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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사에서 발생하는 ESG 리스크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가장 통용되는 방법은 기업이 ‘협력사 행동 규범’(supplier code of conduct)을 만들고 협력사로 하여금 이를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기업은 자신과 거래하는 협력사가 지켜야 할 노동·인권·환경·윤리 등에 관한 준칙을 문서로 제정하여 공표한다. 기업은 협력사에 이 문서를 준수할 것을 권고하거나, 협력사로부터 행동 규범 준수에 관한 서약서를 받거나, 협력사와의 계약서에 행동 규범 준수 조항을 삽입하기도 한다. 행동규범을 지키는 협력사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기도 하고, 행동 규범을 위반하는 협력사가 있는지 정기적으로 점검하여 시정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행동 규범의 내용은 점점 진화했다.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2008년부터 2019년 사이 S&P500 기업이 공시한 행동 규범의 길이는 29% 증가했다. 애플의 협력사 행동 규범 및 부속문서의 분량은 206쪽이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아지고 해외 사업장에서 준수할 ESG 규제가 늘어났다. 기업은 투자자, 고객사, NGO 등의 요구사항을 행동 규범에 반영해 더 많은 글로벌 준칙을 준수하겠다고 선언했다.
행동 규범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규칙에서 시작했지만, 이제 법령상 의무가 되었다. 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은 기업이 자사, 자회사 및 협력사에 적용될 행동 규범을 제정하도록 규정했다. 행동 규범은 조달·고용·구매 결정 등 기업의 모든 기능과 운영에 반영되어야 하며, 기업은 직간접 협력사에 행동 규범의 적용을 확대하고 이행을 검증하는 조치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CSDDD는 기업이 협력사로부터 행동 규범을 준수하겠다는 ‘계약상 보증’(contractual assurance)을 받고, 협력사가 이를 준수하는지 독립적 제3자를 통해 검증할 수 있도록 했다.
조금 의문이 든다. 더 많은 글로벌 준칙을 기업의 행동 규범에 포함하고 협력사에 이를 준수하도록 요구하면, 공급망에서 ESG 리스크의 발생을 줄일 수 있는가? 물론 기업의 윤리적 행동에 대한 기대 수준을 전반적으로 높이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중소 규모 협력사는 인력과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에 ESG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주거래처가 요구한 행동 규범의 준수 및 검증에 관한 계약 조항에 날인을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문제 해결 역량이 부족한 협력사에 계약상보증을 요구하는 것만으로 공급망에서 인권·환경 침해를 실질적으로 예방하기 힘들 수 있는 것이다.
협력사에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협력사에 책임을 다하는 것도 필요하다. 독일 정부는 공급망 실사법 해설 가이드에서 기업이 개별 사안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다음의 사례를 예시했다. A기업의 한 협력사에서 최저임금 미지급 이슈가 불거졌다. A기업은 협력사 행동 규범에 ‘적정임금의 보장’이 명시되어 있다며 협력사들에 시정 및 검증을 요구했다. 확인해보니 최근 최저임금이 상승했지만 A기업의 구매대금은 그대로여서 협력사들이 직원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A기업은 기존의 구매대금 결정 기준 및 지급 관행을 개선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최저임금 미지급 이슈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게 되었다.
회사와 협력사,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공급망 ESG 리스크를 예방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협력사는 행동 규범을 성실히 이행하고, 회사는 책임 있는 구매 관행을 정립해 협력사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서로 동등한 조건에서 ESG 책임을 약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CSDDD도 “계약상 보증은 회사와 협력사가 책임을 적절히 분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하며, “중소기업으로부터 계약상보증을 받거나 중소기업과 계약을 체결할 때 사용되는 조건은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이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우리 공급망에서 책임 있는 기업 행동과 구매 관행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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