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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동아일보 기자 부고… 안종필, 성유보, 권근술, 조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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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편집국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 현장.
▲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편집국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 현장.

“벌써 18명이나 고인이 되셨다니.” 성유보 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이 2014년 3월 한겨레에 쓴 칼럼의 일부다. 안타까움을 드러냈던 성유보 전 위원장도 이 글을 남기고 불과 70여일이 지난 시점에 별세했다.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선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이 50주년이 되는 2024년. 동아투위 113명 중 고인은 41명에 달한다. 선언 당시에만 해도 30대 안팎의 청년이던 이들은 복직은커녕 동아일보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도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자유언론실천선언 50주년을 맞아 동아투위의 주역들의 ‘부고’를 다시 쓴다.

안종필.

‘그럴 수가’. 1969년 9월15일 동아일보 7면 기사 제목이다. 전날 통과된 박정희 정권의 3선개헌안에 대한 시민 반응을 담은 기사였다. 비상식적인 개헌에 당혹스러운 민심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파격적인 제목은 반향을 일으켰다. 이 제목을 만든 사람은 안종필 기자였다.

한국 언론사에 상징적 존재인 안종필 기자는 1937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일보, 조선일보를 거쳐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1974년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에 그는 평기자가 아닌 차장으로 이례적으로 참여했다. 이후 동아일보기자협회 분회장을 맡았고, 동아투위 2대 위원장을 지냈다.

▲ 안종필 기자.
▲ 안종필 기자.

해고 이후에도 안종필 기자와 가족은 정보기관으로부터 수시로 감시를 당했다. 해직 후에도 그는 동료들과 만나 ‘자유언론’을 논했다. 당시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않는 소식을 다룬 ‘민주인권 일지’ 사건에 연루돼 징역 및 자격 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 1979년 12월4일 구속 집행 정지로 석방됐다. 감옥에서 간암을 얻었고 조기에 치료하지 못해 출소 직후인 1980년 2월29일 사망했다.

그는 한겨레 창간에 8년 앞서 사망했지만 한겨레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동료였던 성유보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은 2014년 한겨레 칼럼을 통해 안종필 기자와의 성동구치소 시절 대화를 떠올렸다. 그에 따르면 안종필 기자는 이렇게 강조했다.

“새 시대가 와서 우리가 언론계에서 다시 일할 수 있게 될 때, 신문은 어떻게 만들고, 경영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가로쓰기에 한글전용을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신문은 너무 식자층 중심으로 제작되고 있는데, 민주를 위한 진정한 신문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글전용을 해야 돼. 새 시대가 오면, 국민들이 골고루 출자해서 그들이 주인이 되는 신문사를 세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해. 그렇게 되면 편집권은 독립될 수 있어.” 

한겨레 창간을 주도한 언론인들은 그의 뜻을 전면적으로 수용해 최초의 가로쓰기 한글전용 신문을 만들었다. 성유보 이사장은 “안종필은 오늘날에도 언론자유의 정신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 있다”고 했다. 안종필 기자의 부인인 이광자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평소에도 ‘신문은 가로로, 한글로 쓰여야 한다’고 말을 참 많이 했다. 한겨레신문이 창간된 뒤 가로로 쓰인 것을 보고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결국 이뤄졌네’라고 생각이 들더라”라고 했다.

안종필 기자의 뜻은 안종필 기자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1987년 그의 동료들은 ‘안종필 기자상’을 제정해 자유언론의 뜻을 실천한 이들에게 매년 시상하고 있다. 안종필 기자의 유족은 상금을 기부해오고 있다.

성유보.

안종필 기자와 함께 자유언론의 구상을 함께 했던 성유보 이사장은 민주화 이후에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고, 2024년 10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별세했다. 그는 한국 언론 민주화운동의 역사로 불린다.

경북 경산 출신인 성유보 이사장은 1968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했다. 1975년 해직된 후 동아투위 위원장을 지냈다.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다.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한 월간 ‘말’을 창간했다.

▲ 2003년 1월 성유보 당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이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공정거래위원회 언론사 과징금 취소 결정 철회와 신문고시 개정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 2003년 1월 성유보 당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이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공정거래위원회 언론사 과징금 취소 결정 철회와 신문고시 개정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1988년 한겨레 창간의 주역 중 한명으로 꼽힌다. 그는 한겨레 초대 편집위원장을 맡았다. 2014년 성유보 이사장 별세 당시 안수찬 한겨레 기자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는 전에 없는, 전무후무한 부서들을 만들었어. 정치부가 아니라 정치경제부를 만들었지. 정치와 경제의 결탁을 감시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니까. 사회부가 아니라 인권사회부를 만들었지. 검찰, 경찰 자료를 받아쓰는 게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도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니까. 한국 언론 최초로 여론매체부도 만들었지. 권력을 감시하는 게 언론이라면 언론권력을 감시하는 것도 언론이니까.”

성유보 이사장은 한겨레 창간 3년 만에 한겨레를 떠났다. 그가 택한 길은 시민사회였다. 1998년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을 맡아 언론운동에 헌신했다. 2013년 희망래일 이사장, 2014년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을 지내며 평화운동에도 참여했다.

다시 그는 펜을 들었다. 2014년 자유언론실천선언 40주년을 맞아 한겨레에 회고록 「길을 찾아서」를 연재했다. 연재는 고인의 별세 4개월 전까지 지속됐다. 

그는 마지막 연재에서 ‘언론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관세음보살은 세상 사람들 목소리를 듣는 보살이란 뜻이란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 또한 그 시대 언론인이었다. 그러므로 한 시대 ‘언론의 자유’는 당대 백성들의 시대적 소망과 동떨어져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을 요즈음 확실히 깨닫고 있다.”

그는 끝까지 거리를 지키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2014년 그는 유가족, 시민과 나란히 섰다. 생전 마지막으로 했던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언론은 육하원칙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 사물을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독재권력의 눈으로 보느냐, 아니면 대자본의 눈으로 보느냐, 아니면 국민의 눈으로 보느냐.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언론은 국민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기레기 언론이 됐다.”

권근술.

그는 언론사 사장이었지만 끝내 해직기자였다. 1941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7년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초년병 시절 사회부 기자로서 탄광촌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파헤치는 기사를 썼다.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정면으로 맞선 그는 다른 동아투위 위원들과 마찬가지로 1975년 해직됐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위원으로 참여했다. 한겨레 편집위원장, 편집인, 논설주간 등을 역임했고 1995년부터 4년 간 한겨레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는 1999년 한겨레 논설고문 재직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수여하는 은관문화훈장을 사양해 화제가 됐다. 당시 미디어오늘은 “언론인에 대한 훈장 수여를 일부 언론이 1면 주요기사로 처리할 정도로 ‘의미’를 부여하는 상황에서 신선한 충격”이라고 보도했다. 

▲ 2011년 '어린이 어깨동무' 15주년 후원의밤 행사 당시 권근술 이사장. 사진=자유언론실천재단.
▲ 2011년 ‘어린이 어깨동무’ 15주년 후원의밤 행사 당시 권근술 이사장. 사진=자유언론실천재단.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그는 지인과 동료들에게 의견을 구했는데, 세가지 지적이 많았고 이를 수용했다고 한다. 첫째, 언론인이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을 정도로 훌륭한 업적을 남기지 않았고. 둘째, 본인을 비롯해 함께 상을 받는 언론인 수상자들이 언론사 발행인을 역임한 경영자로서 ‘언론경영’이 업적이라면 훈장 수여가 적절하지 않고. 셋째, 조선일보 방일영 고문이 금관문화훈장을 수상하는 마당에 이보다 격이 낮은 은관문화훈장을 받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은퇴 후에도 그는 동기들과 함께 동아일보의 사과를 촉구했고, 복직을 꿈꿨다. 동아일보 입사 50주년이던 2017년 동아일보 수습기자 10기 동기들과 1인시위를 했다. 당시의 심정을 2017년 11월 한겨레 기고를 통해 남기기도 했다. 

“어느 회사에서 입사 이후 50년 동안 입사 동기가 결속을 유지해, 50주년 기념행사를 하는 사례가 있었을까요? 그 원동력은…그 긴 세월의 좌절과 시련에도 가시지 않는 자유언론에의 타는 목마름이었습니다…우리들의 청운의 꿈은 너덜너덜 산산조각이 나 있었습니다…제발 앞으로는 ‘해직기자’라는 소리 좀 들리지 않는 세상이 오면 좋겠소.” 글을 쓴 당시 그는 뇌일혈로 인한 언어장애를 겪고 있었다. 

권근술 이사장은 언론계를 은퇴하며 ‘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이라는 새 직함을 갖는다. 1996년부터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활동에 나섰고, 1998년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사업과 한국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평화교육 등 활동을 하는 어린이어깨동무를 창립했다.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콩우유공장, 어린이병원을 짓는 등의 활동을 하며 남북 민간교류의 물꼬를 텄다. 어린이어깨동무에 따르면 권근술 이사장은 남북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내 생에 마지막 할 일”이라고 늘 말했다.

조성숙.

또 다른 동아투위 위원장인 조성숙 위원장은 2016년 2월1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1935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1965년 동아일보 ‘신동아부’ 기자로 활동했다. 2002년 여성으로서 두 번째 동아투위 위원장을 맡았다.

조성숙 위원장은 1987년 미국 유학을 준비했으나 포기하고 한겨레 창간에 참여한다. 한겨레 논설위원, 기획위원 등을 역임했다. 

조성숙 위원장이 쓴 자전적 에세이 「한겨레와 나」에 따르면 그는 늘 여성 권익을 위한 활동에 앞장섰다. 사내 숙직 제도에서 여사원이 제외되자 여성도 숙직을 하겠다고 건의한 일이 대표적이다. “애사심은 남녀가 같은데 숙직을 왜 못하나 해서 나 혼자 생각으로 윗분에게 우리도 숙직을 하겠다고 청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여사원만이라도 철저한 여성 의식으로 무장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내에서 여성학 공부를 주도하기도 했다. 

▲ 조성숙 동아투위 위원장.
▲ 조성숙 동아투위 위원장.

한겨레에서 그는 ‘위안부 피해 대책’ 등 여성문제 공론화에 앞장섰다. 그가 쓴 위안부 문제에 관한 사설만 2년 사이 14편에 달했다. 그는 「한겨레와 나」를 통해 위안부 사설을 적극적으로 쓴 것을 “한겨레에서 일한 것 중 보람 있었던 일”로 꼽았다. 한겨레에서 ‘여성면’ 특화에 앞장서기도 했다.

한겨레를 떠난 후 잠시 정치권에서 활동한 후 조성숙가정폭력상담소를 개설해 여성인권 보호 활동을 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한국가족문화원 이사 겸 부원장, 강남가족상담센터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그는 「어머니라는 이데올로기-어머니의 경험세계와 자아찾기」, 「여자로 산다는 것」 등의 저서를 남겼다. 

오늘날 정치보도의 ‘가십화’와 ‘상업화’가 극심한 상황인데 그는 일찌감치 이를 경계했다. 2002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기자는 역사의 기록자, 관찰자, 감시자다. 따라서 역사의식과 사명감을 갖는 ‘기자정신’이 중요하다. 그러나 ‘진실보도’라는 원칙은 변하지 않지만 환경이 바뀌고 있으므로 우리들이 지켰던 방식과는 다를 것이다. 특히 정치보도를 가십화, 상업화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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