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교육청의 ‘전자칠판 보급 사업’에 짙은 먹구름이 꼈다. 지역 교육계와 시민단체는 현직 시의원과 관련 업체 간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최근 국회 교육위원회의 시교육청 국정감사에서도 전자칠판 사업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상황이 이렇자 전자칠판 보급률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인천 교육계에서 디지털 교육 기자재 기피 현상이 심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인천일보는 세 차례 기획 보도를 통해 전자칠판 납품업체들 먹잇감이 된 교육 현장의 실태를 짚어보고 대책을 제시할 예정이다.
▲지난해 점유율 1위, 알고 보니 불량 업체
디지털 전환 시대를 맞아 전자칠판은 교육 현장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분필이 필요 없는 전자칠판은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각종 사진과 영상이 화면에 표시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수업을 하도록 돕는다.
29일 인천일보 취재 결과, 2022년부터 인천지역 초중고의 전자칠판 수요가 급증하면서 덩달아 관련 업계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인천시교육청이 집행한 전자칠판 보급 예산은 2021년 1억4350만원(25대)에서 지난해 36억4600여만원(638대)으로 크게 늘었으며, 최근 4년간 집행 예산은 108억원(1683대)에 달한다.
사업 규모가 커지다 보니 업체 간 경쟁도 과열되고 있다.
특히 전자칠판 보급 사업이 공동 구매가 아닌 학교별 자율 구매 방식으로 이뤄져 특정 업체 독점 현상과 함께 학교 측을 상대로 공격적 영업 행위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와중에 현직 시의원이 업체의 사업 수주를 돕는 대가로 리베이트를 받는다는 의혹이 터져 나왔고, 시민단체로부터 진정을 접수한 인천경찰청이 내사에 들어간 상태다.
이와 함께 업체들이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중국산 전자칠판을 납품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는데 인천일보 취재로 사실로 확인됐다.「인천일보 10월29일자 7면 ‘전자칠판 리베이트 논란 업체, 中 → 국산 ‘라벨 갈이’」
지역 업체 P사 대표(44)는 2019년 8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80차례에 걸쳐 중국산 전자칠판과 구성품 4007개를 수입한 뒤 라벨 갈이로 국산 제품으로 둔갑시켜 납품한 혐의(대외무역법 위반 등) 등으로 지난해 7월 인천지법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결국 P사는 지난해 11월 조달청으로부터 24개월간의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P사는 법원에 행정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과 함께 가처분 신청을 냈고 가처분 신청이 인용돼 조달청의 제재 효력이 정지되면서 지금까지 버젓이 학교에 전자칠판을 공급하고 있다.
P사가 2022년부터 올 8월까지 인천 교육 현장에 납품한 전자칠판은 총 494대로, 이를 통해 벌어들인 돈은 24억4600여만원에 달한다.
▲학교 7곳 중 2곳 불량 사례, 전수조사 시급
현재 전자칠판 제조·납품업계에서는 과거처럼 중국에서 완제품을 그대로 수입하지 않고 부품 대부분을 가져온 뒤 국내에서 조립해 보급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외에서 모니터나 메인보드 등 부품을 수입한 뒤 국내서 조립만 해도 직접 생산한 제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구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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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품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깊다. 실제 P사가 전자칠판을 납품한 인천 학교 7곳에 확인해보니 이 중 2곳에서 불량 사례가 나타났다.
2022년 전자칠판 11대를 도입한 A 학교는 “기기 결함 문제가 5건 정도 있었다. 화면이 꺼지거나 USB 포트에서 불량이 발생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부터 2년간 총 49대를 구매한 B 학교는 “USB 포트 불량으로 접속이 잘 되지 않고 화면 터치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서 업체에서 신규 제품으로 교체해줬다”고 말했다.
김명희 자치재정연구소 부소장은 “부실 업체가 전자칠판을 설치한다면 질이 낮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고 결국 교육 서비스가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며 “예산을 집행하고 관리해야 하는 인천시교육청이 체계적으로 전자칠판이 도입될 수 있도록 구매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회진·홍준기 기자 hijung@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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