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군수 2강1중 깨지고 3강 재편에…
민주당 내부서 ‘정의당의 길’ 운운 기류
황운하, 민주당에 반발하고 “재보선서
호남은 혁신당에 통크게 양보했어야”
전남 영광군수 재선거가 ‘3강 구도(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로 재편되면서 야권 정당들의 운명을 쥐고 흔들고 있다. 기존 민주당이 가지고 있던 ‘호남 맹주’란 입지가 흔들리다보니, 민주당은 자칫 패배할 상황을 염두에 두고 화살을 혁신당으로 돌리는 모양새다.
13일 정치권에 따르면 10·16 재보궐선거 사전투표가 종료되고 본투표만을 남겨둔 가운데, 민주당 일각에서 혁신당을 ‘분열 세력’을 상징하는 단어인 ‘조국정의당’이라 수식하자 혁신당이 격하게 반발하는 등 양당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양상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난 11~12일 진행된 10·16 재보궐선거의 사전투표율은 전남 영광군수 투표율이 43.06%를 기록하며 가장 높았다. 이어 전남 곡성군수 41.44%, 인천 강화군수 27.90%, 부산 금정구청장 20.63%, 서울교육감 8.28% 순이었다.
영광에서는 장세일 민주당 후보, 장현 조국혁신당 후보, 이석하 진보당 후보가 혈투를 벌이고 있다. 정치권 안팎의 높은 관심도를 반영한 듯 영광군수 재선거 사전투표율은 역대 지방선거 사전투표율 최고 수치까지 갈아치웠다.
앞서 민주당과 혁신당은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후보로 우여곡절 끝에 김경지 민주당 후보를 선출하며 갈등을 어느 정도 봉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영광’을 둘러싼 혈투는 현재진행형이다. 혁신당과 민주당의 상호 비방이 격화되는 등 전면전 양상이 고조됐고, 그 사이 ‘생활밀착형’ 선거전략을 내세운 진보당이 약진함에 따라 영광은 야권 정당들의 정치 명운을 가를 가장 큰 승부처로 자리하게 됐다.
혁신당으로서는 부산 금정구청장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민주당의 요구사항 대부분을 수용하면서 민주당 김경지 후보에게 야권 단일후보 자리를 내줬다. 그런 만큼 영광 지역에서의 승리가 절실한 상황인데, 영광에서도 패배할 시에는 비례대표 정당에서 벗어나 전국정당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당의 계획은 물론이고 차기 지방선거 준비에까지 큰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금정구청장 후보 단일화에 대승적으로 승복한 혁신당에서는 민주당을 향해 “호남을 혁신당에 통크게 양보하고 부산에서는 단일화를 이뤄내 범민주진보진영을 더 두텁게 해야 한다”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황운하 혁신당 원내대표는 사전투표 첫날이었던 지난 11일 친정인 민주당을 향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며 ‘혁신당 탓’ 자제를 촉구했다.
황 원내대표는 전남 지역을 두고 “영광과 곡성에서는 민주진보진영 후보 중 누가 이겨도 윤정권 심판의 대의에 아무 지장이 없다”며 “지난 총선에서는 혁신당이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 기조 하에 전국적으로 후보를 내지 않고 민주당을 도왔다. 그러니 이번 재보선에서는 호남에서는 혁신당에 통크게 양보하고 부산에서는 단일화를 이루어내어 범민주진보진영을 더 두텁게 하는 게 바람직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왕지사 호남에서 경쟁하게 됐으니 품격 있는 경쟁을 펼쳐야 한다”며 “‘정의당의 길’ 운운하거나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 한다’는 등의 저급한 공격은 분열의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는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혁신당을 ‘조국정의당’이라 지칭하는 등 비난 움직임이 고개를 드는데 따른 반응이다.
영광에서는 기존에 민주·혁신당의 2강 1중 구도로 예측되던 것과 달리, 최근 진보당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판세가 전개되고 있다. 혁신당으로 표가 분산되면서, 야3당간 경쟁에서 민주당 후보가 확실한 승산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는 관점에서 ‘조국정의당’이란 단어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표가 당시 국민의힘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48.56%)에게 단 0.73%p 차로 분루를 삼킨 이후로, 이 대표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정의당’이 분열 세력의 대명사처럼 됐다. 당시 완주했던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37%를 득표했다.
혁신당에 대한 불만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사례는 ‘조국정의당’이란 단어의 등장뿐이 아니다. 민주당 지도부 일부에서는 혁신당의 호남 선거전에 대한 불만을 지속해 표출해왔다. 대표적으로 김민석 수석최고위원은 혁신당이 전남 영광·곡성군수 재보선 지원을 이유로 본회의에 불참했던 것과 관련해 공개적인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
지난달 19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야당 주도로 김건희·채상병 특검법 등이 통과됐다. 당시 의결정족수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김민석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국가적 중대시기에 국민적 관심사의 국회 의결에 빠지는 소탐대실은 엄히 비판받아야 한다. 무엇이 중한지를 가리는 감각도, 왜 비판받는지를 성찰하는 염치조차 잃었다면 이미 고인 물을 넘어 상하기 시작한 물”이라고 혁신당을 저격했다.
민주당은 이번 재보선에서 전통적인 보수 강세 지역으로 분류되는 인천 강화와 부산 금정에서 뜻밖의 성과를 내서 ‘제2의 정권심판 선거’로 만들었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혁신당이 영광 등 호남 지역을 놓고 세게 부딪혀와 선거의 스포트라이트가 호남 지역에 집중되게 되면서, 이러한 선거 전략이 흐트러졌다는 점이 혁신당에 대한 비난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김선민 혁신당 의원은 김민석 최고위원의 비난에 대해 “민주당의 ‘5분 대기조’가 될 생각은 없다”라고 일축했다. 김선민 의원은 “국민의힘을 비판해도 모자랄 시간에, 그런 급변 상황을 감안하지도 않고 ‘민주당 땅’인 영광과 곡성에서 재보궐선거 운동을 하고 있느냐고 탓하고 싶은 것이냐”라고도 반문하는 등 김 최고위원과 날 선 신경전을 이어갔다.
민주당으로서는 혁신당 뿐만 아니라 진보당의 약진으로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진보당은 재보선은 전국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곳이 몇 군데로 한정돼 있다는 점을 이용해, 전국 당원들을 격전지로 하방시키는 방식으로 유독 재보선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진보당은 지난 2023년 상반기 재보선에서는 유일하게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전북 전주을에 당력을 총동원해, 민주당의 텃밭에서 민주당 출신 지역정치인들을 제치고 끝내 강성희 전 의원을 당선시켜 원내 정당으로 진입한 바 있다. 진보당은 이를 기반으로 이번 22대 총선에서는 민주당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에 합류하며 원내 3석(지역구 1석·비례대표 2석)으로 세력을 불렸다.
오는 16일 재보선 선거 결과가 나온 뒤, 다음달 15일(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과 25일(위증교사 혐의)에는 열흘 간격으로 이재명 대표에 대한 1심 판결이 잇달아 예정돼있다. 1심 판결 결과와 재보선 결과가 맞물리면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에 타격이 가중될 가능성이 있다. 이를 의식했는지 이재명 대표는 수차례 영광을 뽑아 자당 후보를 뽑아달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영광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표심을 얻는데 총력을 쏟고 있다. 진보당은 지역에서 농활 등을 통한 활발한 밀착 행보를 펼치는 중이다.
이번 영광군수 재선은 무소속인 전임 강종만 군수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중도 낙마 하면서 치러지는 선거다. 이와 관련해 진보당 관계자는 진보당의 약진 배경을 “그간 부정부패와 비리로 얼룩져온 영광 정치에 대한 실망”이라며 “진보당이 보여준 겸손하고 헌신적이고 주민 속에 들어간 생활정치에 대한 신뢰와 감동”이라고 자평했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