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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는 온몸이 무쇠로 만들어졌고 목숨이 두 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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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초기 윤석열 정부는 지지율 하락세가 장기화된다 싶으면 ‘노조 탄압’을 반복했다. ‘건폭’ 발언이 상징하듯 건설노조가 주요 표적 중 하나였다. 그 여파로 건설노조 조합원이었던 고(故) 양회동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다른 건설노동자들의 삶도 무너졌다.

정부 지지율과 맞바꿔 건설노동자들이 빼앗긴 것은 무엇이었을까. 노조로 뭉치기 전 건설노동자들의 열악한 삶, 노조가 만들어진 뒤의 변화, 정부의 ‘노조 탄압’ 이후 다시 ‘쌍팔년도’로 회귀한 건설현장의 상황, 건설노동자들이 꿈꾸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이야기를 5편의 글로 전한다. 편집자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적어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건설노동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노가다’, ‘막노동’ 등 이 직업을 부르는 각종 멸칭은 불안정하고 험악한 건설 노동의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만큼 건설 노동은 고되고 위험한 일로 정평이 나 있다. 건설 노동에 대한 세간의 나쁜 평판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어쩌다가 이 일을 자신의 업(業)으로 삼게 된 걸까.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용, 임금 등 노동조건의 안정성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고용불안과 임금체불, 각종 산재위험으로 가득찬 현장이 내 일터이길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건설 현장에 발붙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더 나은 일과 삶을 그리며 건설 노동을 시작했지만, 기대와 현실 사이에는 큰 강이 흐르고 있었다.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일을 나설 수밖에 없었지만, 가진 것이라곤 맨몸뚱이 하나라서 달리 선택의 여지도, 항변할 기회도 없었다. 그저 이곳에서 요행히 한몸 건사하면서 땀 흘린 만큼 대가를 받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건설현장에서 박스를 깔고 쪽잠을 자며 쉬고 있는 건설노동자.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고용구조

‘평생직장’ 개념은 이제 옛말이 됐고 이른바 ‘N잡러’의 시대가 도래했다고들 한다. 정년까지 한 직장에서 머물 수 있는 일 환경은 점차 사라졌고, 전일제의 질 좋은 일자리도 더 이상 찾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것을 노동자의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떠드는 건 결국 ‘아프니까 청춘’ 같은 말처럼 구조적 문제에 질끈 눈 감으라는 말이다.

한국의 건설 산업은 고용과 물량이 철저하게 연계된, 그러니까 고용유연화가 극단적으로 실현된 곳이다. 일감의 수주에 따라 일자리가 났다가 없어지는 상황이 반복되니 건설노동자들은 고용의 단절을 수시로 겪어야만 했다. 대형 건설사들이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건설공사에 맞춰 외부에서 인력을 그때그때 수급하는 고용구조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작업 물량과 고용을 연계하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그렇게 건설 현장에 자리잡았다. ‘오야지’나 ‘시다오케’ 등으로 불리는 도급 팀장의 눈에 들어야만 취업 문턱을 간신히 넘을 수 있었다.

“거의 다 그럴 겁니다. 친구나 아는 지인 (소개를 통해서) 제일 빨리 들어갈 수 있는 데가 또 건설 쪽이고, 위험한데도….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양날의 검이죠.”

“그냥 ‘여기 일할 자리 있으니까 이거 할 거야?’, ‘응.’ 해서 현장에 들어가는… 이제 뭐 팀장이 면담을 해서 뭐 일 시키게 생겼으면 하고, 아니면 거부하고. 뭐 하루이틀 시켜봐서 아니다 싶으면 내보내고.”

「2022년 건설근로자 종합생활 실태조사」(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건설노동자의 ‘최초 구직 경로’는 인맥(67.2%), 유료직업소개소(10.9%), ‘현재 구직 경로’는 인맥(74.9%) 유료직업소개소(7.6%)로 조사되었다. 팀‧반장, 기능공 등 주변 인맥을 통해 일자리를 얻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렇게 건설 현장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인맥 의존도는 더욱 높아진 것이다.

“예를 들어서 누구 소개로 저 지방에 가서 일을 하고 그 다음에 뭐, 임금도 ‘내 마음대로’. …’정 씨’, ‘김 씨’, ‘어이’, ‘자네는 일당이 얼마야’ 누군가에 의해서 정해지는 거야.”

“이해관계가 엄청 많거든요. 예를 들어서 이제 시다오케 사장이 있으면요. 이제 원청에서 돈 내려서 하청에 돈 줄 거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하청에서 집행하는 게 18만 원이다 그러면 팀장 있죠? 팀장한테 16만 원 정도 내려줘요. 지(시다오케)가 2만 원 먹고요.”

▲ 건설현장 바닥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건설노동자.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위에서 너무 후려치죠” 하청의 재하청‘헐값’에 ‘날림’이 판치는 현장

‘오야지’나 ‘시다오케’를 통한 불법 다단계 하도급 관행이 절로 생겨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원청에서 하청, 하청에서 재하청으로 전가되는 ‘비용절감 압력’에 있었다. 원청 건설사(종합건설업체)들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공사에 투입하는 비용과 시간을 최대한 아끼려고 하기 때문이다. 공사비를 절감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하도급 계약을 통한 단가 후려치기’다. 일감을 따내겠다는 일념하에 벌어지는 하청 건설사(전문건설업체)들의 ‘제 살 깎아먹기’식 수주 경쟁은 결과적으로 공사비 부족을 초래한다. 하청 건설사들도 손해를 감수하면서 공사를 진행할 리 만무하다. 어떻게든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하청 건설사들은 줄어든 공사비에서 자기 몫을 떼어 먹고 또 다른 하도급사업자에게 일감을 떠넘긴다.

“회사 측에서…뭐냐 중간착취하는 거, 똥 뗀다고 그러죠. 이제 중간에 팀장이나 오야지 같은 경우, 그런 중간에 낀 사람들이… 종합건설사가 이제 그 시공을 맡으면 각 분야별로 하청들이 있지 않습니까? 실내 내장, 골조 업체, 이것저것 해서 몇 군데… 여러 배관, 전기, 그런 하청들이 하나씩 있잖아요?

우리는 그 하청 골조 업체에 속해 있는 그런 입장이잖아요. 근데 그 밑에 또 오야지라는 사람을 하나 둬요. 그래가지고 그 사람이 실제로 없어도 되는데, 만약에 직접 오면 다만 만 원이라도 우리 하루 일당이 높아지는데, 거기서 중간에 똥이라는 걸 띠어요.”

비용절감 압력은 부실시공으로 이어졌다. 저가수주와 다단계 하청구조가 고착화된 건설 현장에서 ‘품질시공’은 사치와 다름없었고, 노동자들의 안전은 늘 뒷전이었다.

“그 당시에는 안전이라고 할 것도 없었고… 뭐 지켜지는 것 자체도 없고, 목숨 내놓고 했죠. 그때는 정말 저도 지금 뭐, 손목, 발목, 허리, 팔꿈치… 이렇게 다쳐서 수술을 하고 지금 다 했지만…. 우리가 다치면 그 당시에는 그냥 내가 일하다 다치면 ‘내가 잘못해서 다쳤구나’, 그러고 그냥 내 돈 내서 병원 다니고, 아프다는 얘기도 못하고…. 그리고 치료 끝나면 다시 현장 나오고 그랬으니까…. 그 당시에는 산재를 얘기할 수도 없었고, 산재 한다고 하면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 이렇게 하는 게 그냥 거의 태반이었어요.”

▲ 적절한 안전장비 없이 위험한 고소작업을 하고 있는 건설노동자.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사람 대우를 못 받았던 거 같아” 공기는 ‘단축’, 권리는 ‘유예’

원래는 공사비로 써야 할 비용이 중간착취로 빠져나가면서 건설 현장의 노동조건도 한동안 바닥 수준을 면치 못했다. 무리한 공기단축이 횡행한 결과, 건설노동자들은 장시간‧고강도‧고위험 노동에 내몰렸다. 공사기간이 줄어들수록 노동자의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엄청 (일하는) 시간이 길고요. 달 보고 출근해서 달 보고 퇴근하는 거. 우리가 당시 얘기는 뭐, 못대가리 안 보일 때까지 두드리고, 보통 끝나는 시간이 저녁 7시 반 정도에 끝났다고, 제일 처음엔….”

건물을 짓는 노동자를 한낱 ‘비용’으로 간주하는 건설 현장에서 존엄과 평등이 들어설 여지란 없었다. 노동자는 그저 ‘묵묵히 일만 하는 노예’였다.

“섭섭했던 게 어떠한 현장에 가서도 노동자 대우가 너무 열악한 거예요. 같은 현장에 같은 인간이 일하는데 상하 계급 구도가… 이 노동자를 너무 못 살게 구는 거야. 그러니까 아예 대우를 안 해줬지. 그 다음에 좀 뭐라 그래야 되죠? 너무 착취가 심한 거예요, 제가 받은 느낌이….”

불법 다단계 하도급으로 인한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중간착취 임금삭감(일명 ‘똥떼기’)으로 인한 저임금화는 물론, 임금체불(건설 현장에서 ‘스메끼리’라 불리는 유보임금 관행 역시 임금의 정기지급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에서 명백한 임금체불이다.)까지 만연했다. 일하는 사람의 유일한 버팀목인 근로소득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자들이 활개를 치니 ‘똥떼기’와 ‘스메끼리’가 건설 현장의 관행으로 굳어버렸다.

“그때는, 우리는 일하다가도 11월 월급은 언제 나오냐 하면 1월 초에 나오거든. 1월 1일, 2일 그때 나오거든. 12월 달에 안 나와요, 11월달 월급이…. 그리고 한 달 건너서 나온단 말이야. 근데 이게 안 나오면 그 다음부터는 일을 못해요. 돈 받자고 막 뛰어댕기고 계속 그래야 되니까….”

이렇게 월급 밀려도 우리는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수밖엔 없나? 우리는 온몸이 무쇠로 만들어졌고 목숨이 두 개라도 된다고 생각하나? 정말 이래도 되는 거냐고 세상에 소리쳐 묻고 싶었다. 불법과 차별이 난무하는 건설 현장에서 ‘살아남기’를 넘어 ‘살아가기’를 노동자들은 간절히 원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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