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요구한 ‘김건희 여사 의혹 규명 절차’는 결국 특별감찰관이었다. 검찰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혐의 불기소 결정 이후 “특검밖에 없다”는 요구가 당 안팎에서 많았지만, 한 대표는 강제조사 권한도 없는 특별감찰관 카드를 내밀었다.
박정하 국민의힘 당 대표 비서실장은 21일 저녁,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면담이 끝난 뒤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한 대표가 이른바 김건희 여사 의혹 관련 3대 요구 사항을 윤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지난 17일 △‘김건희 라인’ 등 대통령실 인적 쇄신 △대외활동 중단 △의혹 규명 절차 협조 등 3대 요구안을 내놓으며 대통령실을 압박한 바 있다.
3대 요구 중 핵심은 ‘의혹 규명 절차 협조’였다. 한 대표는 지난 17일 서울중앙지검이 김 여사 주가조작 혐의 불기소를 결정한 이튿날 더불어민주당이 세번째 발의한 ‘김건희 특검법’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검 수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도 요지부동이었다. 이 과정에서 친한동훈계는 그동안 공석이었던 특별감찰관 임명을 통한 ‘대통령실 자체 조사’ 방안을 띄웠다.
한 대표의 특별감찰관 카드는 그간 공언했던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 주가 조작 의혹, 공천 개입 의혹 등은 특별감찰관 권한과 조직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특별감찰관은 감찰 대상자의 비위 행위 확인을 위한 ‘협조·지원 요청’ ‘자료 제출 요구’ 등만 가능하다. 강제수사 권한을 가진 검찰이 흡사 변호인처럼 ‘주가 조작 무혐의’를 방어하는 상황에서, 강제조사 권한이 없는 특별감찰관이 할 수 있는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가 대부분인 김 여사 등 관련자 진술 확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설령 범죄 혐의를 발견하더라도 특별감찰관법에 따라 검찰총장에게 고발·수사의뢰해야 한다. 김 여사 봐주기 후폭풍으로 검찰총장 탄핵소추가 추진되는 상황에서 다시 윤석열 정부 검찰총장 손에 판단을 맡기는 상황이 된다.
한 대표가 특별감찰관 임명을 김 여사 의혹 규명 카드로 내민 것은 과거 법무부 장관 시절 발언과도 정면으로 부딪친다. 한 대표는 장관 임명 직후인 2022년 5월30일 대통령 친·인척 수사와 관련해 “대한민국 수사기관이 충분히 독립적으로 수사할 만한 시스템은 갖췄고, 결과적으로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친·인척 등의 위법 행위를 상시 감찰하는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 뜻이 알려진 직후였다. 2년여 뒤 검찰이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하며 ‘수사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한 상황에서, 특검 임명이 아닌 특별감찰관 임명을 요구한 것은 한참 후퇴한 제안이자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겨레/김남일 기자 / webmaster@huffingto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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