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군을 이끄는 이청천 장군은 대전자령전투를 몇 달 앞두고 김중건이 조직한 대진단에게 연합을 제의했다. 김중건은 신홍균에게 50여명의 대진단 정예병과 함께 한국독립군에 합류하여 함께 싸울 것을 명령했다. 이에 힘입어 군사력이 향상된 독립군은 이후 여러 전투에서 일본군을 무찌르며 승리했다. 특히, 3대 전투의 하나인 대전자령전투는 신홍균 단장의 기지로 승리할 수 있었다. 정부도 뒤늦게 이러한 사실을 알고 2020년 11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의 후손인 신민식 자생한방병원 사회공헌위원장을 만나 선대의 항일 무장투쟁 이야기를 들어본다.
▲신홍균 선생이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 신 숙조부께서는 원래 함경남도 북천에 사셨는데 한일합병이 되자 일제하에서는 살 수 없다하시며 다음해에 만주의 장백현으로 이주하셨습니다. 그곳에서 동학계열의 원종교를 창시하고 대진단을 운영하는 김중권 선생을 만나게 되면서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고 물질적인 후원을 하셨지요.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일본군이 압록강을 넘어와 마을을 습격했는데 이때 할아버지 일가족을 참혹하게 죽여 압록강에 수장했어요. 겨우 몸을 피신한 숙조부께서는 이때부터 항일무장투쟁에 전념하셔서 만주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하셨어요. 그러다가 김중건 선생이 한국독립군의 지청천 장군의 요청을 받아들여 조부님과 정예병을 독립군에 합류토록 했습니다. 이때부터 한국독립군의 일원이 되어 경박호, 동경성, 대전자령 전투에 참가하셨지요.
▲조부께서 활동하신 대진단은 어떤 단체인가요.
– 할아버지는 당시 민족주의 계열의 대종교에서 활동하셨어요. 대진단(大震團)은 당시 대종교 지도자인 소래(笑來) 김중건(金中建)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만든 비밀결사 조직입니다. 처음에는 도적으로부터 농민들을 지키는 활동을 했는데, 이를 통해 한인 사회의 지지를 받으며 당시 지역 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대진’은 발해의 별칭으로 만주지역에서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한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조부께서는 소래 선생이 돌아가시자 대진단 단장을 맡으셨어요. 군의관 활동만 하신 것이 아니라 단원들을 이끌고 독립군 산하로 들어가서 병사들과 같이 직접 총도 쏘며 일본군과 전투를 하셨지요.
▲대전자령전투에서는 대단한 활약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대전자 전투가 있을 때가 6월 말인데 그때 일본군들이 온다는 걸 알고 병사들이 미리 대전자 계곡에서 매복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비가 와서 며칠이 지나도 일본군이 오질 않았어요. 식량은 다 떨어지고 3일 동안 식사도 없이 매복하고 있으려니 힘도 없어지고 사기도 떨어질 수밖에 없잖아요.
당시 약초나 버섯이 흔했지만 잘못 먹으면 큰일 나지요. 조부께서는 한의사여서 약재나 식용버섯을 잘 아셨어요. 숲 속에서 검정귀버섯을 보셨는데 목이버섯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중국인들도 좋아하는 버섯이에요. 그래서 그 버섯을 다 따게 해서 빗물로 씻고 소금 간을 해서 독립군들에게 먹였어요. 이 버섯은 약효도 있어서 3일 동안 비 맞은 병사들을 치료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었지요.
▲대전자령전투가 3대 전투의 하나인데 잘 모르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 네, 맞습니다. 대전자령 전투가 대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에게서 빼앗은 노획물을 나누는 과정에서 중국군이 욕심을 생기자 독립군을 무장해제 시키고 다 감옥에 집어넣었어요. 나중에 풀려나기는 했지만 이청전 장군도 그때 목숨이 위태로웠지요.
대전자령전투는 3대 전투 중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을 낸 전투에요. 인명 피해는 가장 적고 노획한 군수품은 제일 많은 전투에요. 그런데도 다른 전투보다 잘 모르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이청천 장군이 그렇게 중시되지 않는 것과 관련이 깊은 것 같아요. 이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요.
▲정부로부터 서훈을 받으셨지요.
– 네. 독립운동가들은 본명 대신 가명을 쓰잖아요. 조부님도 가명을 쓰셨는데, 신굴, 신필, 신흘 등으로 쓰셨어요. 처음에는 이 분이 조부인 줄 몰랐어요,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4년 동안 중국, 일본 등을 찾아다녔지요. 그런데 한국독립군 참모장을 지낸 조경한 선생의 회고록에 군의관이셨던 조부님의 이야기가 있는 거예요. 이를 통해 2020년 11월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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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일보 만오홍진특별취재팀
남창섭 기자 csnam@incheonilbo.com
이호윤 기자 256@incheonilbo.com
신춘호 박사(영상아카이브연구중심) docu8888@daum.net
허우범 교수(인하대 융합고고학과) appolo21@hanmail.net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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