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 ① 홍진배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원장
“올해 노벨 화학상이 AI(인공지능) 연구자에게 주어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단백질구조 규명에 AI가 유용하다는 게 증명됐기 때문입니다. AI는 GPT(General Purpose Technology), 즉 범용 기반기술로 더 주목받게 됐습니다. 따라서 우리 기술확보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홍진배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원장은 우리나라가 자체 확보한 기술을 초격차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은 응용서비스에 강하니 원천기술은 해외 빅테크(대형 IT기업)의 모델에 의존하고 서비스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홍 원장은 “구글 딥마인드가 만든 ‘알파폴드’는 생명공학 연구에 AI가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줬고 이젠 단백질 구조설계까지 해주는 ‘알파프로티오’까지 개발했다”며 “중요한 포인트는 ‘알파폴드3’ 버전까지 모든 연구자에게 공개한 구글이 알파프로티오부터는 협력하는 리서치 네트워크에서만 폐쇄적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힌 것”이라고 했다. 자체확보한 기술이 없으면 AI 패권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우려다.
2014년 6월 ICT(정보통신기술) R&D(연구·개발) 총괄 전담기관으로 설립된 IITP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 산업기술진흥원(KIAT) 등에 산재돼 있던 ICT R&D 기능을 통합했다. R&D의 기획부터 평가·관리, 사업화까지 전주기에 걸쳐 연계하고 종합관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올해 예산은 1조3947억원, 이 중 1조300억원가량이 R&D에, 나머지 3600억원가량이 인재양성에 쓰인다.
홍 원장은 “전세계가 디지털 기술, 특히 AI를 국가 핵심자산으로 인식하고 치열한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선도기업에 대한 견제·대응, 초거대 AI모델 구축, AI칩 자체개발 등 AI 풀스택(전방위 역량구축) 경쟁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도 초격차 기술로 글로벌 디지털기술 패권을 선도해야 한다”며 “국제 공동연구 활성화를 위한 국내외 연구거점을 구축하고 AI 안전연구 등에 집중할 수 있는 R&D 프로세스도 혁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 기술 4위, AI는 6위… 공동연구로 리더십 확보
━
– 우리나라의 디지털 기술 경쟁력 수준은 어떤가요.
▶우리나라는 1위 미국을 100점으로 할 때 90.0점으로 유럽(93.8) 중국(92.2)에 이어 4위로 평가됐습니다. 5G·6G와 AI반도체 부문은 최고 기술력 보유국인 미국과 동등한 수준으로 평가되는 등 기술을 선도하고 있지만 AI 부문은 기술 개선 속도가 아직 상대적으로 느리고 열위에 있습니다. 다만 올해 영국의 토터스미디어가 인재, 인프라, 정책, 생태계 등을 평가해 산출한 ‘글로벌 AI 인덱스’에서 한국은 미국, 중국, 싱가포르, 영국, 프랑스에 이어 6위를 기록하는 등 앞으로 개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합니다.
정부와 IITP는 디지털 초격차 핵심 기술력 확보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2022년 디지털 혁신을 위한 3대 게임체인저를 중심으로 AI, AI반도체, 차세대 통신, 양자, 사이버 보안, AI융합서비스 등 6대 디지털 전략기술을 선정, 1조323억원을 올해 투자했습니다. 내년에도 1조3160억원의 예산안이 상정돼 심의를 거쳐 집행될 예정입니다.
-기술패권 글로벌 리더십 확보를 위해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AI 분야에서는 국내외 연구협력 거점을 구축·운영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450억원, 미국 뉴욕대가 420억원을 투자해 지난달 미국 뉴욕에 개소한 한미 글로벌 AI 프론티어랩이 대표적입니다. ‘AI 4대 천왕’으로 꼽히는 얀 르쿤 뉴욕대 교수(메타 AI 수석과학자)가 공동연구소장으로 참여합니다. 미국 등 해외 선진 연구기관과 채널확보를 위해 노력한 첫 결과입니다. KAIST, 포항공대, 경희대 등 역량 있는 국내 연구진이 현지에서 상주해 연구를 수행하고 사업 초기 단계부터 AI 분야 국내외 ???관과 전문가가 공동으로 참여해 연구대상과제를 기획합니다.
국내에서도 해외의 유수 연구진과 함께 고난도 AI 수행연구와 교류를 할 수 있도록 ‘AI 연구거점’을 이달 말쯤 서울 우면동 ‘서울AI허브’에 설치할 예정입니다. 카이스트(KAIST), 고려대, 연세대, 포항공대(포스텍) 등 국내 연구진과 미국 스탠퍼드대와 코넬대, 캐나다 토론토대 등 해외 연구진, 국내 지방자치단체와 기업들이 참여합니다.
이외에도 미국과 AI반도체 및 양자, 유럽연합(EU)과 차세대 네트워크, 스페인·싱가포르와 AI 융합서비스 등 디지털 혁신기술의 국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대학과의 공동연구, 파견교육, 해외석학 유치 등을 통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핵심인재를 육성하는 사업도 진행 중입니다.
– 기술 조기확보를 위한 예산 확보는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요.
▶올해부터 2028년까지 6G(6세대 이동통신) 등 차세대 네트워크 기술개발을 위한 예산 4407억원은 지난해까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거쳐 확정됐고 올해도 저궤도 위성통신의 사업경쟁력 확보를 위해 내년부터 2030년까지 투자할 3200억원, AI반도체를 활용한 K클라우드 기술개발 예산 3426억원도 확정됐습니다. 여기에 내년부터 2032년까지 진행될 양자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 예산도 7000억원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G3(주요 3개국) 조기진입을 목표로 디지털 혁신분야 연구를 안정적으로 지원할 예정입니다.
R&D 기획에 기업·투자자 참여, 시장성과 기술력 다잡는다
━
– R&D로 창출한 성과를 확산하기 위한 시스템이 있을까요.
▶기술개발이 다 끝난 후에는 그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사업화하기까지 또 시간이 소요됩니다. 기업 등 수요자들이 R&D를 기획할 때부터 참여할 수 있도록 R&D 프로세스를 개편하는 작업을 올해 시범적으로 실시했습니다. R&D 기획단계부터 사업화가 용이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R&D는 △수요조사 △기획 △평가 △집행관리 △연구성과 고도화를 위한 환류까지 5단계로 진행됩니다. 올해는 4단계, 집행관리 단계에 해당하는 기술성과 교류회에 동료연구자 외에도 벤처캐피탈(VC) 등 투자자와 기업 등 수요자까지 참여하는 개방형 ‘피어 리뷰'(동료평가)를 진행했습니다. 또 11월까지는 2단계에 해당하는 기획단계에 통신사나 SI(시스템통합) 업계의 기업, 애널리스트 및 VC 참여가 가능한 검토위원회를 열 예정입니다. 올해까지는 6대 디지털 전략 기술분야 중 일부 과제에 대해서만 시범적용했지만 내년부터는 전분야 R&D로 투자자, 기업참여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연구계에서도 성과가 사업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기업이나 투자자들도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R&D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호응했습니다.
기획 과정에서 각각 요소기술을 세트로 모으면 기업과 투자자에게 더욱 어필할 수 있습니다. 자율주행 연구만 하더라도 무수한 요소기술이 세트로 모여야만 제품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연구자가 개별 연구성과를 수요처인 완성차 제조사로 가져가도 사업화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현장이 요구하는 최적의 수요를 발굴하고 수요자가 원하는 기획으로 연구자와 수요자가 함께 달리는 R&D 체계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성과창출을 위해 R&D와 실증·사업화를 연계하는 것도 추진하겠습니다.
– 인재 양성은 어떤 프로세스로 진행하고 있습니까?
▶고급인재 육성을 위해서는 42개 대학원을 통해 6년에서 10년에 걸쳐 전문인력을 양성합니다. SW(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사업은 이공계 쪽에서 코딩 등을 공부한 이들 중 창업을 염두에 두는 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현재까지 142곳의 창업성과가 있었습니다. SW 마에스트로 사업은 IITP의 인재양성 프로그램 중 가장 잘 알려진 프로그램으로 꼽힙니다.
SW중심대학 사업도 의미가 큽니다. 한 지방대학 총장님과 만났을 때 SW중심대학이야말로 공공기관이 수행해야 할 우수한 사업이라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기존에 조선공학, 기계공학을 전공한 지방대 학생들에게 SW교육을 집중 실시해 이들이 지역 기반의 조선업체 등 제조업 현장에 취업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 것입니다. 전국 58곳에 이르는 SW 중심대학 중 수도권 지역은 3분의1이 채 안되고 나머지는 모두 지방에 있습니다. 때문에 지방대 학생들이 취업하고 지역 산업단지가 살아나며 지역경제도 유지되는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