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뉴왁공항에 도착하고 심사대로 급히 갔다. 심사대에 서자 여기가 미국인 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길게 늘어선 대기자들의 외모와 옷차림 그리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한시간쯤은 넉넉히 기다리겠다는 느긋한 태도만 봐도 여기는 뉴욕이었다.
2024년 대선을 열흘 남짓 앞둔 23일(현지시간), 뉴욕은 선거의 에너지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는 이 시기가 되면 각 당에서 내건 숱한 정치적 슬로건을 현수막으로 내걸고 거리다마 선거운동원들이 열심히 율동을 하고 있었을텐데 말이다. 8년 전 이맘때 미국을 찾았던 기억과 비교해봐도 그렇다. 당시 거리마다 트럼프와 힐러리의 이름이 적힌 피켓이 건물과 집 앞뜰을 채웠고 뉴욕의 기념품 가게에는 두 대선후보를 패러디한 셔츠와 인형들이 가득했었다. 심지어 당시 거리에서 만난 노숙자는 “내게 1달러를 주지 않는다면 트럼프에게 투표하겠다”고 적힌 박스를 들고 행인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왜 이럴까? 대선에 관심이 없어진 걸까? 두 후보에게 기대를 안하는 걸까?
도착한 다음날인 24일, 한 가정의 파티에 초청을 받았고, 여기에서 나는 40대 여성 변호사로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안젤라(Angela,가명)를 만났다. 그녀는 대뜸 나의 방미 목적을 묻더니 혹여 이번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공화당 대선 후보)를 지지한다면 대화를 시작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누가 되든 무엇이 국익에 도움이 될지만 생각한다고 답하자 그제서야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Angela는 8년 전 트럼프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 당시 그는 그냥 이상해 보이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그는 위험한 사람이 되었어요. 미국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세계의 안보질서마저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이죠.”
그런 그녀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이번 선거를 낙관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민주당을 지지해온 70대의 남성 퇴직자 브라이언트(Bryant)는 미국 사회가 카멀라 해리스(민주당 대선 후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이유를 한 단어로 표현했다.
“섹시즘(Sexism, 성차별주의) 때문이예요. 해리스의 등장에서 많은 허니문효과를 낳았지만 결국 막판에 힘이 빠지게 될 거예요. 8년 전 힐러리 클린턴 때처럼 말이지요. 박빙의 승부라고 하지만 그럴수록 미국시민들의 깊은 내면에는 ‘아직 여성 대통령은 안돼’라는 인식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어요. 이런 인식은 놀랍게도 공화당 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부에서도 엿볼 수 있는 인식이예요. 오바마의 당선으로 인종차별주의(Racism)를 넘어선 미국이지만 성차별주의는 더 강력하게 미국사회에서 작동하고 있어요.”
이 말에 홈파티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스 후보의 결정적인 패배요인이 될 ‘여성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이 2016년 힐러리에게도 분명 작동했다는 것을 잘 아는 트럼프는 이번 선거도 그 기제가 작동할 거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초의 여성 미국 대통령에 도전하는 해리스에게 주어진 역사적, 정치적 책무가 크다고 생각한다. 인종차별주의를 넘어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보다 더 높은 성차별주의를 넘어서는 일을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트럼프가 말하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트럼프의 대선 구호) 만들 방법은 성차별주의를 넘어서는 미국을 보는 게 아닐까?
11월 5일 있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을 방문 중인 신정현 전 경기도의회 의원(모두를 위한 정치연구소 온 소장)의 글을 게재합니다. 신 전 의원은 세상을 바꾸는 꿈을 품은 청소년운동가에서 세대와 계층, 마을을 연결하는 공동체조직가로 활동하다가 2018년부터 4년간 경기도의원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새빛남매의 아빠로, 프로육아러가 주업이 된 부업 정치인”이라고 본인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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