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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함부로 소환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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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한강. ⓒ연합뉴스
▲ 한국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한강. ⓒ연합뉴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누구나처럼 나도 가슴이 뛰었다. 나는 과거 일간지의 문학 기자로 2019·2020년 두 해의 노벨문학상을 치른 적이 있다. (심지어 2019년의 노벨문학상은 직전 해 한림원의 미투 파문으로 수상자를 내지 않아 한 해에 두 명(올가 토카르추크와 페터 한트케)의 수상자를 발표했다!)

남성 작가 다음은 여성 작가, 유럽 다음은 비유럽 하는 식의 안배도 고려하고 배팅 사이트 등도 참고하지만 수상자를 맞추는 것은 늘 도저한 일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기사는 수상자가 발표되는 즉시 쓸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발표 순간 편집국은 ‘불 난 호떡집’이 된다.

외신을 검색하고 한국에 번역 출간된 책을 찾아 해당 출판사 편집자와 번역자, 문학평론가 등에 전화를 돌린다. 인쇄 시간을 감안해 짧으면 1시간, 길면 2시간 남짓 주어진 시간에 맞춰 그 너른 지면을 꾸역꾸역 ‘막는다’. ‘한강’이라는 전무후무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앞에서, 문학 기자는 그 얼마나 아득해질까. ‘벅찬 가슴’ 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그 아득한 의무가 이제 내게는 없다는 것이었다. 아주 약간은, 질투가 났다. 그래서 더욱, 언론 보도를 열심히 봤다.

기자 입장에서는 레퍼런스가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에 그만큼 선별해서 다뤄야 하는 게 한강이라는 작가다. 한국 작가이자 심지어 서울 거주자이기에 그 흔한 자택 앞 ‘뻗치기’도 가능하다. 하나같이 한강의 입만 주목하고 있을테지만, 좀처럼 언론 앞에 나서는 일이 드문 작가라는 것도 나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 10월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을 축하하는 공간이 마련돼있다. ⓒ연합뉴스
▲ 10월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을 축하하는 공간이 마련돼있다. ⓒ연합뉴스

실제 한강은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를 통해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축하 기자회견을 열 수는 없다”는 말을 전했고, 서면으로 짧은 감사의 말만 남겼다. 운영하던 책방도 잠시나마 문을 닫아 걸었다.

그는 노벨상 수상 일주일 만인 지난 17일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열린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수상자로 참석한 그는 소감과 함께 다음와 같은 말을 남겼다. “이제부터는 저와 연결되는 통로를 통일하여서 모든 혼란과 수고, 제 주변 사람들의 부담을 없애고자 합니다.” 자신을 둘러싼 혼돈과 소란을 가르는 ‘교통 정리’였다.

사실 나도 늘 그의 입만 바라보던 기자였고, 그래서 자주 전화를 걸었던 기자였는데…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는 과연 ‘뚫고 비집어 끄집어내는 것’만이 기자의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에 의해 뒤늦게 알려진 그의 가정사에는 함부로 ‘안타까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의 책에 ‘역사 왜곡’의 혐의를 드리워 폄훼하는 주장을 ‘논란’이라며 그대로 싣고, 이 와중에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운 이승만 덕이라 부르짖는다. 그의 노벨상 수상을 기화로 사생활에 관한 무례한 침해, 불합리한 백래시(backlash·반동)에 그와는 별 관련도 없는 얘기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주워섬기는 스피커들의 등장까지… 이 모든 것을 행하는 주체로서의 언론이 있다.

SNL코리아에 등장한 한강에 대한 외양·성대모사가 ‘풍자’가 아닌 까닭도 여기에 있다. 주지의 사실처럼, 풍자는 권력을 향한 것이어야 힘을 갖고 그 웃음도 의미를 띈다. SNL 측은 한강을 모사하는 일이 노벨문학상이라는 권력에 대한 풍자라고 생각한 걸까. 그에게 권력이 있다 해도, 적어도 그것은 우리 사회가 그에게 쥐여준 것은 아니다. 도리어 국내의 정치·사회적 상황 속에서 그는 자주 피해자의 위치에 자리했다.

한강은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도서전 배제, 세종도서 선정 사업 탈락 등을 겪었고, 불과 최근에도 그의 책들은 ‘유해도서’라는 낙인 하에 도서관에서 폐기됐다. 모진 풍파에도 ‘5·18 광주’와 ‘4·3 제주’를 문학으로 형상화해 세계의 보편이 되게 한 그에게, 우리는 빚진 바가 크다. 이러한 배경을 지닌 그에 관한 모사는, 풍자가 아닌 모욕이나 조롱이 될 수 밖에 없다. 한강을 그리는 여러 보도 행태들을 보고서는, 문득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육식을 거부한 딸 영혜의 입에 탕수육을 밀어 넣던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만큼 폭력적이었기 때문이다.

▲ 10월11일 오전 제주의 한 서점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이 진열돼 있다. 한국 작가 최초로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알려진 뒤 제주에서 제주 4·3의 아픔을 담은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연합뉴스
▲ 10월11일 오전 제주의 한 서점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이 진열돼 있다. 한국 작가 최초로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알려진 뒤 제주에서 제주 4·3의 아픔을 담은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그의 문학적 삶 전반을 되새기게 하는 좋은 보도들도 많았다. 문답이 모두 문학적 호흡을 지녔던 김유태 매일경제신문 기자의 단독 인터뷰가 그랬고, 32년을 문학 기자로 살며 한강의 등단부터 노벨상 수상을 쭉 지켜본 최재봉 한겨레신문 기자가 써내려 간 기사가 그랬다. ‘여성·호남·한국어·나이’라는 겹겹의 소수자성을 넘어 일궈낸 성취를 조명한 전혼잎 한국일보 기자의 기사도 마찬가지다.

※ 관련기사
① 매일경제 [한강 단독 인터뷰] “고단한 날, 한 문단이라도 읽고 잠들어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② 한겨레 4·3과 5·18이 개인에 가한 폭력, 서정적 문체로… 한강의 작품세계
③ 한국일보 “한강 대신 늙은 남성 작가만 주목”… 그가 깬 겹겹의 벽, ‘여성·호남·한국어·나이’

“저의 일상이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기를 저는 믿고 바랍니다. 저는 제가 쓰는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이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써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한강이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서 밝힌 소감의 일부다. 세상과 ‘글’로 만나고 싶다는 자신의 소신을 뚜렷이 밝혔다. 그래야, 그 에너지를 오롯이 집중해 향후 6년 간 3권의 책을 쓰는 자신의 계획도 실현이 가능할테다. 한강의 팬으로서, 그의 안온한 일상을 응원한다. 더불어 언론에는 그를 함부로 소환하지 말기를, 힘주어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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