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에너지 산업에 있어 ‘배터리’는 가장 강력한 분야다. 4차 산업시대가 시작되면서 그 영향력은 훨씬 더 커지고 있다. 전기차, 스마트폰, 인공위성, 우주탐사선 등 적용되지 않는 곳이 없어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프레지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배터리 시장은 2034년 6,808억5,000만달러(약 927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따라서 세계 각국에서는 화재 위험, 효율, 수명 문제 등을 대폭 개선한 배터리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전기차 배터리부터 수전해 전지에 이르기 까지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여럿 공개해 주목받고 있다.
◇ 원자력연, 전고체 배터리 성능 저하 원인 규명
먼저 한국원자력연(원자력연)은 최근 안전성 문제가 대두되는 전기차 배터리 안전 문제를 획기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16일 김형섭 원자력연 중성자과학부 책임연구원팀은 세계 최초로 전고체 배터리 전해질 결정구조 변화의 정확한 원인 규명과 이를 제어하는 방법을 찾았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정성균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팀, 유승호 고려대 교수팀, 이동주 충북대 교수팀과 공동 진행했다.
전고체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 리튬이온이 이동하는 고체전해질로 구성된다. 고체전해질 표면 결정구조가 변하면 과전류가 흐르는 ‘쇼트(전기적 단락)’ 현상이 발생한다. 양극과 고체전해질 접촉면에 흐르는 전류가 고르지 않아서다. 배터리 쇼트가 발생하면 막대한 전기에너지가 순간적으로 발산된다. 때문에 전기차 배터리 화재의 주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진 않고 있다.
이에 원자력연 연구팀은 배터리 쇼트를 유발하는 전해질 결정구조 변화의 정확한 원인 규명에 나섰다. 이를 위해 ‘중성자 빔’으로 고체전해질결정구조 내부의 리튬 양을 파악하고 정량화했다. 중성자빔은 리튬과 같은 가벼운 원소 분석에 유용하다. 그 다음 X-선을 통해 고체전해질 표면의 연마 정도에 따른 결정구조 변화량 또한 정량화했다.
실험 과정에서 연구팀은 고체전해질 합성에 사용한 리튬의 양과 연마 정도에 따라 고체전해질 표면 결정구조 일부가 정육면체에서 직육면체구조로 변화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결정구조가 직육면체로 변한 고체전해질은 이온 전도성이 낮다. 때문에 음극, 양극과의 저항을 높인다. 이렇게 되면 배터리 내 리튬 이온의 원활한 이동이 방해받게 되고 쇼트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와 함께 염구팀은 고체전해질 제조 단계에서 전기적 단락을 예방할 수 있는 개선 공정 기술도 개발했다. 전해질 표면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연마재 회전 속도를 특정 정도로 획기적으로 낮추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결정구조가 안정적으로 제어되어 이상 변화가 일어나지 않게 된다.
김형섭 책임연구원은 “전고체 배터리 단락 원인의 규명과 이를 제어하는 기술은 배터리 화재·폭발 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줄 것”이라며 “고도 분석 기술을 활용해 여타 차세대 이차전지 난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 KIST, 고온 수전해 배터리 성능 향상법 고안
원자력연이 안전한 전기차 배터리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는 차세대 친환경 에너지용 배터리를 고안했다. KIST 수소에너지소재연구단 윤경중 단장, 장혜정 책임연구원팀은 고온 수전해 전지의 성능 감소 원인을 규명했다고 16일 밝혔다.
고체 산화물 전지(SOEC)는 물을 수소로 만드는 ‘수전해 장치’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 태양광, 풍력 등과 결합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아예 없는 청정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급격한 성능 저하와 열화 현상은 큰 걸림돌로 꼽힌다. 이는 공기 전극 분리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고 있다.
연구팀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수전해 전지의 공기전극과 전해질 사이에 발생하는 열화 메커니즘을 분석했다. 고성능 ‘투과전자현미경(TEM)’ 회절분석과 이론 계산을 이용했다. 분석 결과, 수전해 반응이 일어나도록 산소를 주입하는 과정에서 ‘이트리아 안정화 지르코니아(YSZ)’라는 전해질에 산소 이온이 축적됨을 확인했다.
전해질에 산소 이온이 축적되면 산화물 전지의 원자구조가 변형되고 공기극과 전해질 사이에 균열이 발생한다. 그 결과 전지의 성능 저하를 유발이 발생했다. 또한 연구팀은 계면에 형성된 응력 및 결함들을 시각적으로 검증했다. 이를 통해 열화가 유발된 초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이온-원자-나노결함-기공-균열 간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
기존 연구는 수전해 전지 성능 저하를 유발하는 열화의 최종 단계를 마이크로미터(1㎛·100만분의 1m) 수준에서 파악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KIST 연구진은 우수한 현미경 기술을 이용, 열화 초기에 수전해 전지의 재료가 변화 과정을 나노미터(㎚·10억분의 1m) 수준에서 관측했다.
KIST는 “이번 연구로 600℃ 고온에서 장시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재료 개발을 가능하게 됐다”며 “상용 수전해 전지의 내구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장혜정 KIST 책임연구원은 “첨단 투과전자현미경 기술을 이용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열화 현상의 원인을 초기 단계에서 파악할 수 있었다”며 “이를 바탕으로 고온 수전해 전지의 내구성과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해 청정 수소 생산의 경제성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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