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예상을 밑돈 성장률을 기록한 가운데, 실적 부진의 원인이었던 수출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한국은행은 수출 호조세가 유지되는 가운데 일시적으로 부진했다고 판단하지만, 시장에서는 수출이 둔화세로 접어들었다고 보는 모습이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이 발표한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예상을 밑돈 실적을 낸 가운데 ‘성장률 쇼크’의 원인으로 부진했던 수출이 지목됐다. 실질 수출은 전기 대비 0.4% 하락하면서 2022년 4분기(-3.7%) 이후 7분기만에 마이너스 전환됐다.
◇ 시장 “모멘텀 잃고 있다” vs 한은 “양호한 흐름”
3분기 GDP를 보고 시장 일각에서는 수출이 둔화세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자회사인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3분기 한국 경제가 예상보다 부진했다고 평가하며 “수출은 모멘텀을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 증권사들도 마찬가지다. 신한투자증권은 3분기 GDP와 관련해 “상반기 성장세를 견인한 수출 부진이 나타났다”고 평가했고, 한화투자증권은 “수출 둔화에 건설투자 부진이 더해지며 성장이 약화됐다”고 했다.
반면 한국은행은 시장과는 다른 판단을 내놓고 있다. 한은은 3분기 GDP 발표 8일 전인 지난 16일 자체 블로그에 올린 ‘엇갈린 경제신호 속 경기방향 찾기’ 글에서 “수출 호조가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향후 경기 흐름에 대해 “수출이 양호한 흐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민간소비와 설비투자가 회복흐름을 재개”한다고 전망했다.
지난달 24일 GDP 발표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수출이 호조세라는 평가는 계속됐다. 신승철 경제통계국장은 “수출 관련 불확실성이 최근 많이 발생하고 있어서 그런 부분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히 살펴봐야겠다”면서도 “수출 호조세가 당분간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는 게 일반적”이라고 평가했다.
수출을 보는 한은과 시장의 시각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번째는 명목 수출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통관수출 등 명목지표는 당해 연도의 시장가격에 최종생산물의 수량을 곱해 산출한다. 반면 실질GDP의 항목 중 하나인 실질 수출은 가격을 기준년도(2020년)로 고정시키고 수량을 곱해 구한다. 가격 효과가 통제돼 물량의 변화를 잘 잡아낸다는 특징이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9월 통관수출은 1년 전보다(통관수출은 계절조정을 하지 않은 값이라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을 사용한다) 7.5% 늘면서 12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분기별 수출 증가율도 2분기 10.1%에서 3분기 10.7%로 높아졌다. 10월 수출도 증가세를 이어갔다. 산업부가 1일 발표한 10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한국의 수출액은 575억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4.6% 증가했다. 올해 1~10월 누계 수출은 5662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1%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두 번째로 실질 수출 둔화세가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한은은 2023년 1분기부터 정보통신(IT) 품목과 반도체 등을 중심으로 재화수출이 꾸준히 증가하다가 전분기대비 한 번 역성장 한 것이므로, 수출이 둔화세라고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봤다. 신 국장은 “1년간 수출이 쭉 증가한 탓에 잠시 조정된 것”이라면서 “수출 부진이나 수출 침체로 가는 신호라고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했다.
◇ 생산활동 보려면 GDP, 상품가치 보려면 통관수출
실질(GDP)과 명목(통관수출) 중 어떤 것을 보는 게 적절할까. 경제의 생산활동을 파악하는 데는 실질이 더 적절하다는 평가가 많다. 명목에는 가격 변동이 포함돼있어, 생산량이 늘지 않더라도 전체 수치가 증가할 수 있어서다. 예컨대 A국가에서 작년과 올해 생산량이 나란히 100이었고 이를 전부 수출했다고 하자. 그런데 올해 물가가 5% 올랐다면 실제 생산량이 늘지 않았는데도 통관 수출은 105가 된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향후 방향성을 보려면 앞으로 나올 지표를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원론적으로는 실질, 즉 물량을 기준으로 보는 게 좋다. 단순히 물가가 올랐다고 해서 경제 전체의 생산량이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도 “향후 방향성을 보는 데 중요한 것은 금액보다는 물량”이라고 했다.
그러나 통관수출도 중요한 지표로 봐야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명목과 실질 중 무엇을 봐야하는지에 대해서 정해진 답은 없다”면서 “아무리 상품을 내다팔아도 단가가 떨어져서 상품의 가치가 떨어지면 의미가 없다. 이럴땐 가격에 수량을 곱한 가치를 보는 것이 맞다”고 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도 “일반 사람들은 실질 수출보다 명목 수출 증가율로 많이 얘기하지 않나”면서 “수출 금액 자체는 계속해서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물량이 조금 줄어들었다고 해도 3분기의 일시적인 효과일 수 있다. 수출 경기 자체가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실질과 명목지표가 상반된 모습을 보이면서 경기 흐름을 읽어야 하는 한은의 고심은 깊어질 전망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2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3분기) 수출 물량이 떨어진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굉장히 고민 중”이라면서 원인을 면밀히 분석해 향후 전망을 보완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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