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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눈치? 36년 만에 대선 후보 지지 포기한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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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사진=flickr
▲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사진=flickr

워싱턴포스트(WP)가 36년 만에 처음으로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결정에 WP 사주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있다는 내부 문제 제기가 나오면서 편집인 사퇴, 공동 성명 등 WP가 극심한 내홍에 휩싸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충돌했던 베이조스가 관계 개선을 위해 카멀라 해리스 후보 지지 선언을 ‘포기’시켰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윌리엄 루이스 WP CEO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정치적 지지에 대해’(On political endorsement) 글에서 “WP는 이번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며 “향후 어떤 대통령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이어 “이것은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우리의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WP는 미국의 대표적 진보성향 신문으로 분류된다. 1988년을 제외하고 WP는 1976년부터 매 대선마다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오피니언 섹션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공개적으로 해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30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했다.

미국 현지 보도에 따르면 WP 내부 편집위원회도 해리스 부통령(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 사설 초안을 작성했다. 하지만 베이조스가 이를  게재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데이비드 시플리 WP 편집장과 윌리엄 루이스 CEO는 선거가 임박한 상황에서 전통을 포기하지 말자는 주장을 사적으로 제기했지만 베이조스가 관행을 끝내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루이스 CEO는 “베이조스는 사설 초안을 받지도, 읽지도, 의견을 제시하지도 않았다”고 부인했다.

CEO의 해명에도 회사 결정에 대한 내부 반발이 쏟아졌다. WP 노조는 “미국 대선을 불과 11일 앞둔 상황에서 이러한 결정을 한 것에 깊이 우려한다”며 “편집위 자체의 결정이 아닌 CEO의 메시지로 결정됐다. 경영진이 편집위원들의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고 했다. 20년 넘게 WP에 근무한 로버트 케이건 편집인은 “트럼프 후보에 대한 분명한 호의 표시”라며 사의를 표명했다.

WP 오피니언 필진 19명은 공동성명에서 “WP가 지지를 표명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끔찍한 실수”라며 “이는 우리가 사랑하는 신문의 근본적 신념을 포기한 것이다. 지금은 WP가 민주주의적 가치, 법치주의, 국제 동맹에 대한 헌신과 도널드 트럼프가 이들에 가하는 위협을 분명히 해야 할 때”라고 했다.

이들은 “WP가 독립적인 신문으로 중요 역할을 하는 것과 핵심 신념의 표현으로 정치적 지지를 표명하는 관행 사이엔 모순이 없다”며 “언젠가는 대선 지지를 표명하지 않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후보가 언론의 자유와 헌법 가치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 워싱턴포스트. 사진=flickr
▲ 워싱턴포스트. 사진=flickr

WP 출신 인사들도 강한 비판에 나섰다. 마틴 배런 전 편집장은 회사의 결정을 ‘비겁한 짓’(cowardice)으로 평가하며 “민주주의를 희생양으로 삼는 암흑의 순간이다. 트럼프는 이를 통해 베이조스를 더욱 위협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마커스 브라우클리 전 편집장도 “거짓과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는 대선 캠페인에서 ‘잘 고려된’(well-considered) 지지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지적했다.

WP에서 ‘워터게이트 특종’을 보도했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도 성명을 내고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가하는 위협에 대한 WP의 압도적인 보도 증거를 무시한 것”이라며 “WP는 지금까지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미국 민주주의에 어떤 위험과 피해가 올지 엄격하게 보도해왔다. 선거 후반부에 이러한 결정을 내린 건 놀랍고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베이조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소셜미디어 등에서 공개적으로 서로를 적대하며 충돌해왔다. 2019년엔 10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놓친 아마존이 베이조스를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적대감을 비난하며 행정부를 고소하기도 했다. 베이조스가 설립한 항공우주회사 ‘블루 오리진’ 역시 정부 계약을 따내기 위해 경쟁하고 있으며 최근 경영진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만났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베이조스가 환심을 사기 위해 해리스 지지 사설을 막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관련 기사 : 워싱턴포스트 CEO의 기사 외압 논란…흔들리는 저널리즘]

월스트리트저널(WSJ) 출신 윌리엄 루이스 CEO가 지난해 부임한 이후 WP에 외압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6월엔 조직개편에 대한 반발로 교체됐다고 알려진 샐리 버즈비 편집국장이 교체 전 루이스 WP CEO가 등장하는 의혹 기사 노출을 놓고 갈등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당시 미국 미디어연구 교육기관 ‘포인터’(Poynter)는 “베이조스는 WP를 재정난에서 구하기 위해 루이스 CEO를 직접 선택했다”며 “특히나 위태로운 시기를 겪는 WP에 이러한 신뢰성 추락은 곧 직원들의 반란을 부를지도 모른다”고 했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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