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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 왜 가입했냐고요? 돈 떼먹힐 일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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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초기 윤석열 정부는 지지율 하락세가 장기화된다 싶으면 ‘노조 탄압’을 반복했다. ‘건폭’ 발언이 상징하듯 건설노조가 주요 표적 중 하나였다. 그 여파로 건설노조 조합원이었던 고(故) 양회동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다른 건설노동자들의 삶도 무너졌다.

정부 지지율과 맞바꿔 건설노동자들이 빼앗긴 것은 무엇이었을까. 노조로 뭉치기 전 건설노동자들의 열악한 삶, 노조가 만들어진 뒤의 변화, 정부의 ‘노조 탄압’ 이후 다시 ‘쌍팔년도’로 회귀한 건설현장의 상황, 건설노동자들이 꿈꾸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이야기를 5편의 글로 전한다. 편집자

건설 현장에서 불법 다단계 하도급으로 자재와 인력을 ‘헐값’에 쓰고, ‘빨리빨리 속도전’에 치여 날림공사가 이뤄진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은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함을 겪으면서도 스스로 목소리 낼 용기를 갖지 못했다. 하루하루 생계를 꾸려나가기도 버거운데 공연히 관리자 눈 밖에 났다가는 일거리가 끊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노가다’로 살기를 강요하는 무법천지 현장에서 존엄을 바로세우고 권리를 짓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건설노조였다. 당장 내일 하루 벌이조차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서 고용불안 걱정 없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울타리가 생긴 것이다.

건설노조 가입을 결심한 이유, “인건비 떼먹을 일은 없으니까”

2007년 전국에 산재했던 지역건설노동조합들이 우여곡절 끝에 전국건설노동조합으로 통합되었다. 그 뒤로 많은 건설노동자들이 건설노조에 가입하였다. 건설노동자들이 건설노조에 가입하는 주된 이유는 역시 임금이었다. 건설노조 가입 전 건설노동자들은 중간착취를 일삼는 불법하도급 업자에게 뒷돈을 챙겨주거나 ‘똥떼기’, ‘스메끼리(유보임금)’에 시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임금을 떼이는 일도 만연했다.

“계기라면 저희가 이제 일반팀으로 일할 때 노조원들을 많이 봤어요. 근데 저희들이 봤을 때 ‘임금 인상’, ‘노동조건 개선’ 이런 게 많거든요. 솔직히 저희가 20년 정도 지나면서 느낀 게 있잖아요. 그게 사실이고요. 고맙게 생각했죠. 그리고 우리 동료들이랑 ‘우리 이제 현장 기회 되면 노조 가입하자’ 이런 얘기를 했거든요.”

하루하루 생계가 가장 큰 근심이었던 건설노동자들에게 노조는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이었다. 중간착취를 일삼는 불법하도급 업자에게 뒷돈을 챙겨주거나 ‘스메끼리’에 시달리는 일 없이도 먹고 살 길이 있다니, 마음 한 켠에 안도감이 일었다.

“일반팀 일할 때는 뭐, 저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돈 문제 때문에…. 기성날짜에 제대로 돈 못 받아 가지고 회사 뭐, 감독님 쫓아가 가지고, 뭐 막 싸움도 하고… 많이 그랬으니까. 그런 걱정은 없었어요.”

건설노조 가입을 결심한 이유, “사람이 일을 해도 저렇게 일해야 되겠다 싶어서”

임금 다음으로는 인간답게 일하기 위한 노동조건에 관한 이유가 많았다. 불법으로 점철된 건설 현장이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하나하나 바뀌어가는 모습은 당시 비조합원이었던 노동자들 눈에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가입할 때는 그 당시에 제가 2018년도에 현장에서 노동조합 일하는 걸 제가 목격을 했는데. 그분들이 일하는 거 보면 오전 30분, 오후 30분 쉬고…. 하여튼 8시간씩 일을 하면서 인간답게 살더라고요. 그러니깐 저도 보니까는… 사람이 일을 해도 저렇게 일을 해야 되겠다 싶어서 노동조합에 가입을 했습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권리였던 최소한의 존엄조차 건설 현장에서는 함께 뭉쳐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노동조합이 이끈 변화의 힘을 직접 목격하면서 날품팔이 일용직, 각자도생하는 노가다가 아닌 ‘자랑스러운 건설노동자’로 살아보고 싶다는 희망도 조금씩 움텄다.

▲ 건설노동자들이 집회를 열고 근로계약서 작성, 안전장구 지급, 8시간 노동 시행 등을 요구하고 있다.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내 이름을 찾았다” 존엄과 인권의 보장

건설노조의 역할이 임금 떼이지 않고, 좀 더 나은 노동조건을 찾는 것만은 아니었다. 고용이나 임금은 말할 것도 없고, 나와 동료의 안전까지 불안정한 상태인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것들을 갈망했다. 무엇보다 이윤과 속도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현장에 ‘노동자의 권리’를 새겨 넣고 싶었다.

“달라진 게요. 일단 저를 찾은 것 같아. 그 당시에는 ‘김 씨’, ‘조 씨’ 이랬지 저를 못 찾았어. 지금은 노동조합에 딱 들어오니까 ‘아무개 씨’ 이거 정확히 이름을 불러주는 거야, 첫 번째가….”

업종을 불문하고 노동자 권리의 보장 수준을 가늠할 때 ‘식사의 질’은 중요한 평가 항목 중 하나다. 특히나 ‘밥심’으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식사 제공은 더없이 중요한 문제다. 대부분의 건설노동자들은 새벽밥부터 점심밥까지, 적어도 하루 두 끼니를 현장 식당(함바집)에서 챙기고 있다.

“우선 식사 문제…. 함바식당에서 반찬이 좀 안 나온다고…. 제가 대의원할 때 ‘이거 반찬 이래갖고 되겠냐?’고 그랬더니, 그래도 몇 번 얘기하면 시정이 되더라고요. 하는 시늉이라도 하더라고요. 그게 그때는 몰랐어요. 애초부터 노조에 들어가서 했으니까. 이게 이렇게 다 되는구나. 내 노조…. 윤석열이가 이게 이렇게 하고 나서, 일반팀에 딱 가서 적응하다 보니까 ‘아, 노조 있을 때랑은 다르구나’ 확실히 실감하게 되더라고요.”

건설노조에 가입하고 나서야 노가다가 아닌 건설노동자로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평등한 동료관계를 맺는 것도 비로소 가능해졌다는 말이다.

“노조라는 울타리가 있으니까” 무리한 속도전에서 해방

지금도 건설 현장에서는 하루에 두 명꼴로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건설노조가 없던 시절에는 건설 현장을 ‘죽음의 일터’라고 말할 정도로 죽고 다치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다. 이토록 많은 노동자들이 건설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이유도 결국 돈 문제였다.

“일단은 뭐 안전도 다 비용이 들어가는 부분이니까…. 비용 절감을 하는 게 그들의 목표지 않습니까? 돈을 버는 게, 목표가 돈이기 때문에…. 그거에 대해서 좀 미흡한 것 같고, 저기 미등록이라고 의심되는 작업자들 안전화를 보면 다 찢어져 있고, 그걸 막 신고 다니고…. 안타깝죠, 그런 거 보면….”

비용 절감이 지상과제인 건설사는 오직 서류상 안전보건관리에 집중하지만, 현장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작업장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힘쓰는 노조는 실질적인 안전보건 개선에 집중했다. 건설노조가 활발히 활동하면서 건설 현장이 그나마 좀 더 안전한 일터로 변했다.

“전에는 이거 해, 그러면 불안전해도 무조건 했거든. 근데 우리는 노동조합에 와서 보니까 ‘작업중지명령’이라는 걸 알게 됐어. 이런 게 밖에서는 안 통해요. 밖에서 어떤 사람이 얘기하면 안 통해. 노동조합이 얘기하면 통해. 그런 것들이 다 좋은 거고요.”

“일단은 보호구 지급 같은 경우는, 솔직히 저희 입장에서는 노동조합이라는 방어 울타리가 있으니까 원청사나 이런 전문업체에서는 잘 지급을 해 주는데… 도급팀이나 이런 데는, 뭐 솔직히 서명만 하죠.”

▲ 건설노동자들이 집회를 열고 불법하도급 근절을 요구하고 있다.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가족들과 저녁도 먹을 수 있는” 일과 삶의 균형

노동조합은 건설노동자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전에는 꿈꾸지도 못했던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식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물량과 공사기간이 가장 중요한 건설 현장에서 나를 챙길 여유는 한시도 허락되지 않았기에 골병드는 줄도 모른 채 몸을 혹사시켜 왔던 노동자들은 노조를 통해 뒤늦게나마 내 일과 삶을 설계할 수 있었다.

“단협협약을 맺고 들어가다 보니까 토요일도 좀 일찍 끝나는, 그 부분이 너무 좋았죠. 처음에는 ‘인간답게 살자’ 이 소리가 나는 ‘당연히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거지, 왜 못 사나’ 했는데, 근데 이제 토요일 날 이렇게 조금 시간이 있다 보니까 가족들과의 저녁도 먹을 수 있는, 그전에는 월요일부터 이렇게 풀로 일해서 몸이 제일 지쳐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저녁에 약속 잡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는데, 그런 부분이 좀 없어진 것 같아요. 인간답게 사는 거, 가족한테도 잘할 수 있는 이런 게 좋았던 것 같아요.”

이렇듯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의 존엄과 인권을 바닥부터 다져나간 건설노조의 활동은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권리의식이 싹트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살인적인 장시간‧고강도‧고위험 노동에 시달리지 않고 내 일과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의 고용과 임금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건설노조가 해 왔던 활동은 건설 현장을 보다 투명하고 건강하게 바꾸는 밑바탕이 됐다. 특히 산별‧지역별 노조인 건설노조는 중앙교섭과 각 권역별 교섭을 통해 현장마다 들쭉날쭉했던 건설 현장의 노동조건과 고용‧임금을 상향평준화했다. 고용과 임금, 제반 노동조건에 관한 권리들이 단체교섭을 통해 확보됨으로써, 불법과 비리가 판치는 건설 현장에서 공정한 보상과 대우를 보장하는 기틀이 마련됐다. 이러한 노조의 역할은 다단계 하도급을 거칠수록 점차 깎여 나가는 건설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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