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환경부가 현행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강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대신 야구장과 놀이공원, 공항, 대학 등 대형시설을 중심으로 보증금제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제도 시행 여부에 이어 내용까지 지자체 자율로 돌리면서 환경부는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전국에서 시행할 의지가 없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25일 정부 발표를 종합하면 환경부 김완섭 장관은 전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종합 감사에 출석해 이 같은 일회용컵 보증금제 개선안을 발표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정부가 2022년 6월 전국에서 시행하겠다고 행정예고까지 한 제도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소상공인 부담 등을 이유로 시행이 6개월 유예됐다. 이후 제주, 세종 지역에서만 시범적으로 축소 시행됐다. 이에 감사원이 공익감사 후 환경부에 전국 확대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 외 지역은 2025년 말까지 시행을 결정하도록 했는데, 이번 국정감사에서 환경부가 자율화 방침을 공식화하면서 전국 의무화는 사실상 폐기됐다.
김 장관은 “일회용컵은 재활용 가치가 개당 4.4~5.2원으로 감량 효과가 적으나 회수·재활용을 위해 매장당 부담해야 할 컵 처리비용은 43~70원”이라며 “전국 확대 시 매장당 연평균 200만원 이상의 부담이 예상되며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까지 일괄 확대 시 사회적 비용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전국 확대 기조는 유지하되 모든 지자체가 동일한 기준·방식으로 적용하는 것보다 지역 여건에 맞게 대상, 기준, 방식을 정하는 걸로 결정했다”며 국회에 지자체에 권한을 부여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다.
운영 시스템 역시 보증금관리센터에서 일률적으로 담당하고 민간 자체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 관련 시장을 확대하겠다고도 언급했다.
우선 환경부는 대형시설과 일정구역에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먼저 도입할 계획이다. 야구장, 놀이공원, 공항 등에서 소비자들이 컵을 쉽게 반납할 수 있도록 회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물론 현금뿐만 아니라 포인트 적립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할 방침이다.
각 프랜차이즈 가맹점에는 일회용컵 사용을 허용하되, 자체 반납 시스템을 활용해 포인트를 지급하는 ‘프랜차이즈 단위 보증금제’를 자율 시행할 예정이다.
이 같은 방안을 바탕으로 공청회를 열어 국회와 소통·논의를 확대하고 지자체 및 관련 업계 등과도 추가로 대화를 나눈 뒤 개선안을 확정하겠다는 게 환경부의 입장이다.
또한 이날 김 장관은 지난 8일 국정감사에서 공개됐던 ‘일회용컵 보증제 대안’ 내부 문서에 대해서 공식 사과했다.
환경부 내부 문건에는 카페 등에서 일회용컵을 유상판매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담겼다. 특히 이 같은 안을 홍보하기 위해 학계, 시민사회, 언론 등을 두고 “우군화 가능성이 확인된 그룹을 적극 활용해 여론 환기 유도를 한다”는 내용이 실린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여러 혼란과 우려, 오해를 드리게 된 점을 사과드린다”며 “그 내용은 부적절하다. 그 문건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책임은 장관에게 있다”고 말했다.
국정감사 자리를 통해 사실상 환경부가 ‘일회용 컵 보증금제’ 전국 의무화를 폐기한 셈인데, 이로 인해 ‘정책 후퇴’라는 비판이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 확대 기조는 유지한다고 발표했지만 지자체와 소비자 자율에 맡기면서 시행 동력이 실리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환경단체들은 ‘사실상 폐지’ 아니냐며 환경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환경운동연합 자원순환팀 유혜인 팀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의도적으로 부정적 표현해 조작한 사실이 드러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이 같은 환경부의 발표는 사실상 폐지라고 공표하는 것”이라며 “몇년 간 계속 시행을 번복하면서 시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소상공인을 힘들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회용품 플라스틱 문제는 미루면 안 되는,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제도 시행을 정상화하고 환경 상황을 개선할 정책을 조속히 마련,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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