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초기 윤석열 정부는 지지율 하락세가 장기화된다 싶으면 ‘노조 탄압’을 반복했다. ‘건폭’ 발언이 상징하듯 건설노조가 주요 표적 중 하나였다. 그 여파로 건설노조 조합원이었던 고(故) 양회동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다른 건설노동자들의 삶도 무너졌다.
정부 지지율과 맞바꿔 건설노동자들이 빼앗긴 것은 무엇이었을까. 노조로 뭉치기 전 건설노동자들의 열악한 삶, 노조가 만들어진 뒤의 변화, 정부의 ‘노조 탄압’ 이후 다시 ‘쌍팔년도’로 회귀한 건설현장의 상황, 건설노동자들이 꿈꾸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이야기를 5편의 글로 전한다. 편집자
윤석열 대통령은 건설노조를 ‘건설현장 폭력배(건폭)’라고 불렀다. 법치를 부르짖는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 그 자체의 표현이었다. 검찰과 경찰은 그에 발맞춰 수십 차례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로 건설노조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수십 명의 건설노동자들이 건폭이라는 오명을 쓰고 기소되고 구속되었다. 무엇보다 현장에 미친 파장은 너무나 컸다. 건설노조의 현장 활동을 사실상 무력화시켰고, 교섭도 불가능해졌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건설노동자의 노동조건 후퇴로 직결되었다.
“갑갑하죠. 솔직히 우리 노조가 있음으로써 현장이 많이 바뀌었는데, 노조가 탄압당하고 그러고 나서 다들 이제 ‘이전으로 다 돌아갔다’ 그런 말은 다들 하고 있어요. 도로 ‘쌍팔년도 노가다’ 돼 가고 있다.”
수십 년 동안 건설노조가 하나하나 쌓아 올린 현장의 변화였지만,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탄압의 순간만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건설사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현장의 조건들이 무너지고 있음을 노동자들은 온몸으로 체감해야 했다.
높아진 노동 강도, 사라진 휴식시간 “집에만 오면 고꾸라져요”
노동자들이 제일 먼저 피부로 느낀 변화는 ‘쉼’에 대한 통제였다. 위험 작업과 고강도 육체노동이 동반되는 건설노동자에게 충분한 쉴 권리는 필수다. 노동조합에서는 단체협약으로 오전과 오후 30분의 휴식시간을 보장받기도 했다. 그러나 공안탄압 이후, 휴식시간은 짧아지거나 그마저도 보장되지 않았다. 휴식 없는 노동으로 노동자들의 몸은 점점 만신창이가 되어 갔다.
“그냥 빵하고 우유 대충 먹고 담배 한 대 피우고 하는데도 그냥 5~6분이에요. 어떤 때는 그 시간도 없어서 쉬지도 못하고…. 이제 막 눈치 주고 그러니깐. 이전에 조합팀에서 일할 적에는 우리가 쉬는 시간에 제대로 쉴 수 있어서 그래도 몸이 덜 피곤했는데, 지금은 집에만 오면 힘들어서 고꾸라져요.”
퇴근 시간도 들쭉날쭉했다. 5분, 10분을 더 일해도 그 시간만큼 임금을 더 쳐주는 것도 아니었다. 한두 시간을 더 일하고도 연장 수장을 받지 못할 때도 있었다. 속도전으로 그날의 물량을 끝내야 하는 도급팀의 경우는 더 심했다. 빨리빨리 작업을 끝내야 남는 거라며 못대가리 안 보일 때까지 일을 시켰고, 그나마 있는 수당조차 떼먹었다.
“정 못 끝나게 생겼으면 어두워져서 안 보일 때까지 작업할 때도 있고…. 저번에 현장에서 8시까지인가 작업을 했는데 두 시간 비용만 처리하고, 나머지 한 시간은 못 받았어요. 거기다 저녁도 안 먹고 일을 계속했거든요.”
똥오줌 싸는 것도 차별, 길에서 갈아입는 작업복
쉬는 시간이 보장된다고 해도 마땅히 쉴 공간도 없었다. 공안 탄압은 잠깐이라도 고된 몸을 누일 공간조차 현장에서 사라지게 했다. 있다 해도 좁은 컨테이너 휴게실에 겨우 몇 명이 다리 정도 뻗을 수 있을 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컨테이너에서 쉬지 못하는 사람들은 먼지 날리는 현장에서 합판을 깔고 쉬었다. 건설노조 탄압 이후 개설된 현장에는 탈의실도, 세면장도 설치하지 않는 곳이 생겨났다. 노동자들은 땀범벅이 된 옷조차 갈아입을 곳이 없어 공원 주차장에서 갈아입었다.
“아니, 씻는 곳도 없어요. 말 그대로 땀 범벅돼서 옷만 갈아입고 집에 가서 샤워하는 거지. 옷 갈아입을 데 없으니까 공원 주차장에서 차 받쳐 놓고 트렁크 뒤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여기 중학생들이 등하교하다가 사진을 찍는다고. 아침에 관리자가 ‘CCTV 많은데서 옷 갈아입지 말라’고 그러더라고. 외부 사람들이 사진 찍는다고. 탈의실이나 만들어 주고 그런 말을 하던지 해야지….”
똥오줌 싸는 것에도 차별이 있고, 배제가 있는 곳이 바로 건설 현장이었다. 더러운 화장실을 청소 좀 해달라고 했다가 “직접 하라”는 핀잔이 돌아왔고, 그마저도 이용하려면 100m 줄을 서야 했다. 공사 진행 압박으로 멀리까지 여유 있게 화장실을 갈 수 없는 노동자들이 사무실 직원용 화장실이라도 쓰려고 하면 “더럽게 사용해서 안 된다”라며 사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열쇠로 잠가 놓았다.
“화장실을 가려니까 옛날 화장실 요게 있는 거. 그런데 화장실을 갔더니 똥이 쌓여 있어요. 휴지도 없고, 청소도 안 하고…. 그래서 내가 아침 체조시간 시간에 화장실 좀 어떻게 해 주셨으면 했더니, (관리자가) 한다는 소리가 ‘당신들이 쓰는 거니까 당신들이 청소해라.’… ‘그러면 휴지는?’ 그랬더니, ‘갖고 다녀라.’ 알아서 하라는 얘기에요.”
하락한 임금, 노동자의 등골을 빼먹는 ‘중간착취’
노동 강도는 높아지고, 환경은 엉망이 되었지만, 임금은 도리어 하락했다. 건설노조와 사용자단체인 철근콘크리트협회가 맺은 임금협약은 무용지물이 됐고, ‘인건비 후려치기’가 되살아났다. 여기에 불법하도급에 ‘똥떼기'(중간착취)까지 극성을 부리면서 실질 임금은 더 줄었다.
“노동조합이 임금 협상을 1년에 한 번씩 하니까 해마다 임금이 그래도 몇 프로씩 올라갔잖아요. 근데 딱 작년부터 끊기기 시작해 가지고, 이제 일반팀도 임금이 안 오르는 거죠. 많이 줄어들었어요. 거기에 오야지라는 사람이 똥을 떼기 때문에 노동조합에서 활동할 때보다 임금이 당연히 적어졌죠.”
건설 현장 불법다단계 하도급은 최대 7단계까지도 내려가는 그야말로 ‘난립’ 수준이다. 전문건설사의 임원 명함을 가지고 다니면서 실제로는 재하도급업을 하거나, 하청 소장 또는 오야지 팀장이 하도급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음지에서 구두로 이뤄지는 계약이 많아서 적발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단계마다 공사비가 줄어들었고, 하도급업자들은 노동자의 노동력과 임금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모자란 이윤을 메꿔나갔다.
“이 오야지라는 중간 사람이 20만 원을 받아오면, 그 밑에 있는 사람은 19만 원, 18만 원…. 이렇게 주는 거지. 이제 그런 걸 ‘대가리 따먹기’라고 하거든요. 사람 한 명당 일당 따먹기. 이게 사람이 많으면 그것도 큰돈이 되죠. 자기도 일을 하면서 사람들 하나에 2만 원, 3만 원, 5만 원씩, 그냥 말 그대로 굉장히 큰 돈놀이잖아요.”
임금 대리 수령에 통장까지 관리하는 중간업자
중간착취의 방식에도 여러 유형이 있었다. 노동자에게 매월 일정 금액을 접대비 명목으로 가져오게 하거나 회식비, 숙박비, 자재비 등을 수시로 각출했다. 이 같은 중간착취는 너무도 흔하게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지만,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까봐 항변도 못했다.
“한 번 떼고 나서 이렇게 처음에는 이제 일회성으로 끝나는 걸로 알았는데, 그 다음 달에도 비용을 걷더라고요. 이게 이만저만해서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접대를 해야 하니까 1인당 하루 1만 원 씩 걷어야겠다…. 그것도 하나에 ‘똥떼기’ 인거죠.”
중간업자가 노동자들의 임금 통장을 직접 관리하는 방식도 있었다. 회사 제출용 임금 통장을 만들어 오게 해서 자신이 보관하면서, 임금이 들어오면 일부를 착복하고 다시 팀원들의 진짜 임금 통장으로 나머지를 입금하는 것이다. ‘임금 대리 수령 동의서(위임장)’도 등장한다. 임금을 대리 수령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내용인데, 주로 이주노동자들에게 쓰게 한다. 또 다른 중간착취는 노동자들에게 임금의 일부를 다시 자신에게 입금하도록 하는 방식도 있었다.
“일단 구두로 ‘너 17만 원이야, 16만 원이야’ 이렇게 얘기를 하고, 회사하고 계약서를 쓸 때는 23만 원, 22만 원 이렇게 씁니다. 그게 이제 그 사람 통장에 꽂히면 그 사람한테 더 들어온 임금을 달라고 요구를 하는 거죠. 안 그러면은 ‘너 여기 일 그만 나와’ 이렇게 하는 거지. 그런 데에서 떼어먹는 거죠.”
건설노조 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좋아진 점을 말하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인격적 대우’를 말했다. 오랫동안 ‘건설 노가다꾼’으로 불리며 천대를 받아왔던 건설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건설노동자’라는 이름을 되찾고, 그 이름으로 인간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를 더해 나갔다. 그러나 정부의 탄압은 이를 빼앗아 갔다. ‘쉼’에 대한 권리, 제대로 된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 길거리에서 옷을 갈아입지 않을 권리, 노동의 대가를 착취당하지 않을 권리. 이 모든 권리가 점점 사라지면서 다시 쌍팔년도 건설 노가다꾼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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