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국내에서 김이 누렇게 변하는 황백화 현상이 처음 발생했다. 김과 같은 해조류의 생장에 필요한 영양염(바다나 호수 및 하천 속의 규소·인·질소 등 염류의 총칭. 식물플랑크톤의 몸체를 구성한다) 이 부족해 엽체가 잘 성장하지 않고, 황백색의 비정상적인 색채를 내는 현상을 말한다. 바다 내 영양염이 부족해 황백화 현상이 발생하는 핵심 원인은 수온 상승이다.
고수온 영향으로 김 생산량이 급감할 수 있다는 관측이 확산하면서 김 양식을 하는 어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최근 수출이 급증해 ‘바다의 반도체’라고 불리는 김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우리나라와 함께 김 주요 생산국인 일본도 수온 상승에 따른 김 황백화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2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올해 일본의 마른김 공판량(2023년 10월~2024년 5월)은 4936만속(1속=100장)을 기록했다. 지난해 4836만속에 이어 2년 연속 생산량이 5000만속을 넘지 못했다. 2022년 공판량(6370만속) 대비 20% 이상 양이 줄었다.
일본의 김 생산량이 급감한 건 최대 김 산지인 규슈 아리아케해의 수온 상승으로 황백화 현상(영향 부족으로 누렇게 변하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수온이 오르며 적조가 발생해 김 성장에 필요한 영양염류가 부족해진 것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한국과 함께 수출 1·2위를 다퉜던 일본이 김 수출 경쟁력을 잃고 생산량이 급속히 떨어진 것은 황백화 현상으로 상품성이 훼손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마른김 공판량은 2022년부터 올해까지 큰 변동없이 1억5000만속선을 오르내리고 있어 아직까지 타격을 입진 않았지만, 내년이 문제다. 올해 한반도 주변 바다의 수온이 급격하게 올랐기 때문이다. 고수온으로 김을 채묘하는 시기가 미뤄지는 등 양식 작업도 차질을 빚고 있다.
해수부에 따르면 올해 고수온 특보는 7월 24일부터 10월 2일까지 71일간 지속됐다. 해수부와 수과원은 바다 표층 수온이 25℃가 되면 고수온 예비특보를 발령하고, 28℃가 되면 주의보를, 28℃인 상태로 3일 이상 지속되면 경보를 발령한다. 지난해 여름철 고수온 특보 기간은 7월 28일부터 9월 22일까지로 57일에 그쳤다.
이로 인해 9월 초중순부터 시작되어야 했을 김의 채묘 작업은 9월 말 이후로 미뤄졌다. 전남 해양수산과학원은 김 양식이 많이 이뤄지는 해남 지역의 2025년산 김 양식 일정이 잇바디돌김(곱창김)은 9월 24일 이후, 방사무늬김(일반김)과 모무늬돌김은 10월 6일 이후가 채묘 적기인 것으로 봤다. 예년보다 보름 정도 늦어진 상태다. 진도의 경우 지난해에는 채묘 예상 시기가 9월 19일이었지만, 올해는 10월 3일로 2주가량 늦춰졌다.
바다에서 키우는 김은 양식장에서 김의 씨(종자)를 양식 김발에 붙이는 ‘채묘’를 한 뒤, 양식을 한다. 씨앗에 해당하는 종자는 온도에 민감하다. 물이 너무 따뜻하면 종자가 녹아버린다. 수온이 급변하면 김 종자가 자라지 않고 성장을 멈추기도 한다. 수과원 관계자는 “가을철 이후 수온이 정체되거나 내려가지 않으면 어린 싹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며 “이듬해 생산량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요 김 생산지 중 하나인 서천 지역에선 평년보다 강수량이 적어 김 성장 부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수과원은 “올해 서천(대천) 지역 강수량은 평년 대비 76% 수준으로 매우 적다”며 “육상에서 유입되는 영양염이 부족해 양식 김의 성장이 부진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수출액이 1조원을 넘으며 ‘수출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한 김의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수과원은 고온내성 김 품종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감마선을 조사해 김 종자의 유전 형질이 더 발현하게끔 자극을 주고, 잘 자라는 종자를 선발해 생산성을 확대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수과원 관계자는 “김이 최적생장 조건인 15℃내외를 넘어서 25℃까지도 정상적인 생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품종 개발을 진행 중”이라면서 “김이 자기생육조건을 벗어나는 조건에서 생장해야 해 단기간에 연구 성과를 내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수온으로 김 양식을 할 장소를 찾기 어려워지자 정부는 수심 35m 이상의 외해까지 김 양식장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얕은 바다보다 수온이 낮은 외해로 양식지역을 넓혀 고수온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바다를 떠나 육상에서 김을 양식하는 방안도 본격적으로 연구한다. 내년도 해수부 예산안에는 김 육상양식 시스템 개발 예산으로 60억원이 편성돼 있다. 바다에서 양식하던 김을 실내 대형 수조에서 종자를 관리하고, 육지에서 양식을 하는 사업이다.
수과원은 현재 풀무원과 협력해 충북 오송에서 김 육상 양식 실험을 하고 있다. ‘바이오리엑터’라고 부르는 9㎥ 부피의 수조 3개에서 김을 생산하는 실증 실험이다. 3개의 수조에선 매달 10㎏의 김을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김은 중금속 함량이 최대 37배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수부는 2029년까지 기술개발을 마치고, 실증단지를 세워 육상양식 김을 본격적으로 생산할 계획이다.
정부는 김 양식 과정에서 성장 촉진, 병해방제 용도로 사용하는 무기산을 대체하는 고성능 처리제도 개발·보급할 방침이다. 무기산은 염산을 사용해 독성이 강하고 바닷물에 녹지 않는 특징이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무기산이 과다하면 해양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김에 (무기산이) 잔류하게 되면 건강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무기산 대체 처리제를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해양 기후변화 대응 연구도 본격화하고 있다. 해수부는 지난 9월 ‘기후변화 태스크포스(TF)’를 조직했다. 기후변화 TF는 연말까지 해양수산 기후변화 종합대책을 수립해 발표할 예정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양식, 어선어업, 수급, 탄소중립실천과 같은 분야로 나누어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 및 대응방안을 전문가들과 만나 논의 중”이라며 “그동안에는 관련 부서들이 개별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해왔으나 앞으로는 TF를 통해 속도감 있게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식 산업 개편 방향과 기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에 따른 수산물 수급 안정화 대책, 기후 재해 피해 대응 방안을 담은 종합대책을 신속하게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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