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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빨간 파일’ 마주한 윤 대통령의 양쪽 손, 모두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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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일 만에 81분 면담했지만…독대는 없었다

韓은 ‘빨간 파일’ 준비…尹은 펜 없이 듣기만

김 여사 리스크 해소 위한 3대 요청 수용 안돼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면담하고 있다. 맨 왼쪽은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대통령실

굳은 표정과 딱딱한 몸짓만 보였다. 한 달 가까운 논란 끝에 마련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간 면담 자리를 찍은 사진에선 어색함만이 흘렀다. 두 사람은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지난 7월 30일 이후 83일 만에 개별로 만나 81분간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눴지만, 이견만 확인했다.

두 사람은 한 번도 ‘단 둘’은 아니었다. 면담에 앞서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잔디밭을 거닐며 산책했을 때도, 짧은 거리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앉았을 때도, 두 사람의 곁에는 꼭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있었다. 한 대표가 요구해 온 ‘독대’는 무산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색했던 분위기만큼이나 면담의 결과는 허무했다. 한 대표는 빨간색 파일을 준비해왔다. 윤 대통령에게 변화와 쇄신을 위해 요청할 내용이 담겨 있는 파일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한 대표는 이번 면담에서 민심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변화와 쇄신을 강력히 피력할 계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 앞에는 자신이 마시기 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만 있었을 뿐, 펜이나 메모지는 없었다. 한 대표 앞에 놓일 음료로 한 대표가 평소 즐겨 마시는 제로콜라를 준비하도록 윤 대통령이 손수 지시했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배려였다.

이날 두 사람의 면담 내용을 유일하게 공개 브리핑한 박정하 국민의힘 당대표비서실장은 “한 대표는 오늘 회동에서 나빠지고 있는 민심과 여론 상황, 이에 따른 과감한 변화와 쇄신 필요성을 말했다”며 “김건희 여사 이슈 해소와 관련해 대통령실 인적 쇄신과 대외활동 중단, 의혹사항 설명 및 해소 그리고 특별감찰관 임명 진행 필요성, 여·야·의·정 협의체의 조속한 출범 필요성을 말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한 대표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 하락의 ‘주범’으로 꼽히는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풀어내기 위해 △대통령실 인적쇄신 △대외활동 중단 △각종 의혹 설명 및 해소 등을 윤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한 대표가 이 같은 요청을 꺼낸 이유는 “(정부의) 개혁 추진 동력을 위해서라도 부담되는 이슈는 선제적으로 해소할 필요성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반응은 확인할 수 없었다. 박 실장은 “대통령의 반응을 우리가 말씀드리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만 답했다. 대통령실로부터는 김 여사와 관련한 의제가 올랐다는 사실 자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특히 한 대표는 이날 윤 대통령이 김 여사 관련 3대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자, 의혹 규명을 위한 ‘특별감찰관 임명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국민의힘이 주장해오던 더불어민주당의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 문제와 특별감찰관 임명을 연계하는 것이 아닌, 특별감찰관만이라도 먼저 임명하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윤 대통령 반응도 뜨뜻미지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안과 관련한 이견도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박 실장은 “(한 대표가) 고물가·고금리 등 민생 정책에 있어서 당·정·대 협력 강화 필요성에 대해서도 말했다”고 전했다. 매주 일요일 오후 개최되던 비공개 고위 당·정·대 협의는 의정갈등 관련 여권 내 이견이 노출된 8월말 이후 두 달가량 멈춰선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 앞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실내 면담에 앞서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앞열 오른쪽부터 한 대표, 윤 대통령,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이도운 홍보수석 ⓒ대통령실

당내에선 이를 두고 ‘빈손 회동’을 넘어 ‘빈 수레 회동’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애초 이날 회동 결과를 직접 기자들 앞에서 설명할 것으로 예상됐던 한 대표가 대통령실을 떠나자마자 국회로 오는 길이 아닌 자택으로의 퇴근길에 올랐다는 것이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날 회동에 대해 “빈손은 그래도 마주치면 박수라도 칠 수 있지, 요란한 빈 수레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만 같았던 회동”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회동이 이런 ‘빈 수레 회동’이 될 것이란 건 애초부터 예상됐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날 두 사람의 회동은 오전부터 삐걱거렸다. 오후 4시반부터 ‘차담’ 형식으로 시작될 두 사람의 회동이 의기투합으로 이어져 ‘만찬’으로 확대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기대감은, 이날 오전 대통령실의 “윤 대통령은 별도의 만찬일정이 있다”는 설명에 꺾여버렸다.

당 안팎에선 이보다 앞서 지난주 금요일 독대 형식을 깨트리기 위해 정진석 비서실장이 배석한다는 사실을 발표했을 때부터 진솔한 대화는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었다. 이 같은 전망은 테이블에 두 팔을 뻗어 올린 ‘들어볼테니 한 번 말해보라’는 듯한 윤 대통령의 자세에서도 확인됐다는 관측이다.

두 사람이 시종일관 ‘어색한 시간’만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이날 회동은 당초 예정시간보다 24분 늦은 오후 4시54분에 시작됐는데 이는 윤 대통령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과 전화 통화를 하고, 영국 외교부 장관의 방문을 응대했기 때문이었다. 북한 전투병의 러시아 파병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앞으로의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갑작스러운 일정이었다.

이를 들은 한 대표가 “우리 정부의 개혁정책·외교안보정책에 대해 지지하고 당이 적극 지원할 것이라는 점을 말했다”는게 박 실장의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차담에 앞서 대통령실 야외 잔디 마당인 파인그라스에서 10여분 간 산책하는 동안에는 활짝 웃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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