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랑 거래 안 하고 싶어요. 이 책들은 회송 처리할 예정입니다.”
전북 군산 한길문고의 문지영 대표는 그 귀한 ‘한강 책’을 포장도 풀지 않고 구석에 쌓아 놓았다. 교보문고에서 보내온 책들이어서다. 지난 11일 ‘책의 날’ 행사 때문에 서울에 왔던 문 대표는 광화문 교보문고 매대에 쌓여 있던 한강 책(‘흰’)을 목격하고 어리둥절했다. 10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 선정 소식을 듣고 바로 다음날 교보문고 영업팀에 전화했지만 “기다리라”는 말만 들었기 때문이다. 소매(고객 판매)와 도매(서점 공급)를 겸하는 교보문고는 10일부터 14일까지 도매 주문 창을 닫았다가, 15일부터 종당 10권으로 제한해 주문 접수를 재개했다.
한강 책 123만부 판매(교보·예스24·알라딘 집계, 지난 21일 기준)라는 전례 없는 상황 속에서, 수상 직후 주문 창이 닫혀 교보문고에 책을 주문하지 못했던 동네 서점의 분노 목소리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교보문고가 이례적으로 지역 서점과의 상생을 위해 22~31일 오프라인 매장에서 한강 책 판매를 한시적으로 제한하는 조처까지 취했지만, 동네 서점들은 되레 호소문까지 내며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는 지난 23일 ‘정녕 대한민국 독서문화의 실핏줄을 끊어놓겠다는 것인가’라는 호소문을 내어 대형 유통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소매와 도매를 같이 하는 교보의 경우 (한강 책) 도매를 중지하고 소매로 자사에서만 판매를 독점했고, 예스24와 알라딘 등에서도 도매로 책을 받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전국 수백개의 작은 책방들은, 욕심으로 얼룩진 대형 유통사의 민낯과 우리나라 출판유통의 불공정과 불합리를 절절하게 체험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특히 교보문고를 문제 삼고 있다. 2022년 이후 교보문고와만 거래하는 지역 책방이 전체의 50%에 이를 정도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정은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국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교보문고가 책방들과 ‘상생’한다고 마케팅할 게 아니라 (초기 잘못에 대해)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출판사나 대형 유통사가 제대로 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책을 구하기 힘든 상황이 되니까 지역 서점이 뒷전으로 밀렸는데, 이번 사태를 학습 기회로 삼아서 출판사나 대형 유통사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 최소한의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또 “책이 공공재라고 생각한다면 동네 책방을 우선시하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보문고는 “주문 창을 닫은 것은 노벨상 발표 뒤 한 서점에서 3천권을 주문하는 등 수요가 폭주했기 때문”이라며 “14일 책이 입고되기 시작해, 15일 지역 서점의 주문을 받고 배본했다”고 밝혔다. 도매 물량을 소매 물량으로 돌린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출판사 재고분 중 일부가 들어와 광화문점과 강남점에서 소량 판매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한겨레 구둘래 기자 /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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