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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 김근식, 박병화 등 아동을 대상으로 한 상습적, 약탈적, 끔찍한 고위험 성범죄자들이 출소할 때마다 국민들께서 우려하셨다.”
“이미 형을 선고받고 형기를 마친 고위험 성범죄자들이 출소해서 지속적으로 사회로 돌아오고 있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줄일 조치가 필요하다.”
1년 전인 지난해 10월 26일, 이른바 ‘한국형 제시카법(고위험 성폭력 범죄자의 거주지 제한 등에 관한 법률)’이 입법예고 됐습니다. 골자는 정부가 재범 위험이 높거나 13세 미만 아동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이들에 대해 출소 이후에도 지정된 시설에 거주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야심차게 공개한 이 제정안은 당시 큰 주목을 받았지만 결국 시행되지 못했습니다. 올해 1월 국무회의를 겨우 통과했으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5월 21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국형 제시카법’이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거주지 제한 효과에 대한 갑론을박도 있습니다. 문제는 전자발찌 출소자가 매년 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을 밀착 관리할 수 있는 인력 수는 제자리걸음이라는 점입니다. 고위험 성범죄자의 거취가 자유로운 상황에서 보호관찰관들의 업무 과중만 높아진다면 ‘관리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존재합니다. 이번주 폴리스라인에서는 ‘한국형 제시카법’의 탄생 계기와 관련 쟁점, 현 주소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미국 ‘제시카법’ 하기엔 좁다…’한국판’ 법안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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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제시카법’은 2005년 미국에서 제정된 제시카법을 모델 삼아 한국 실정에 맞게 손질한 법이었다. 제시카법은 2005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아동 성범죄 사건(피해자 ‘제시카 런스퍼드(사건 당시 9세)가 성범죄 경력이 있는 이웃 남성에게 납치·강간·살해 당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이 법은 아동 대상 성범죄자에 대해서 유치원·학교 등 미성년자 교육시설로부터 600∼700m 이내 거주를 제한하고 영구적으로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하도록 했다.
당초 법무부는 원조 제시카법과 유사하게 500m 이내 거주 제한을 검토했지만 땅 자체가 좁은 한국에서 도입할 경우 서울 내에 출소한 성범죄자가 거주할 수 있는 곳이 남아 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미성년자 교육시설이 빽빽한 대도시를 피해 지방으로 출소자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비판이 불거지며 국가가 지정한 시설에 살게 하는 ‘한국형’이 대안으로 탄생한 것이다.
악명 높은 성범죄자 출소 때마다 사회 ‘들썩’…”우리 동네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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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제시카법은 사실 논의 초반부터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헌법에 보장된 거주 이전의 자유 침해와 이중 처벌이라는 측면에서다. 그럼에도 큰 관심을 받은 것은 2020년 12월 조두순, 2022년 10월 박병화 등 악명 높은 성폭행범이 연달아 출소하며 거주 지역 주민의 격렬한 반발과 사회적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징역 12년의 형기를 마치고 만기 출소한 조씨는 지난해 12월 야간외출 제한 명령을 어기고 집을 나섰다가 재판에 넘겨지며 또 한번 논란에 불을 붙였다.
고위험 성범죄자가 출소할 때마다 1:1 전자감독 관리를 받는 것은 물론, 지역 주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든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재 안산 모처에 위치한 조씨의 주거지 근방에는 조씨를 상시 감시하기 위한 경찰과 시청의 방범 초소, 감시인력, CCTV 34대가 배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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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의 경우 올해 5월 14일 연쇄 성범죄자 박병화가 거주지를 수원시로 이전하면서 주민들이 일제히 박병화 퇴거를 촉구하는 등 단체 활동에 나섰다. 당시 수원시는 전입 관련 대책회의를 개최한 뒤 초소 설치·운영, 홍보물, 시민 안전물품 구입, 폐쇄회로(CCTV) 설치 등을 위한 예비비 1억 3020만 원을 편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1:1 관리 대상 출소자 9명→87명…감독 인력 부족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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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험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법적 근거가 부재한 가운데 전체 전자감독 대상자는 물론 1:1 전자감독 대상 출소자까지 빠르게 늘며 관리 인력의 업무가 과중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법무부에 따르면 전자감독 대상자는 2019년 3111명에서 2024년 8월 기준 4270명으로 약 5년 만에 40%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이들을 전담하는 보호관찰관 수도 늘어났지만 1인당 관리인원은 13.6명에서 17.6명으로 뛰었다.
관리 인력이 ‘1명’만 전담 마크해야 하는 1:1 전자감독 대상자가 크게 늘며 그 외 보호관찰관들이 감독해야 하는 범죄자 수가 늘어난 탓이다. 올해 10월 기준 1:1 전자감독 대상자는 87명으로 지난해 1월(75명)보다 12명이 늘었다. 2019년(8명)과 비교하면 약 11배 폭등했다. 전담 직원 인력 증원이 전자감독 대상자가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업무 과중으로 관리에 빈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실제 밀착 관리 실패 사례도 있다. 앞서 2021년 8월 발생한 강윤성 사건이 대표적이다. 전과 14범이었던 강씨는 강도강간·강도상해죄 등으로 징역 15년형을 살고 출소 3개월 만에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나 사흘 만에 두 여성을 살해했다. 강씨는 사건이 발생하기 두 달 전인 6월에 이미 한 차례 야간 외출 제한 명령을 어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법제화 어렵다면 인력 증원이라도…출소자는 매년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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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강윤성이 끝이 아니다. 미성년자 연쇄 성폭행 혐의로 수감 중인 김근식은 2년 뒤인 2027년 10월 출소 예정이다. 매년 고위험 성범죄자들이 사회로 복귀하고 있지만 관리 인력은 부족하고 관련 법안도 폐기된 가운데 이들에 대한 관리를 어떤 방식으로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형 제시카법’이 22대 국회 문턱을 넘더라도 인력 증원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재범 위험이 얼마든지 남아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고위험·아동 성범죄자가 출소할 때마다 거주지를 놓고 지역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복귀 후 관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앞서 2022년 김근식이 출소를 하루 앞두고 또 다른 성범죄 혐의로 재구속된 당시 이제복 아동안전위원회 위원장은 “기존 법무부의 전자발찌 시스템은 성범죄자가 특정 지역 또는 접근금지 거리 이래 접근하면 그후에 추적 중앙관제센터에서 알람이 울리고 경찰이 출동하기 때문에 범죄자를 잡기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사전에 예방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하고 “김근식에게 추가로 취해진 외출 시 보호감찰단 밀착동행·전담경찰관 근거리동행 조치가 3000명이 넘는 전자발찌 착용자에게 지속적이고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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