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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 너머의 수사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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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취재진의 카메라 뒤로 검찰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취재진의 카메라 뒤로 검찰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언론을 구성하는 요소의 대다수는 미국에서 비롯했다. 창피한 일은 아니다. 흥선대원군이 아닌 다음에야 해외 문물 수입을 꺼릴 이유가 없다. 제대로 수입하면 우리의 맥락으로 소화하여 수출할 수 있다. 문명의 발전이 원래 그렇고, 한국도 그럴 수 있다는 걸 우리는 로제의 ‘아파트’에서 중독적으로 확인한다. 한국식 운운하는 게 더 큰 문제다. ‘한국식 민주주의’나 ‘한국식 재벌 주도 경제’ 같은 군사 정권의 레토릭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제대로 수입하지 못한 채 ‘한국식’에 머무는 현상이 탐사보도에도 있다. 1970년대 미국에서 본격화된 흐름을 2000년대 들어 국내에 소개한 선구적 기자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 번역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 한국말에서 ‘탐사’는 모호하고 광범위하여 다소 한가한 단어다. 지리산에서 곤충 채집하는 일도 탐사다. 한국 언론계에 뿌리내리지 못한 그 문물의 정확한 번역은 영어 단어 그대로 ‘수사 보도’(investigative report)’가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수사는 증거를 찾아 고발하는 일이다. 원래 검찰, 경찰의 일이다. 그들이 본분을 버릴 때, 기자가 나서 독립적으로 수사하자는 게 수사 보도다.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폭로는 백악관, 의회, 검찰이 손 놓은 선거 부정을 기자들이 직접 증거를 수집해 보도한 것이고, 그래서 수사 보도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이에 비하면, 한국 기자들이 탐사보도라고 부르는 대부분은 어떤 이슈를 파고드는 ‘심층 보도’(in-depth report)에 가깝다.

▲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
▲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

심층 보도의 확산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이를 수사 보도와 뒤섞어 접근하면 곤란하다. 깊고 넓게 취재하는 것으로 충분한 심층 보도와 달리 수사 보도에는 필수 요건이 있다. 기자의 직접 취재를 통해 복수의 실체적 증거를 확보해야 수사 보도가 가능하다. 검·경 수사에만 의존한 것은 고발 보도일 순 있어도 수사 보도는 아니다. 기자 스스로 수집·검증한 내용을 담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련자 한 사람의 말에 기댄 기사도 진정한 수사 보도가 아니다. 검찰이 기소하는 수준에 상응하는 기사를 쓰려면 교차 증거, 또는 복수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식 탐사보도’로 평가되는 과거의 ‘게이트 보도’ 가운데 상당수는 검찰이 흘린 정보를 받아 쓴 결과였다. 이를 탐사보도의 전형으로 여기는 풍토를 그대로 두면, 언론을 조종해 세상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믿는 ‘서초동 (검찰) 편집장’의 세상이 반복될 뿐이다. 그런 망상이 검찰의 정치화를 불렀고, 정치화된 검찰과 정치적으로 공생한 언론이 오늘의 한국 정치를 낳았다. 그 수준을 넘자는 게 수사 보도인데, 이를 구현할 ‘심문 인터뷰’의 시절이 때마침 왔다.

수사 보도하려면, 문서와 기록부터 찾아야 한다. 여러 문서나 기록에서 혐의점을 발견하는 건 수사의 기초다. 그다음 주변 인물을 만나 심문한다. 이는 문서에 드러난 증거를 교차 확인하는 과정이다. 문서 확보와 주변인 심문의 순서는 바뀔 수 있다. 문서에서 인물을 발견하고, 심문을 통해 새 문서를 확보할 수 있다.

혐의자 심문은 최후 단계다. 유능한 수사관이라면 자백이 없어도 죄를 물을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한 뒤에야 혐의자를 대면한다. 수사 기자의 방법도 다르지 않다. 다만, 자백 진술을 포기할 순 없다. 앞선 글에 적은 것처럼, 심문의 핵심은 ‘비교’에 있다. 과거의 말과 지금의 말, 이 문서와 저 문서, 기록과 진술의 차이를 기자 스스로 파악하여 물어야 한다. 일반적이고 우호적이며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해, 복잡하고 도발적이며 결정적인 질문으로 넘어갈 것이다. 이 과정을 끈질기게 반복할 것이다.

▲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태극기와 검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태극기와 검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마지막으로 공소장을 잘 적어야 한다. 수사 보도하는 기자의 공소장은 기사다. 시민이 기사를 읽고 판결할 것이다. 검증된 문서 증거, 복수의 진술 증거를 제시하되, 혐의자의 방어권도 보장해줬다는 점을 적어야 한다. 수사 보도는 한 건의 기사가 아니라 여러 건의 기사에 의해 누적적으로 완성되지만, 개별 기사는 최대한 종합적이고 완결적이어야 한다. 잘못된 공소 사실 하나가 수사 전체를 물거품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검사의 입, 관련자의 단편 증언, 하나의 문서에 기대어 1990년대식 탐사보도에 머문다면, 무책임한 검찰 수사를 넘는 수사 보도는 불가능하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건 쓰레기통에서 꽃 피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외국인들이 비웃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의 수사 보도는 어떨까. 이번엔 과연 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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