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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정년 연장을 두고 노동계 내에서도 일치된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는 쪽은 급격한 고령화와 저소득 고령층을 위해 일할 기간을 법적으로 늘려주자고 요구한다. 하지만 정년 연장에 신중한 쪽은 대기업 정규직과 같은 이미 높은 소득층에 혜택이 쏠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우리 고용시장의 양극화를 만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노동계가 공감하면서도 정년 연장 접근법이 다른 셈이다.
27일 노동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조합 지형을 양분하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법적 정년 연장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다르다. 양대 노총이 노동권 신장, 공공성 강화, 취약 계층 보호 등 현안마다 일치된 목소리를 내온 상황과 대비된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8월부터 국민 동의 청원에 나서는 등 65세 이상 법정 정년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올 2월에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요구한 핵심안에 정년 연장을 담았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노동계 몫으로 참여해 정년 연장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노총이 정년 연장을 원하는 이유는 너무 빠른 고령화와 저출생이다.
법정 정년과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 차이도 정년 연장 주장의 핵심 근거다.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2033년부터 65세로 바뀐다. 현행 정년 60세와 비교하면 5년이라는 수급 공백이 발생한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을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빈곤 고령층이 가장 많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한다.
반면 민주노총은 올 2월 총선 요구안에 정년 연장안을 담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최근 공개한 연례 ‘전국 노동환경 실태조사’에서도 국민에게 정년 연장 찬반을 묻지 않았다.
민주노총이 정년 연장을 공개적으로 요구하지 않은 것은 대기업과 공공 부문 정규직 근로자에게 혜택 쏠림이 일어난다는 우려 때문이다. 우리 노동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인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걱정한다는 의미다. 노동시장은 대기업·정규직이 임금 100을 벌면 중소기업·비정규직은 50~60에 불과할 만큼 임금 격차가 심한 상황이다.
이 차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벌린 수직 계열화와 제조업 중심 산업, 연공성이 강한 임금 체계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결과다.
노조 지형도 원인으로 꼽힌다. 노조 조직률이 13%대로 더 낮아진 상황에서 여전히 대기업과 공공 부문에 쏠린 노조가 강한 협상력을 통해 더 확대했다는 분석이 많다. 민주노총 조합원은 정규직 근로자가 약 40%로 비정규직(약 35%)보다 근소하게 많다. 하지만 정규직을 분석하면 현대자동차처럼 상대적으로 고임금인 사업장이 적지 않다. 현대차 노조는 임금이 보전되는 방식의 정년 연장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출신인 양경수 위원장이 재선에 성공하는 등 민주노총 내부적으로 노조의 기득권에 대해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서서히 나온다. 양 위원장은 2021년 12월 기자 간담회에서 “노조 자체에 대한 혐오와 민주노총 혐오는 다르지 않다”며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인데 노조가 없는 노동자에 비해 많은 기득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 중 대기업들이 정년 연장을 원하는 상황을 알고 있다”며 “하지만 정년 연장이 비정규직에게 도움이 되는지 고민인 상황에서 전체 근로자를 대변하려는 민주노총이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만일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전격적으로 복귀해 노사정 대화에 참여할 경우 계속고용 방안 논의 방향은 노동계의 이견으로 더 예측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민주노총은 경사노위가 정부의 정책 기구라는 인식 속에 참여를 거부해왔다.
노사정 대화에 참여 중인 한국노총이 65세 정년 연장 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과 ‘손’을 잡을지도 변수다. 법적 정년 연장은 법 개정 사항이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국회 여소야대 구도에서 법안 통과는 민주당이 키를 쥐고 있는 상황이다. 만일 노사정 대화가 임금 체계 개편을 전제로 계속고용 방안을 합의한다면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노동 개혁은 임금 체계와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두 축으로 설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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