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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 하율(가명) 군은 근육신경 계통의 희귀난치성 질환인 듀센 근이영양증(DMD·Duchenne Muscular Dystrophy)을 앓고 있다. DMD는 디스트로핀 단백질이 결여돼 서서히 근육을 파괴하는 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근육이 짧아지고 근조직이 손실돼 주요 관절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호흡 관련 근육이 손실되면 스스로 숨을 쉬지 못해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하고 결국 생명까지 위협한다. 하율 군은 이미 팔의 근력이 약해져 일상적인 동작조차 혼자 수행하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하루하루 자존감을 잃어가는 아들을 지켜볼 때마다 엄마는 마음이 아파 밤잠을 설쳤다.
하율 군의 가정에 새로운 희망이 싹튼 건 서울대병원의 연구 과제를 통해서다. 이우형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의 지원으로 옷감형 인공근육 어깨 보조기를 개발했다. 보조기는 DMD 같은 신경근육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개발된 장치다. 연구에 참여하며 많은 동작을 다시 할 수 있게 된 하율 군은 일상과 함께 웃음을 되찾았다. 하율 군이 예전보다 더 자유롭게 일상을 누리며 가족에게도 큰 변화가 생겼다. 단순한 보조기구를 넘어 새로운 희망의 마중물이 되어준 것이다.
하율 군처럼 희귀질환과 암으로 고통을 겪는 소아청소년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의 유가족이 내린 통 큰 사회 공헌 결단은 4년째에 접어들며 희망의 결실을 보고 있다. 서울대병원 소아암·희귀질환사업단은 21일 서울대어린이병원 CJ홀에서 ‘함께 희망을 열다. 미래를 열다’ 행사를 개최했다.
소아·청소년 시기에 발병한 암과 희귀질환은 정복이 어려울 뿐 아니라 재발 가능성도 크다. 현재까지 확인된 소아 희귀질환은 7000여 종. 성인에 비해 질환 종류가 다양하고 환자는 적어 사례를 수집하기조차 어렵다 보니 대다수 환자들은 확진 후 적절한 치료를 시작하기까지 8~10년가량 ‘진단 방랑’을 겪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유가족은 ‘모든 어린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하도록 보살피는 일이 우리의 사명’이라던 선대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뜻깊은 결심을 했다. 2021년 출범한 사업은 오는 2030년까지 암과 희귀질환으로 고통 받는 전국 소아청소년 환자들에게 실질적 혜택을 제공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숨가쁘게 달려왔다.
사업단은 3000억 원의 기부금을 △소아암(1500억 원) △소아 희귀질환(600억 원) △소아 공동 연구 등(900억 원)에 배정해 기반 구축을 완료하고 구체적인 치료 성과를 도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현재까지 총 9521명의 소아암·희귀질환 환자들이 진단을, 3892명이 치료를 받았다. 2만4608건의 코호트 데이터가 등록됐고 전국 202개의 의료기관과 1504명의 의료진이 협력해 아이들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이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김용태 국회의원, 김영태 서울대병원장, 최은화 사업단장(서울대병원 소아진료부원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 회장과 홍 전 관장은 본 행사에 앞서 주요 참석자들과 함께 어린이병원 1층에 있는 이 선대회장의 부조상을 관람했다. 부조상은 서울대병원이 기부에 대한 감사와 예우의 뜻을 담아 2022년 10월 어린이병원 1층 고액기부자의 벽에 설치한 것으로 아래에는 ‘모든 어린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하도록 보살피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고인의 유지가 적혀 있다.
행사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전국적인 의료 네트워크와 협력을 통한 의료 접근성 향상의 목표가 점차 실현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한 치료와 지원을 넘어 아이들과 그 가족들이 꿈꾸는 미래에 함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 단장은 “우리 사업단은 소아암과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 더 나은 진단과 치료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이 사업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도 희망을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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