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 흐르는 음악, 활기찬 웃음소리, 카메라 셔터음과 술잔 부딪히는 소리. 핼러윈데이를 앞둔 지난 26일 밤 10시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가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만 핼러윈 분장을 한 시민들과 핼러윈 장식으로 꾸민 가게들은 많지 않아 여느 때와 같은 주말 번화가의 분위기였다. 다만 2년 전 참사가 발생했던 골목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 국화, 바나나우유, 와인, 초콜릿 등이 놓여 다시 핼러윈이 돌아왔음을 알렸다.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길을 유심히 살폈다. “생각보다 (골목이) 엄청 좁다”며 일행과 지난 참사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날 이태원 거리에는 약 5미터 간격으로 이동식 중앙분리대가 설치됐고, 바닥엔 우측통행이 표시된 발자국 모양의 스티커가 붙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술집과 클럽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이 생기거나 길목에 인파가 모여 더디게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서울시 도시데이터를 보면 26일 밤 11시 기준 이태원 관광특구의 실시간 인구는 1만6천명∼1만8천명으로 ‘약간 붐빔’ 수준이었다. 주황 조끼를 입은 경찰, 노란 조끼를 입은 용산구청 관계자 등은 역방향으로 가려던 시민들에게 우측통행을 안내하고 한곳에 인파가 몰리지 않도록 통제했다. 시민들과 함께 거리를 걸으며 순찰하는 경찰들의 모습도 보였다.
친구 생일을 맞아 이태원을 찾았다는 이예은(23)씨는 “과거에는 이동식 중앙분리대와 우측통행 표시가 없었는데 와서 보니 참사가 다시 한 번 상기되면서 경각심이 들었다”며 “이태원에서 노는 게 무섭지 않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겠다는 안정감이 든다”고 했다. 이승환(32)씨는 “거리 곳곳에서 경찰, 공무원분들이 보여 안심이 된다”며 “2년 전 참사도 주체는 없었지만 인파가 몰릴 게 예상이 됐는데 관리가 안 됐던 거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이 정도의 현장 관리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이태원을 누구나 안전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축제를 꾸린 이들도 있었다. 시민들로 구성된 ‘이태원을 기억하는 호박랜턴’ 모임은 ‘멈추지 않는 노래를 해’라는 주제로 이태원에서 버스킹 공연을 열었고, 악기를 연주하며 거리를 행진했다.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함께 춤을 추거나 사진을 찍으며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쉬는 날을 맞아 친구를 만나러 왔다는 김민주(26)씨는 “오기 전에는 참사가 떠올라 조금 걱정됐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왔다. 누구나 안전하게 일상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재난안전법 개정으로 ‘주최자 없는 지역 축제’도 지방자치단체장이 계획을 세워 안전관리에 필요한 조처를 하도록 의무가 강화된 데 따라, 서울시는 이번 핼러윈 기간의 인파밀집 예상지역 15곳을 선정하고 안전관리에 나섰다. 이날 녹사평역 광장에는 용산구 응급의료소, 용산경찰서, 용산소방서, 육군 제3537부대 등 유관기관 합동 현장상황실이 차려졌다.
한겨레 고나린 기자, 김가윤 기자 /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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