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콘텐츠를 심의 및 규제할 수 있는 기구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최근 구글, 나무위키 등 온라인 플랫폼과 연달아 충돌했다.
방심위는 불법 유튜브 콘텐츠에 대해 구글이 신속조치를 약속했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그런데 정작 구글은 지난 21일 국정감사에서 한국 방심위와 약속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사상 처음 사생활 침해로 특정 페이지가 차단 의결된 나무위키는 “어떠한 사전 조율 없는 일방적인 결정”이라고 방심위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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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위는 규제 기구, 플랫폼은 규제 대상자다. 규제 대상자가 규제 기구를 상대로 대놓고 맞서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도 물밑에서 작업하기 마련이다. 이들은 왜 그랬을까.
방심위는 형식상 민간기구이지만 정치적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다. 대통령 추천 몫이 3인, 나머지 6인은 국회 추천 몫이다. 지난해 9월 류희림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그 정치적 입김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정권 비판 보도를 향한 전례 없는 중징계에 ‘입틀막 심의’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업무 전문성보다 정치적 특성이 부각된 지금의 6기 방심위는 온라인 콘텐츠 심의(통신심의)도 가만두지 않았다. 통신심의는 정치적 액션의 ‘무대’, 플랫폼 사업자는 액션의 ‘수단’, 위원들 스스로는 액션의 ‘주인공’이 됐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처럼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기 전에 보도자료부터 나왔으며 플랫폼의 자율기구가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는 없는지 등이 논의되기 전부터 “손을 보겠다”, “전체 차단도 할 수 있다”는 관계자 멘트가 나왔다.
꼭 정권이나 특정 정당 관련 일을 해야 정치적이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본질적인 문제 해결보다 자신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한 행동들 역시 ‘정치적’이라 비판할 수 있다. 방심위 안팎에선 법원의 제동으로 방송사 징계가 줄줄이 막히자 방심위가 온라인 콘텐츠 규제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이라면 이 역시 본질적 문제 해결과 동떨어진 정치적 행위다.
플랫폼을 방치해선 안 된다. 구글이 콘텐츠 관리에 미온적이라는 사실은 수년째 제기된 문제다. 자극적인 불법 콘텐츠를 방치하면 방치할수록 돈이 되는 구조이기에, 플랫폼에 중한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왔다. 나무위키 역시 마찬가지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의 확산 문제를 넘어 커뮤니티 ‘아카라이브’는 디지털 성범죄 온상이 됐다. 방심위 의결은 강제성이 없어 플랫폼 협조가 필수다. 지금처럼 플랫폼을 성과 과시 수단으로 삼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본래 9명으로 구성되는 방심위는 현재 3인 체제다. 모두 대통령 추천 위원으로 한 명은 기자, 다른 한 명은 PD, 나머지 한 명은 검사 출신이다. 통상적으로 언론법이나 콘텐츠 심의를 연구해온 전문가가 한 명씩은 포함됐는데 지금의 6기 방심위는 전무하다. 그들의 심의 현장을 방심위 직원들이 불안하게 바라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전 기수 방심위원들이 통신심의를 조십스럽게 접근한 건 그들이 문제 있는 콘텐츠를 규제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무궁무진한 온라인 세계의 문제점을 지금 기수 위원들 스스로 ‘히어로’처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하나 더, 통신심의 현장엔 기자들이 거의 오지 않는다. 개인정보 보호로 사전 안건이 공개되지 않아 방청해도 기삿거리가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의가 끝난 후 방심위가 낸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통신심의는 명예훼손 등 권리침해로 민원이 오면 공인 여부와 상관없이 위원 결정에 따라 비공개 회의가 가능하다. 정치적으로 변질된 기구가 아무도 모르게 위원들끼리 게시물을 차단할 수 있다는 건 섬뜩한 일이다. 지난해 11월 김건희 여사 명품백 영상에 대해 류 위원장이 차단 지시를 한 곳도 통신심의였다. 지금은 이를 견제할 수 있는 국회 추천 위원도 없지 않나. 관심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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