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법은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 있습니다.” 국민참여재판을 모티브로 한 영화에 나오는 대사다. 국민참여재판은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해 일반 국민이 배심원으로서 형사재판과정에 참여하는 재판 제도다. 하지만 사법 민주화와 선진화를 목표로 도입된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 국민참여재판 실시 건수 줄고, 배제 건수 늘어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실(경기 이천시)은 대법원이 제출한 자료를 확인한 결과 2013년 345건에 달했던 국민참여재판 건수가 2023년 95건으로 72.4%나 급감했다고 밝혔다. 국민참여재판 실시 건수는 2008년 도입된 이래 2013년까지 상승했으나, 이후 지속 감소하며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부터 급감했다. 반대로 국민참여재판 배제 건수는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를 보였다.
올해(9월말 기준) 접수된 국민참여재판은 513건이며, 이 중 70건(13.6%)이 실시됐고 149건(29.0%)이 배제 처리됐다. 또한 국민참여재판이 단 한 건도 열리지 않는 각급 법원은 △서울동부지법(18건 접수) △서울남부지법(21건 접수) △서울북부지법(21건 접수) △전주지법(27건 접수)으로 4곳이다.
송 의원실은 국민참여재판이 해마다 저조한 운영 실적을 보이는 이유로 △낮은 신청율(사회적 인식 부족 등) △높은 철회율(양형에 불리할 것을 판단해 중간에 철회하는 등) △법원의 배제결정 증가(법원이 국민참여재판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등)를 꼽았다.
특히 2008년부터 2022년까지 법원이 한 배제결정 중 법원의 재량에 의한 배제결정이 58.9%에 달해 법원의 자의적 배제가 국민참여재판 활성화에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이하 ‘국민참여재판법’)’ 제9조 제1항에 따라 배제결정을 할 수 있다. 배제결정을 위한 사유로 △제1호 배심원 등이 출석 등이 어렵거나 △제2호 피고인들 일부가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거나 △제3호 성범죄 피해자가 원하지 않거나 △제4호 그 밖에 재판 진행이 적절하지 않거나(이하 ‘제4호 포괄적 배제’) 등으로 간략히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제4호 포괄적 배제’는 학계에서 지적받고 있는 사유다. 학계 논문에 따르면 ‘제4호 포괄적 배제’는 국민참여제도 설계 당시 국민참여재판의 과도한 신청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즉, 비교적 폭넓은 배제사유를 규정해 법원의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과다하게 이용돼 피고인의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고 도입취지에도 반했다는 지적이다.
다만 헌법재판소(2012헌바298)는 ‘제4호 포괄적 배제’ 사유가 피고인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거나, 무죄추정원칙과 적법절차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또한 ‘국민참여재판 배제재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문덕민·한상훈/2021)’ 논문에도 ‘제4호 포괄적 배제’ 비율이 통계상 매우 높아 보이나, 이는 왜곡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취소한 통계도 법원이 배제한 것으로 기록된다는 것이다.
송석준 의원은 “국민참여재판제도 실적부족으로 공판중심주의·사법부 신뢰강화라는 초기 야심찬 도입 목적이 바래지고 있다”며 “사회적 인식제고와 홍보 그리고 법원의 자의적 배제를 줄여 국민참여재판의 도입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법원행정처는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해설’(2007)을 통해 국민참여제도의 목적을 △국가권력의 한 부분인 사법권의 영역에서 국민의 참여 확대 △국민의 상식과 경험을 재판절차에 반영해 사법 신뢰 증진 △국민이 재판절차와 법제도를 보다 가까이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 법치주의 실현이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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