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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없는 박물관, 미래를 잇다] 8. 관인문화재생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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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일 포천시에 있는 화적연에서 열린 '풍경이 있는 가을 소풍'에서 장재경 문화기획자(왼쪽)와 조춘희 관인문화재생연구회장이 설명한 모습.
▲ 지난 18일 포천시에 있는 화적연에서 열린 ‘풍경이 있는 가을 소풍’에서 장재경 문화기획자(왼쪽)와 조춘희 관인문화재생연구회장이 설명한 모습.

지난 18일 오전 10시. 포천시 영북면에 있는 화적연에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전날 저녁부터 내린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하자 금세 물안개가 자욱이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하나둘 모여든 관인마을 주민들의 표정만큼은 햇빛 쨍쨍한 맑은 날처럼 밝기 그지없었다. 담소를 나누는 이들의 표정엔 마실을 나온 즐거움 이상의 설렘이 묻어났다. 한탄강 강물이 굽은 곳에 위치한 화적연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돼 절경을 이루는 명소로 유명하지만, 관인마을 사람들에겐 그저 어릴 적 추억이 잔뜩 있는 푸근한 곳이다. 까까머리 친구들과 걸어서 소풍을 나왔던 추억, 그날 엄마가 아침 일찍 일어나 고이 싸준 도시락을 소중하게 들고 나왔던 추억이 방울방울 서려 있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그때 그날의 추억을 나누는 관인마을 주민들은 즐거운 어린 날의 추억에 함박웃음을 짓기도, 그리운 어머니의 사랑이 떠올라 눈물짓기도 했다. 각자의 감상은 달랐지만, 추억 보따리를 풀어 나누는 이들에겐 서로 다른 모습으로 ‘관인마을’에서 살아가는 오늘의 추억이 새겨졌다. 그리고 이들의 추억을 모은 중심에 ‘관인문화재생연구회’가 있었다.

▲ 관인문화마을 전경.
▲ 관인문화마을 전경.
▲ 관인문화마을 ‘우리동네 사랑방’ 벽화.
▲ 관인문화마을 ‘우리동네 사랑방’ 벽화.

▲ ‘관인문화재생연구회’

한국전쟁 이후 파괴된 마을에 실향민들이 모여들어 만들어진 관인마을은 드넓은 논과 밭, 정겹고 여유로운 모습과 달리 한국 근현대사가 녹아있는 역사 깊은 마을이다.

황해도와 인접한 관인마을은 전쟁 이전엔 이북지역이었으나, 전쟁을 치르며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졌다. 접전 끝에 수복지역이 된 관인면은 전후 미군의 도움으로 마을이 조성되며 이곳을 정착지로 삼은 피난민들의 제2의 고향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2017년 창립된 ‘관인문화재생연구회’는 이런 역사적 배경과 2층 이상의 높은 건물이 거의 없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관인면의 특성을 활용해 지역문화연구 및 문화마을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 진행된 고령화와 청년층의 이주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며 문화적 소외지역으로 전락하자, 마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발굴하며 ‘문화마을’로서 문화적 자생력을 높이기 위해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문화마을의 거점 공간이 될 ‘관인 에코뮤지엄’을 새롭게 구성, 쇠퇴하고 몰락하고 있는 구도심 관인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마을의 버스 매표소였던 공간을 고쳐 만든 관인에코뮤지엄은 버스 정거장으로 사용하는 동시에 전시 공간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빈 상가와 옛 농협 비료 공간 등을 연계해 마을 전체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드는 게 관인문화재생연구회의 최종적인 비전이자 목표다.

▲ '관인에코뮤지엄'에 소개된 마을 주민들 이야기 노트.
▲ ‘관인에코뮤지엄’에 소개된 마을 주민들 이야기 노트.

▲ 역사 속 우리의 이야기를 담는 ‘기록 활동’

관인마을의 역사적인 배경은 이곳을 살아가는 개인들의 이야기조차 하나하나 역사적 의미가 있다.

관인문화재생연구회가 마을 곳곳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해 마을해설사를 통해 주민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이를 영상 등의 콘텐츠로 만들어 기록하려는 목적도 여기에 있다.

관인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 조춘희 마을해설사는 관인문화재생연구회의 수장으로서 역할 하기도 하지만, 관인마을의 주민으로서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주민들의 삶에 활력을 증진하고, 마을에 대한 이해와 지역 유산에 대한 가치를 널리 알려 나가고 있다.

조춘희 회장은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전쟁 당시 마을이 수복되고 피난민들이 넘어와 정착했던 역사를 소개하는 것 뿐만 아니라 더럽고 냄새나던 버스 매표소의 에코뮤지엄으로의 변화, 우리 주민들의 옛날 이야기를 기록한 전시 등 모두가 관인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과정”이라며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콘텐츠화하며 사람들과 유대감도 키우고 대외적으로는 마을의 이야기를 이슈화하며 관인문화마을의 성장 가능성을 높여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 '관인에코뮤지엄' 전경.
▲ ‘관인에코뮤지엄’ 전경.
▲ ‘관인에코뮤지엄’에 소개된 마을 주민들의 특별한 레시피.
▲ ‘관인에코뮤지엄’에 소개된 마을 주민들의 특별한 레시피.

▲ 관인 주민들 ‘특별한 음식 레시피’ 나누기

맛집이 없는 관인에 마을 주민들의 음식 레시피는 특별함, 그 자체다.

피난민들의 역사가 살아있는 관인의 음식들은 개인의 문화는 물론 이북의 문화를 담아내고 있어서다.

관인문화재생연구회는 관인 마을 주민들만 알고 있는 음식 레시피를 수집하고, 다시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추억을 되살려내는 중이다.

특히 수집된 레시피는 관인의 거점공간인 에코뮤지엄에도 전시되며 버스 정거장을 오가는 주민들, 새롭게 관인마을을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1) ‘닭알밥’과 ‘콩가루밥’ 최옥순(1957)

아버지가 황해도 사람인데, 아버지의 어머니가 아버지 어려서도 해줬대. 아버지가 어렸을 때 드셨던 걸 우리를 해준 거야. 예전에는 아이들이 홍역도 앓고 그러니까 밥을 잘 안 먹고 그래. 그러면 이런 걸 해서 간식 겸 영양 보충을 해준 거야. (중략) 아버지가 콩가루 밥을 비벼 주시는데, 이를 뽑아서 피가 나는데도 그걸 받아먹었어. 지금은 간식이라고 그러는데 그땐 별미야. 계란알밥을 해서 주면 신기해서 먹고, 콩가루에 비벼주면 달짝지근 해서 아이들이 잘 받아먹지. 그냥 콩가루를 볶은거지. 지금 보니까 옛날 사람들이 지혜로웠던 거 같아.

2) ‘미꾸라지 추어탕’ 이동일(1963) 외

이 동네 어린애들은 추어탕을 안 먹어본 애가 없을 것이다. 가을철 추수가 끝나면 배수로 쪽에 물이 떨어져 낙차로 구멍이 파여 있는데, 여기를 삽질하면 가을철 추위로 땅속에 숨어있던 미꾸라지가 많이 잡혔다. 그러면 남자들이 밭에서 채소류, 파 이런 걸 손으로 뜯어다가 양념해서 장작 피워 그 자리에서 끓여 먹고 했다. 예전에는 가을 추어탕이라 하면 지나가는 사람 발걸음도 잡을 정도로 최고였다. (중략) 없던 시절이라 양을 늘리기 위해 수제비나 소면을 넣었는데 이걸 넣어야 추어탕이 걸쭉해지면서 비린내를 잡아준다. 양념은 집에서 만든 고추장과 된장으로 하는데 이게 이북식이다.

▲ 지난 18일 포천시 영북면에 있는 화적연에서 열린 '풍경이 있는 가을 소풍'에서 마을 주민이 소풍에 관한 추억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 지난 18일 포천시 영북면에 있는 화적연에서 열린 ‘풍경이 있는 가을 소풍’에서 마을 주민이 소풍에 관한 추억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 지난 18일 포천시 영북면에 있는 화적연에서 열린 ‘풍경이 있는 가을 소풍’에서 마을 주민들이 옛 사진을 보고 있는 모습.
▲ 지난 18일 포천시 영북면에 있는 화적연에서 열린 ‘풍경이 있는 가을 소풍’에서 마을 주민들이 옛 사진을 보고 있는 모습.

▲문화자원 발굴 이어가는 ‘관인문화마을’

관인 주민들이 어린 시절 걸어서 소풍 나온 화적연에서 다시 한 번 마을 소풍을 나와 옛 추억을 나누는 건 단순한 친목 도모를 넘어서 새로운 문화자원을 발굴하는 소중한 기회라는 의미가 있다.

이날 주민들은 소풍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화적연과 관인마을의 풍경을 그리며 새로운 전시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

장재경 관인재생문화연구회 문화기획자는 “관인의 맛을 찾고 소풍을 통해 관인의 이야기를 찾아 전수하는 과정은 마을의 상생과 역사를 후손에게 이어가는 유의미한 작업”이라며 “주민이 직접 운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가며 관인문화마을만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찾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인천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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