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도심 바깥에서 생활할 경우 (출퇴근에 따른) 압박감이 크고 비용도 많이 들죠. 하지만 도심항공교통(UAM)이 보편화되면 어디에 살든 15분 생활권이 형성될 거예요. (교통이 원활하니) 집을 고를 때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따질 필요가 없고, 집값이 저렴하면서도 편안한 곳을 선택할 수 있죠. 앞으로 미래 교통 산업은 물론 도시 발전은 대변혁을 맞이할 겁니다.”
지난 25일 중국 남부 광둥성 광저우시 이항 본사에서 만난 허톈싱 이항 부사장은 “UAM 산업이 인류에게 가져다줄 변화는 엄청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드론·전기 수직 이착륙 비행기(eVOTL) 전문 제조 기업 이항이 만든 자율주행 eVOTL ‘EH216-S’는 이르면 올해 말부터 상업 운행을 시작한다. 전 세계가 뛰어든 UAM 경쟁에서 중국이 앞서나가고 있다.
◇ 도심-공항 간 이동, 관광상품 시작 유력… “아태·중동 시장 공략”
이항은 세계 최고의 개인용 비행체 제조기술을 보유한 업체로 평가받는 곳이다. UAM의 가능성을 처음 제시한 기업이기도 하다. 2012년부터 개인용 비행체를 개발하기 시작, 2016년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인 CES에서 1인승 자율주행 드론 택시인 ‘EH184′를 처음 공개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중국 드론 업체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2021년 미국의 한 투자정보 업체가 기술 조작 및 허위 계약 의혹을 제기하면서 주가가 급락하는 사태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항의 UAM 기술력에 대해서는 현재 큰 이견이 없다. 이항의 대표작인 EH216-S는 승객 2명 또는 260kg의 화물을 실은 채 수직으로 뜨고 내릴 수 있는 eVTOL로, 2018년 출시됐다. 동력원인 배터리를 120분 충전하면 최고 시속 130km 속도로 30km 이내 거리를 25분간 비행할 수 있다. 조종사가 따로 필요 없는 자율주행 형식이다. 현재까지 중국민용항공총국(CAAC)으로부터 형식 인증, 감항 인증(안전 비행 성능 인증), 생산허가증 등 세 개의 자격을 획득했는데, 이는 중국산 eVTOL 중 유일하다.
이날 탑승해 본 EH216-S는 길이 6.05m, 폭 5.73m, 높이 1.93m에 16개의 프로펠러가 달려 있다. 내부는 좌석 두 개에 항로 등을 보여주는 태블릿 PC로 단순하게 구성돼 있었다. 좌석의 경우 성인 여성 두 명이 앉기엔 무리가 없었지만, 키가 큰 남성 두 명이 타기엔 다소 비좁았다. 다만 폭만 좁을 뿐 앞쪽 공간은 여유로워 다리를 쭉 뻗는 것도 가능했다. 이항 관계자는 “조종사가 필요없고, 승객 역시 어떤 조작도 할 필요가 없다”라며 “승객이 목적지만 잘 선택하면, 미리 설정한 노선에 따라 자동으로 움직인다”라고 설명했다.
대당 가격은 중국 내수용 239만위안(약 4억6000만원), 해외용 41만달러(약 5억7000만원). 이항 측에 따르면, 중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현재까지 1000여대를 사 갔다. 이 중에는 한국도 있다. 2020년 서울시가 4억원을 주고 구매한 것. 이때 서울시는 국토교통부와 함께 무게 80kg 쌀포대 4개를 싣고 서울 여의도 일대를 비행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허 부사장은 “누적 판매량 100여대 중 해외 판매량이 300여대”라며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들과 소통하고 있다”라고 했다.
이항이 만든 EH216-S는 곧 일반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다. 이항 관계자는 “우리가 eVTOL을 제작해 판매하면, 고객이 운영 허가를 (당국에) 신청해야 한다”라며 “이미 CAAC에 운영 자격증 접수가 들어갔고, 이르면 올해 말 상업 운행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항 측은 구체적으로 어디서 상업 운행을 시작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공항 근처에서 우선적으로 도입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이미 이항은 스페인과 일본에서 공항과 도심을 UAM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관광 상품으로도 제격이다. 허 부사장은 “관광지인 장가계 전반을 아우를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라며 “앞으로 몇 년 안에 비행체를 타고 하늘에서 장가계의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항은 앞으로 아시아태평양 시장과 중동 시장을 집중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먼저 한국, 일본, 동남아 등의 경우 문화 상품으로서 UAM 활용도가 높다고 이항 측은 보고 있다. 게다가 각 도시의 교통 체증이 심하다는 점도 UAM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환경이다. 중동의 경우 경제·사회 발전 덕에 구매력이 높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프로젝트로 UAM의 큰 장이 열릴 예정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는 사우디 북서부 홍해 인근에 서울의 44배 크기(2만6500㎢)의 첨단 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허 부사장은 “2030년까지 건설하는 이 계획은 지상과 공중의 교통을 잘 연결해야 한다”라며 “우리는 사우디와 협력을 위해 적극 협의하고 있다”라고 했다.
◇ 글로벌 UAM 경쟁 앞서나가는 中… 인프라 부족·각국 규제는 숙제
중국은 민간 드론과 eVTOL을 중심으로 한 ‘저고도 경제’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중국의 신성장 동력, 저고도 경제 발전 현황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2010년부터 3000m 이하에서 날아다니는 유·무인 항공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저고도 경제 지원을 명시했다. 2021년엔 저고도 경제를 국가 교통망 계획에 포함했다. 지난해 중국 저고도 경제 규모는 5060억위안(약 97조9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34%가량 성장했다. 2030년에는 2조위안(약 386조90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중앙정부의 이같은 지침에 맞춰 지방정부도 보조금 등 지원에 나서고 있다. 허 부사장은 “UAM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산업이면서도 초기 단계의 산업”이라며 “정부가 업계 선도 기업인 우리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다”라고 했다.
이항이 만든 eVTOL이 올해 말 영업을 시작할 경우,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UAM 경쟁에서 한층 앞서나가게 된다. 세계 각국도 UAM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중국보단 다소 느린 상황이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지난 22일(현지시각) UAM용 기체를 정식 교통수단으로 인정하고 관련 규제를 확정했다. 이에 따라 1만 시간의 비행 기록을 보유한 미국의 UAM 제조사 조비 에비에이션은 2026년부터 상업 운행을 시작할 예정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도 UAM 안전 인증 체계를 마련 중이다. 한국은 내년 말 UAM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국산 UAM 제품이 하나도 없는 상태다.
다만 이항 등 중국 UAM 업체들이 사업 고도화 단계에 접어들기까지는 여전히 과제도 많다. 가장 큰 난제는 이착륙장 등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에 세계 각국에서 중국 UAM을 이용해 상용화하는 것도 쉽지 않다. 허 부사장은 “각 나라 항공 당국마다 비즈니스 운영에 대한 요구 사항이 다를 수 있다”라며 “실제 운영 과정이 하나의 문제”라고 했다. 이항은 올해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19% 증가한 1억200만위안(약 197억6000만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순손실은 7163억4000만위안(약 138조7000만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5.4% 축소되는 데 그쳤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