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외부에서 기술과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개방형 혁신(오픈이노베이션)이 확산되는 가운데, 투자와 육성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오픈이노베이션이 부상하고 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한시적 기술협력을 넘어 투자·보육을 지속해야 실질 성과를 창출한다는 판단에서다. 국내에서는 지역 혁신창업허브를 담당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진화한 오픈이노베이션의 가교 역할로 주목받는다.
미국 실리콘밸리 오픈이노베이션 특화 액셀러레이터 마인드더브릿지(MTB)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오픈이노베이션이 복잡하고 하이브리드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동안은 대기업이 스타트업과 기술실증(PoC)으로 새로운 기술·아이디어 사업성을 검증하는 ‘협력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수익창출과 비용 절감 등으로 입증하는 ‘결과의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투자를 받거나 인수합병(M&A) 등 전환점을 맞을 수 있다.
하이브리드 오픈이노베이션에서 중요한 것은 기업 육성 역량이다. 독일 도이치텔레콤은 기술 인큐베이터 ‘허브라움’을 두고 입주기업 3분의 1 이상과 협업했다. 프랑스 로레알은 스타트업 캠퍼스 스테이션F에서 5년간 85개 스타트업을 육성했고, 발굴 스타트업은 공동개발·라이선싱을 거쳐 공급계약까지 체결했다. 유망 기업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면서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한국에선 각 지역 창경센터가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연결하고 있다. 다년간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후속 투자, 구매계약 등의 성과도 창출했다.
롯데웰푸드는 지난해 부산창경센터를 통해 식품안전인증 서비스 기업 바다플랫폼과 인연을 맺었다. 아이스크림 브랜드 파스퇴르밀크바의 원료 우수성을 알리려는 롯데웰푸드와 블록체인으로 식품안전 정보를 제공하는 바다플랫폼 수요가 맞아떨어졌다. 두 회사는 전국 34개 지점에서 QR코드로 원산지·유해물질·푸드마일리지를 확인하는 PoC를 진행했고, 정식 공급계약으로 이어졌다. 롯데GRS와 파스퇴르우유 제품으로 QR 서비스 확대도 준비한다.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라이언로켓은 최근 CJ인베스트먼트로부터 시리즈A 브릿지 투자를 유치했다. 라이언로켓과 CJ는 2019년 서울창경센터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났다. 콘텐츠 분야 선도기업인 CJ와 함께 AI 웹툰으로 글로벌 시장을 개척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소셜벤처 아크론에코와 협업 끝에 원자로냉각재펌프 완전분해 점검을 위한 화학제염 신기술을 확보했다. 경남창경센터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이 대기업 성과 확산을 이끈 사례다.
제주창경센터는 워케이션을 오픈이노베이션에 접목했다. CJ대한통운, 현대자동차, DB손해보험 등 8개 기업이 스타트업과 함께 제주에서 협업한다. 몰입형 협업이라는 새로운 모델이 구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역 유망 스타트업을 찾지만 정보가 부족한 대기업을 위해 우수 기업을 목록화하고, 각 지역에 특화된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으로 한국만의 하이브리드 오픈이노베이션 생태계를 완성할 계획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오픈이노베이션이 보편화되며 성과를 더욱 향상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역량 있는 각 지역 스타트업을 대기업과 연결해 추가 성장을 도모하는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송윤섭 기자 sy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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