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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낙엽을, 매일 쓸지 않기로 한 아파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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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노동자가 아파트 내 낙엽을 쓸고 있다. 사진=gettyimagesbank
▲ 경비노동자가 아파트 내 낙엽을 쓸고 있다. 사진=gettyimagesbank

“자꾸 뒤돌아보지 말아요. 그러다 일 마무리 못 해요.”

낙엽을 하루 종일 쓸던 날. 환경미화원이 내게 건넨 조언이 그랬다. 쓸면 팔랑팔랑 툭, 다시 쓸면 휘리리릭 툭. 빠른 빗질에도 거친 바람이 한 번 감싸고 가면 비 내리듯 후두두둑. 끝없는 낙엽. 바스락거리던 낭만은 산책하는 이의 몫이었고, 계속 쓸어야 하는 이의 것은 아녔다. 반복해 떨어지는 낙엽에 집착하다 그의 말을 명심하며 참았다. 저 낙엽은 모른척하기로.

아픈 등을 부여잡고 애써 꼿꼿하게 세워보고. 끙, 하는 소릴 저도 모르게 내어 피로를 덜어보고. 컴컴한 새벽에 익명의 시민이 건네고 간 음료를 마시며 땀방울을 식혔다. 그 사이에도 낙엽은 속절없이 땅에 속속 다다랐다. 쉬는 시간마저 고단함이 밀려왔다.

다시 쓸고 또 쓸었다. 우리가 흡사 찬란한 계절의 커다란 문을 닫으려 애쓰는 작은 문지기처럼 느껴졌다. 그 문은 쉬이 닫히지 않고 작은 바람에도 자꾸만 반복해 열리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최전선에서 끝 모를 과업을 끝내야만 코끝 시린 겨울이 찾아올 것처럼.

새벽부터 낙엽과 사투를 벌인 환경미화원 휴게실은 묵직했다. 빠르게 아침을 먹고, 너나 할 것 없이 나란히 누웠다. 짙은 땀 냄새 가운데에서, 고유하고 귀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도 몸을 바닥에 맡겼다. 누구도 그래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았으나 몸이 본능적으로 알았다. 잠깐이라도 쉬어야 다음 낙엽과의 전쟁에 참여할 수 있을 거란 걸.

낙엽을 고되게 쓸어보니 그날 이후론 꽤 다르게 보였다. 이문세나 이소라나 넬의 쓸쓸한 노래를 들으며, 밟을 때 더해지는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좋아했건만. 알면 사랑한다던 최재천 생태학자의 말처럼. 새로 보이던 광경은 낙엽이 아니라, 낙엽 아래에 늘 머물러 있는 노동자들이었다.

가을부터 시작되는 수개월간의 ‘낙엽 쓸기 노동’. 특히나 매일 출근길마다 바라보던 경비원님. 지각할 것 같아 부리나케 집을 나설 때도, 해가 짧아져 어둠에 몸을 묻고 집에 돌아올 때도, 손이 쓰릴 정도로 추워져 호주머니 도움 없인 걷기 힘든 계절에도. 낙엽은 지치지 않고 계속 떨어졌고, 그 아래엔 그림자처럼 어김없이 그걸 쓰는 사람이 있었다.

빗자루를 잡는 양손의 위치, 이따금 들리던 끙끙거리는 소리. 고생하시니 감사를 표하고픈 마음과, 괜히 인사했다가 허릴 한 번 폈다가 또 숙일까 싶은 걱정 사이에서 곁을 지날 때마다 늘 속이 시끄러웠다.

가을 낙엽이, 같은 아파트 공간을 두 쪽으로 쪼개는 선명한 ‘선’ 같이 보이기도 했다. 다채로운 색색의 낭만과 그걸 쓸어 담아야 하는 노동 사이에서.

‘새벽부터’란 필명으로 X에 단상을 꾸준히 기록하던 경비노동자의 글이 이랬다. 60대인 저자는 ‘나는 가장 슬픈 순간에 사랑을 생각한다(워터베어프레스)’는 책을 올해 내기도 했다.

‘하루 종일 낙엽을 쓸었다. 바람의 방향이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아 힘든 하루를 보냈다. 주말을 보내는 아파트 주민들이 다른 세상의 사람들로 보였다.’

▲ 책 ‘나는 가장 슬픈 순간에 사랑을 생각한다’ / 지은이 : 새벽부터 / 워터베어프레스 펴냄
▲ 책 ‘나는 가장 슬픈 순간에 사랑을 생각한다’ / 지은이 : 새벽부터 / 워터베어프레스 펴냄

어찌 해결하면 좋을까. 심지어는 이 일이 법의 테두리 안에 있다. 2021년 개정된 ‘공동주택관리법’에선 낙엽 청소나 제설작업, 재활용품 분리수거 등을 아파트 경비원 허용 업무에 포함했다. 그마저 대리주차, 택배 배달 등 머슴에 가까운 업무 지시를 막으려는 법이며, 그래서 ‘경비원 갑질 근절법’이라 일컬어진 게 애달팠다.

그럼에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3개월짜리 초단기 계약이 대부분이기에(2019년,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 보고서).

경비원 내에서도 더 가장자리는 있다. 이 법마저 적용받지 않는 다른 시설 경비원들이다. 기억에 들어오지도 않은 죽음이 있었다. 지난해 봄, 서울 용산의 기업 빌딩 환풍구에 쌓인 낙엽을 청소하던 68세 경비원이 추락해 숨졌었다. 철망이 무너졌고 11미터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그날 집을 나서며 잘 다녀오겠다고 했을 것이다.

법도 허용한 노동. 내가 안 해도 일할 사람 천지인 노년의 일자리. 그런 생각에 숨이 턱 막힐 무렵, 우연히 받은 제보에서 희망을 봤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 붙었단 공고. 거기엔 이리 적혀 있었다.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에 매일 쌓이는 낙엽을 치우지 않고, 가을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쌓이도록 할 계획입니다. 매일 같이 낙엽 청소로 힘들어하시는 미화원분들의 고충도 덜어드리고….’

▲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 붙었던 공고. 사진=남형도 기자 제공
▲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 붙었던 공고. 사진=남형도 기자 제공

이는 고심해 꾹꾹 눌러 쓴 한 편의 시(詩) 같았고, 그해 가을에 본 어떤 낙엽보다도 아름다웠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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