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파우치 앵커’로 불리는 박장범 KBS ‘뉴스9’ 앵커가 차기 KBS 사장으로 임명되어선 안 된다는 언론계 원로, 시민단체, 현업인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24일 과거 군사독재정권에 맞선 언론인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 50주년 행사가 예정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92개 단체가 모인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이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위법적 KBS 사장 선임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애초 기자회견 장소는 자유언론실천선언 50주년 행사가 예정된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으로 공지됐지만, 회견 직전 프레스센터 1층 바깥으로 변경됐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김효재 이사장의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기자회견을 불허해서 자리를 옮겼다”며 “그 김효재 이사장이 어떤 사람인가. 위법적 2인 체제 방송통신위원회 의결을 주도했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심히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관련해 언론재단 측은 해당 기자회견은 장소 신청 계획서에 없었던 내용임을 안내했을 뿐이라고 했다.
앞서 KBS 이사회는 23일 여권 이사들만 참여한 표결을 통해 박장범 앵커를 차기 사장 후보로 임명제청했다. 박 앵커는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과의 대담에서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을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의 조그만 백을 어떤 방문자가 놓고 가는 영상이 공개”된 일로 표현했다. 낙하산 논란의 박민 사장이 취임한 직후 ‘뉴스9’를 맡은 뒤 KBS의 여권 비판적 보도를 ‘공정성 훼손 사례’로 칭한 뉴스 리포트로도 비판 받았다.
기자회견에서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는 “‘땡윤방송’, ‘박민의 방송’에서 ‘윤석열·김건희 방송’으로 가는 결정적인 인사”라고 비판했다. 한종범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제 얕은 영어 상식으로 ‘파우치’와 ‘명품백’이 무슨 동의어인지 모르겠다. 이건 사실보도가 아니다. 허위 보도”라며 “(박장범 사장 임명은) 공영방송 KBS가 국민의 입장에서 사실 보도를 포기한 것”이라고 했다.
나준영 한국영상기자협회 회장은 “KBS를 정권 홍보 방송으로 전락시킨 사람이 사장이 된다면 KBS의 카메라를 들고, KBS 로고가 달린 마이크를 들고 시민과 함께 취재하고 보도하고 제작하는 게 과연 자랑스럽겠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KBS 사장 후보 임명제청 표결에 불참한 야권 소수이사 중에서도 류일형 이사가 기자회견에 동참했다. 그는 “김건희 여사의 디올 명품백 수수를 조그만 파우치라고 의미를 축소해 대통령 부인의 심기를 경호했다는 비난을 받아온 박장범 앵커가 일약 KBS 사장 자리를 꿰찼다. 대가성을 의심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부끄러움을 안고 다시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지금 회견을 하고 있는 이 자리가 언론자유를 상징하는 ‘꺾이지 않는 펜’이라는 조형물 앞이다.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다,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는 언론자유 투쟁의 역사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오늘은 권력의 언론통제에 맞서 자유언론실천을 선언한 50주년 기념일”이라며 “그 정반대에 있는 인물을 대한민국 최고 공영방송의 사장 후보로 마주하게 됐다. 참담하다”고 했다.
전날 24시간 총파업에 나선 언론노조 KBS본부의 조애진 수석부본부장은 “어제 KBS엔 전국에서 모여든 경비 직원 200명이 사내에 쫙 깔렸고 사장 후보자들은 직원 출입카드로는 열리지 않는 쪽문들을 통해 면접장을 드나들었다”며 “당연하다. 불법적 2인 체제의 방통위에서 시작된 KBS 사장 선임 절차에 낙하산들끼리 경쟁하는 황당한 사장 선임판에 KBS 직원들이 7년만에 파업의 깃발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 수석은 이어 “입에 담을 수 없는 아부로 얻어낸 KBS 사장 자리로 제 명을 다할 거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며 “권력은 짧고 우리 양심은 영원히 기록된다”고 목소리 높였다.
공동행동은 기자회견문에서 박장범 앵커의 ‘파우치’ 논란을 두고 “용산은 이런 박장범씨의 태도가 아주 흡족했던 모양이다. ‘대통령 술친구’라던 박민 사장을 내팽개치고 박장범씨를 차기 사장으로 낙점했으니 말이다”라고 했다.
이들은 “소수이사들이 퇴장한 상태의 1차 투표에서 바로 과반 넘는 득표를 했다는데 모종의 지시나 사전 담합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개입 주체는 끝까지 김건희 여사를 보호하겠다는 대통령실이 아니고선 설명되지 않는다. 누가 지시하고, 어떤 과정으로 실행되었는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원이 2인 체제 방송통신위원회 의결이 위법하다고 판단한 만큼 이진숙-김태규 2인 체제 추천을 받아 임명된 KBS 이사 7명은 차기 사장 후보자를 공모·선출할 자격이 없다. 아울러 공영방송 사장선임 절차로 자리잡은 시민평가 과정을 배제한 것은 국민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점에서 선출과정도 정상적이지 않다”고 지적한 뒤 “KBS를 정권에 헌납한 낙하산 이사 7명은 즉각 사퇴하라. 국회는 국민이 공영방송 KBS의 진정한 주인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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