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는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고 갈등을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서 괴롭힘 여부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기준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에 국내외 괴롭힘 판단(판정, 판례) 사례 등에 대한 분석 및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먼저 국내외 직장 내 괴롭힘 판단 사례를 조사·수집해 괴롭힘 판단기준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괴롭힘 성립 요건별 또는 행위 유형별 판단기준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법원 등의 판례, 판정례 이외에도 해외 행정기관 등에서 판단을 위해 활용 중인 세부 지침을 찾아 내용과 적용 방법 등 확인·분석할 방침이다.
최근 노동부 국정감사에서는 괴롭힘 판별 기준에 대한 언급되기도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 현황에 따르면 금지법 시행 후 5년 간 고용부에 접수된 사건은 4만3446건이다. 이 가운데 처리완료된 사건은 4만2957건이다.
처벌의 종류를 살펴보면 △개선지도 10.2%(4362건) △과태료 1.4%(603건) △검찰송치 1.87%(800건) 등이다. 신고 취하는 30.5%(1만3009건)으로 조사됐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기타’로 처리된 건수다. 기타에는 5인 미만 사업장에 해당해 근로기준법에서 제외되거나 혹은 조사가 불가능한 경우, 법 위반사항이 없는 경우 등이 해당한다. 기타로 처리된 사건은 56.8%(2만4183건)으로 절반 이상에 달했다.
이 중 ‘법 위반사항 없음’은 1만2805건으로 30% 수준이다. 즉, 10건 중 3건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은 셈이다. 이에 괴롭힘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법이 시행 중임에도 실효성이 떨어진다 게 일각의 목소리다.
특히 송치된 사건 가운데 일부만 기소로 이어지면서 전체 처리 완료 사건 중 기소율은 0.78%에 그쳤다.
이에 노동부 김민석 차관은 지난 10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현장에서 보면 (괴롭힘 신고 처리 과정이) 행정 낭비라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다. 불미스러운 행위로 징계를 받는데 징계 절차상에서 괜히 문제를 삼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는 게 많다”며 “그런 부분에서 본다면 지속성, 반복성 등 기준을 두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노동계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제도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5년 맞이 논평을 내고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이 근절되지 못하고 오히려 신고 건수가 늘어나는 주요 원인으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법 적용 제외,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모호한 기준 등을 언급했다.
따라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근기법 적용 제외 사업장 노동자의 직장 내 괴롭힘 보호방안 마련 △직장 내 괴롭힘 법적 판단기준 명확화 △소규모 사업장 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2차 가해 구제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부 노동계는 요건을 추가하는 것에 우려하는 입장을 내놨다. 직장 내 갈등과 괴롭힘의 경계에서 피해 사실 입증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현행 금지법의 괴롭힘 인정 기준이 모호한 점은 공감했다.
노동 관련 전문가들이 소속된 직장갑질119는 지난달 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노동부에 이 같은 반대 입장을 담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개선 및 제도 운용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들 단체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5년째인 지금까지도 회사나 노동부에 괴롭힘 피해를 신고했다는 응답은 10%대를 넘기지 못하고 있으며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은 사업주의 조력이나 동료의 증언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행정적 편의를 위해 지속·반복성을 요건에 포함해 입증 난도를 높이는 것은 법 취지를 훼손하고 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직장갑질119 상담 사례를 보면 이미 일선 현장에서는 근로감독관들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지속·반복성’을 직장 내 괴롭힘 판단 근거로 내세우며 괴롭힘 신고를 사실상 차단하고 불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다만 현행 금지법의 괴롭힘 인정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했다.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 위원장인 박성우 노무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괴롭힘 금지제도는 사업장 내 자율적 규범 시스템임으로,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우려된다”며 “괴롭힘을 당했음에도 신고조차도 망설이는 이들도 많은 상황에서 가해자 처벌, 징계 등이 뚜렷하게 규정하지 않고 기준에 반복성, 지속성만 추가하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인정 기준이 모호한 부분이 있어 이를 확대하는 것은 필요하다. 다만 가해자에게 ‘반드시 엄벌을 내리겠다’ 식의 처벌 중심이 아닌 피해자를 보호하고 조직 문화 개선이 본 취지인 만큼 이에 방점을 두고 제도가 작동돼야 한다”며 “5인 미만 등 소규모 회사, 비정규직 등 제도 적용이 어려운 기업까지 대상 확대는 물론 행위자에 대한 조치에 대한 실효성과 그에 대한 섬세한 설계 그리고 안내, 홍보까지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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