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처음 다시 꺼내봤어요.”
김은미씨는 지난 2022년 너무 빨리 작별한 딸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두꺼운 키친타월에 고이 접어 비닐 지퍼백에 넣어두었다. 가슴이 아파 꺼내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딸의 흔적이라면 채 다 먹지 못한 곤약 젤리도 버릴 수 없었다. 김씨의 딸 오지민씨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9명 중 한 명이다. 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오후 김씨의 자택을 방문해 고인의 유품을 촬영했다.
딸이 그날 들었던 검은색 가방엔 쿠션, 립스틱, 아이라이너, 핸드크림이 있었다. 주머니엔 풍선껌과 영수증이 있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에 꼈던 반지 두 개, 하트 모양 귀걸이도 현장 채증물 지퍼백에 담겨 돌아왔다. 입었던 옷은 딸의 영혼을 위해 태웠다. 그날 이태원을 걸어 다녔던 신발은 딸의 친구에게 줬다.
김씨는 딸을 편안하게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다른 가족은 장례 치를 때 아이 머리카락을 잘라서 집에 보관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왜 그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어요.” 딸이 살던 자취방을 정리하며 머리카락과 손톱을 모아 가져왔다. 그 집에 있던 화분과 소파도 가져와 집안 한 쪽에 예쁘게 꾸며뒀다.
엄마는 여전히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다. 집에서 딸의 어릴 적 모습을 볼 수 있는 앨범을 넘겨보며 커피를 마신다. 마음이 힘든 날에는 딸의 절친한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저녁을 먹는다.
“작년 지민이 생일 때 친구들이 중고등학교 시절 사진을 모은 앨범을 만들어줬어요. 어릴 때 말고는 부모랑 사진을 많이 안 찍으니까 그게 너무 고마웠어요. 참 좋은 친구들이에요.”
거실 한 쪽엔 딸을 기리는 사진과 그림, 소품들이 놓여 있는 장식대가 자리 잡고 있다. “올해 생일엔 제가 지민이 이니셜을 새긴 반지와 목걸이를 선물했어요.” 엄마는 가끔 외출할 때 그 반지를 끼고 딸을 느낀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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