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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긴장 높일수록 쓸데없는 비용만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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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헌법 개정과 헤어질 결심

지난해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을 전쟁관계로 전환하고, 한국을 적대국가로 규정하며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을 제기한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헌법에서 북한 지역을 영토로 규정하고, 통일·민족 개념을 삭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후 북한은 평양 남쪽 관문에 있는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했으며, 애국가에서 ‘3천리 금수강산’ 표현을 삭제하는 등 통일·민족과 관련된 상징물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통일·민족 관련 기구들을 정리했으며, 남북합의도 폐기했다.

이와 같은 일은 북한 정권사에 전례가 없는 일이며, 북한 이데올로기의 근간을 바꾸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매체는 관련 보도를 일체 전하지 않았으며, 북한 주민들에 대한 재교육이나 선전·선동 징후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북한에서 헌법 개정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이루어지며, 금년의 경우 전례대로라면 4월 전후 개최되는 것이 통상이다. 그러나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는 1월 15일에 열렸으며 헌법 개정 문제는 다루지 않고 넘어가 이번 10월 7~8일 열린 제11차 회의가 자연히 주목받게 되었다.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개헌을 통해 노동 연령과 선거 연령 수정이 반영됐다고 보고했지만 관심의 대상이었던 영토 규정과 통일·민족 개념 폐기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었다. 최고인민회의 직후 북한 매체 역시 세부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고 개헌 사실만 간략하게 보도했을 뿐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10월 7일 김정은군사종합대학을 방문해 한국을 “의식하는 것조차도 소름이 끼치고” 과거 “남녘 해방과 무력통일이라는 말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이에 관심이 없다”며 ‘두 개 국가’ 선언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김 위원장은 10월 17일 인민군 제2군단 지휘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 육로 폭파가 “서울과의 악연을 잘라버리고 부질없는 동족 의식과 통일이라는 비현실적인 인식을 깨끗이 털어버린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7일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 도로·철도 폭파 소식을 전하며 “이는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국가로 규제한 공화국 헌법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고 설명해 헌법에 남북 적대관계가 명시된 것임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북한이 개헌을 통해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을 공식화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이지만 영토 규정 반영과 통일·민족 개념 삭제가 이루어졌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에는 김정은 위원장은 물론 북한 이데올로기의 총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리일환 선전선동 비서, 그리고 조용원 조직담당 비서 등 노동당 주요 인사들이 모두 불참했다. 개헌을 통해 북한만의 영토를 규정하고, 통일·민족 개념을 삭제하는 중요 행사에 북한의 주요 인사들이 불참했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통일·민족 개념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이자 북한 체제를 지탱해온 이데올로기의 핵심이었다. 북한은 한국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명명하고 있으며, 한반도 적화통일을 가장 중요한 국시로 내세워왔다.

집권 초기 민족보다 계급을 우선했던 김일성 주석이 1991년 “나는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공산주의자”라고 선언한 이후 민족은 북한 이데올로기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을 ‘민족의 태양’이라고 치켜세우고, ‘민족과 운명’이라는 대표적 다부작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김정은 정권의 통일·민족 개념 폐기 선언은 선대에 대한 북한판 ‘파묘’에 가까우며, 장기간 민족주의적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통일 담론에 익숙해진 북한주민들에게는 충격에 가깝다. 북한이 개헌을 통해 북한만을 영토로 규정하고 통일·민족 개념을 폐기했다면 북한의 역사, 김일성·김정일 혁명역사, 각급 교과서와 이론 서적, 그리고 모든 상징물들을 삭제 또는 철거해야 하며, 조국해방전쟁이라는 용어도 사용하기 어렵게 된다.

김정은 정권이 개헌 여부를 두고 사실관계 확인에 대해 불분명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어느 경우든 지난해 말에서 올해 초 김 위원장이 제기한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과 통일·민족 개념 폐기는 북한 내 이데올로기적 혼란을 자초한 셈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18일 북한 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7일 조선인민군 제2군단 지휘부를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로동신문=뉴스1

무인기 평양 침투 사건의 여파

무인기 평양 상공 침투 사건은 북한의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 주장이라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있다. 10월 11일 북한 외무성은 중대성명을 통해 10월 3일, 9일, 10일 세 차례에 걸쳐 남측이 보낸 무인기가 평양 중구역에 침투해 전단을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북한은 일반 주민들이 볼 수 있는 노동신문에 노동당 본부청사 상공의 무인기와 전단살포 장면을 공개했다. 노동당 본부청사는 북한 정권 최고 심장부이며, 소위 ‘최고 존엄’으로 간주되는 김정은 위원장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다. 북한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인기 침투는 국제법적으로 심각한 주권침해 행위에 해당한다. 대한민국 헌법과 달리 국제법적으로 남북은 유엔에 가입한 별개의 국가로 취급되는 것이 현실이다. 2022년 12월 북한이 서울 상공으로 무인기를 침투시켰을 당시 우리 군도 대응차원에서 무인기를 북한지역에 투입시켰지만 유엔군사령부는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북한은 김여정 부부장이 이 사건의 주범은 ‘대한민국 군부’라며 비난 담화를 발표한데 이어, 10월 18일 국방성 대변인이 추락된 무인기 잔해를 발견하고 기술감정 및 조사를 한 결과 대한민국이 보낸 무인기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목적이 삐라 살포인지에 대한 결론은 미정이며, 행위 주체가 군부인지 민간단체인지는 관심 없고 여하튼 주권침해 도발행위인 것은 명백하다고 밝혔다. 일단 주체를 특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북한의 주장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소위 ‘전략적 모호성’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10여 차례 무인기를 남측 지역으로 투입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 측 주장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남북의 무인기 침투 공방은 우발적 무력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북한의 매체들은 즉각 주민들의 격앙된 반응을 보도하고, 대남 적개심 고취에 나섰다. 이미 140여만 명의 청년 학생들이 입대, 복대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인민군 총참모부는 전선 8개 포병여단에 명령을 하달해 추가 무인기 투입 시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격추 및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무력충돌 상황에 대한 대비까지 주문했다. 북한은 이번 사건을 주민들의 대남 적개심 고취와 적대적 2국가론의 정당성 확보 및 김정은 정권 강화에 좋은 기회로 삼고 있는 듯하다.

북한이 남측에서 날아오는 무인기에 대해 사격을 가하면 우리 측에 낙탄이 되며, 우리 군은 응사로 대응하게 된다. 이 경우 양측의 무력충돌이 확전으로 이어질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무인기 평양 상공 침투라는 예상치 못한 사태로 김정은 정권이 한반도에 군사적 대결국면 몰이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남북 간 일촉즉발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 19일 북한 당 기관지 「로동신문」이 공개한 무인기 사진. 위쪽이 북한에서 공개한 평양 침투 무인기 사진이며 아래쪽이 남한에서 공개된 무인기 모습이다. ⓒ로동신문=뉴스1

한반도 긴장고조 요인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

김정은 정권의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과 윤석열 정권의 원칙적 대북정책 간 강대강 대치가 치킨게임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김정은종합군사대학 연설에서 “솔직히 대한민국을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다”며, 한국이 공격해 올 경우에만 핵무기를 포함해 강력히 응징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과 외교안보라인 역시 북한이 도발할 경우 강력하게 응징하겠다는 입장이다. 양측 모두 선제적 무력사용은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고는 있다.

그러나 현재 남북 간 모든 대화채널이 단절되어 있는 상황에서 무인기, 대북전단 풍선, 쓰레기 풍선 등 남북 간 물리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사안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양측 간 서로의 의사를 소통하고 확인할 수단이 전무한 상황에서 우발적 상황과 오해로 인한 무력충돌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당장 시급한 것은 남북 간 군사 분야의 대화채널을 개설해 군사적 긴장을 관리하는 일이다. 전쟁 중에도 교전 당사자 간에 대화채널을 통해 휴전, 포로교환 등 다양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김정은 정권이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을 선언했다고 해서 군사 분야의 대화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남북은 시급히 군사채널을 개설해 당장의 현안을 협의하고 갈등을 관리해 나가야 한다.

민간차원에서도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하는데 협력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와 북한 주민의 알권리를 부정할 수는 없으나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접경지역에서의 공개적 전단살포와 무인기 침투와 같은 사안이 재발할 경우 북한의 군사적 대응과 이로 인한 무력충돌 가능성이 무엇보다 우려되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은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을 철회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은 남북을 평화적 공존이 아닌 전쟁관계로 전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을 준수해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를 복원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강대강 대치와 군사적 긴장의 고조는 남북 양측의 고비용구조를 형성할 뿐이다. 당면한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적 공존을 모색하기 위한 혜안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당장의 행동이 필요한 때다.

▲ 1일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연설하는 윤석열(왼쪽) 대통령과 7일 김정은국방종합대학을 방문해 연설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합뉴스(좌), 로동신문=-뉴스1(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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