무침용으로 썰어 둔다. 강화에서 잡은 밴댕이로 판매 물량을 채우던 호시절이 가고 외지 밴댕이를 쓴다니 말소리가 씁쓸하다. 낮은 수온이 밴댕이 육질을 탱탱하게 해 주던 강화 것하고 요즘 물건들은 다르단다. 다행히 무침을 개발해 손님들 만족도를 높였고 관광객들은 회무침 비빔밥에 빠져 있다.
밴댕이는 크기도 작고 두께가 얇아 신선도가 맛을 좌우한다. 이전에는 냉동 방법이 없어 주로 젓갈로 소비했다. 김장속에도 밴댕이를 넣었다. 젓갈을 잘게 잘라 밥 위에 얹어 먹으면 숙성한 바다향이 물큰 올라온다. 단맛이 풍부해서 말려서 국물 요리에도 쓴다. 선도가 좋을수록 비린내가 없어 횟감으로 쓰는 기준이 엄격하다. 깻잎에 밴댕이회 여러 점을 넉넉하게 올리고 마늘과 풋고추와 양념장을 싸서 우적우적 씹으면 달착지근한 육질과 깻잎 향이 묘하게 만난다. 쌈채소 없이 밴댕이회만 먹을 때는 간장맛을 조금 보태면 단맛이 더 진하게 올라온다. 이렇게도 먹고 저렇게도 먹다 보면 금방 한 접시가 동이 난다. 밴댕이구이는 꼬리만 떼고 아래서부터 베어 물면 한 마디를 통째로 씹을 수 있다. 입안을 구운 생선향으로 가득 채우는 맛이 각별하다. 밴댕이 젓갈에서 ‘뼈까지 삭혀 녹아내린 맛’을 구했던 이들은 구운 한 마리를 통째로 씹으며 ‘뼈와 살이 타들어 간’ 절정의 맛에 감동한다. 입가심하듯 무침에 밥을 비벼 밴댕이 한 상 정식을 해치우고 나면 강화가 왜 밴댕이로 유명세를 얻었는지 수긍이 간다. 강화의 맛이자 인천을 대표하는 맛, 밴댕이는 회만으로도, 구이만으로도, 무침만으로도 이미 넘친다. 그 셋을 한 상에 받았으니 밴댕이가 준 호강에 입꼬리가 귀에 걸려 내려오질 않는다.
/글·사진 임병구 (사)인천교육연구소 이사장·고재봉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강사·유사랑 시사만평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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