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에 따른 지역 소멸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위기 속 지역과 상생하는 유통업체들도 있다. 조선비즈는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토종 유통업체들의 현장 및 지자체 현황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딸·아들이나 동네 젊은 사람들에게 내가 다니는 직장을 추천한다는 건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는 거죠. 그만큼 전 직원이 ‘우리 가족들도 안심하고 맛있게 먹을 제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10년, 20년 넘게 일했습니다. 상주에서 생산한 제품을 먹고 자란 아이들이 입사해 부모의 업을 잇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한라식품 본사와 참치액 공장이 있는 경북 상주에서 만난 박현숙(53) 한라식품 재무총괄부장은 ‘한라식품이 지역에 미친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지’를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박 부장은 “만약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 부모와 이웃이 자신 있게 추천하는 일자리가 있다면 굳이 지역을 떠날 이유가 없다”며 “부모 세대가 그랬듯 오랫동안 이곳에 뿌리내리고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한라식품에서 20년 이상 근속한 직원은 전 직원의 절반 가까이 된다.
한라식품은 국내 참치액 시장 매출 1위 기업이다. 당초 한라식품은 1972년 제주도에 설립됐다. 일본에서 훈연참치(가다랑어 포)를 만드는 기술을 배운 고(故) 이용상 창업주가 제주도 인근에서 잡히는 참치로 만든 가다랑어 포를 국내 호텔·고급 일식집에 납품한 게 출발점이었다.
한라식품이 1994년 경북 상주로 본사와 공장을 옮긴 건 일반 가정에서도 가다랑어 포를 쉽게 활용할 방법을 찾던 중 참치액을 만들어 유통하면서부터다.
상주는 참치를 훈연할 때 쓰는 참나무가 많이 자생하는 지역이다. 또 부산에서 작업한 참치를 가공해 만든 참치액을 전국으로 유통할 때 상주는 중간지였다. 현재 30년째 상주살이 중인 한라식품은 지난해 약 148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매출은 5년 새 2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판매량도 누적 기준 1억 병(900㎖ 기준)을 돌파했다. 한라식품이 주도한 참치액 시장이 커지면서 동원F&B나 사조 등 참치 관련 대기업이 이 시장을 노리고 있다.
◇맛부터 위생까지 철저… 지역 농가서 생산한 무·버섯 일일이 검수
한라식품 상주공장은 하루 약 1만ℓ(리터)에 달하는 참치액을 생산할 수 있는 자동화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다. 이때 생산 과정은 모두 배관을 통해 이뤄진다. ‘우리가 만든 제품은 우리 가족이 먹어도 안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혹시 모를 공기 중 오염 가능성까지 전부 차단한 것이다.
현재 한라식품은 참치액의 주재료인 훈연참치를 태국과 필리핀에서 수입하고 있다. 한 번 납품받을 때 각각 23톤(t), 15톤(t)의 훈연참치를 받아 저온 냉장 창고에 보관한다. 이때 훈연참치들은 한 번 세척한 뒤 분쇄 작업을 거쳐 저장통에 담긴다. 이후 가다랑어 포로 분쇄된 훈연참치는 추출기에 넣어 다시마·무·버섯·감초 추출액과 함께 특정한 비율에 맞춰 배합된다. 배합된 참치액은 배관을 통해 포장 공정 라인으로 넘어와 멸균된 병 또는 팩에 담겨 밀봉된다.
한라식품은 훈연참치 외에도 무·버섯 등 추출액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지역 농가에서 공수하고 있다. 특히 한라식품은 제철 식자재가 맛과 영양을 좌우한다는 원칙 하에 매년 11~2월 생산된 가을·겨울 무 120t 물량을 확보한다. 버섯은 매달 30㎏씩 구입해서 사용한다. 다시마 같은 경우에는 완도산만 고집하는데, 풍미를 위해 매년 장마철 전에 미리 수확한 다시마만 1억원 어치를 구비한다고 한다.
한라식품이 부재료 하나까지 꼼꼼히 따지는 건 30년간 한라식품을 믿고 참치액을 써 온 고객들의 신뢰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철학 때문이다. 창업주의 3세인 이정웅(40) 한라식품 사업총괄이사는 “중국산 채소나 다시마액을 받아서 쓰면 우리 몸은 편할지 모르지만, 맛과 영양은 보장할 수 없다”며 “지역에서 난 양질의 재료를 합리적인 가격에 사서 맛과 영양까지 챙길 수 있다면 무조건 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상주·문경 등 지역민 100% 직접 고용… 지역 기업과 상생 방안도 모색
현재 한라식품은 창업주의 아들인 이재한(48) 대표가 2대째 경영 중이다. 그의 목표는 한라식품을 상주 지역 ‘백년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역 인구 소멸 원인으로 꼽히는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지역에 일명 ‘괜찮은 직장’이 오랜 기간 있어야만 젊은 세대가 대를 이어 지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본인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을 떠나는 것보다 떠나지 않고도 괜찮은 직장을 오래 다닐 수 있다면 굳이 본인의 고향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라식품 상주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37명으로, 모두 직접 고용된 상태다. 이들 중 약 65%는 상주 시민이다. 나머지 35%는 상주 인근 지역인 문경시에서 출퇴근한다. 공장 직원들의 초임이 보통 연 3000만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상주시민의 연간 급여 소득 중 최소 7억2000만원이 이곳에서 발생하는 셈이다. 이 중 절반 이상은 2000년대에 입사해 20년 이상 장기 근속한 직원들이다.
한라식품은 지역 내 또 다른 기업과의 상생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상주 지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식품이나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제품을 전국에 유통할 수 있도록 협업해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겠다는 포부다.
상주시는 한라식품이 상생에 초점을 두고 지역 인재 유출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상주시청 관계자는 “이마트·코스트코 등 대형마트에 참치액을 유통할 정도로, 한라식품은 작지만 건실한 기업”이라며 “직접 고용이나 지역 농가 연계를 통한 지역 상생 외에도 상주 지역을 알리는 홍보 효과도 크다”고 했다. 이어 “특히 상주 지역 대표적인 탄탄한 기업으로 꼽히는 만큼, 젊은 인재들도 많이 근무하고 있다”며 “그들이 상주를 떠나지 않는 기반이 된 셈”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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