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바쁘다 보니 책 읽기가 후순위가 되곤 했는데 이번 기회에 마음 다잡고 다시 책을 읽어보려고요. 한강 작가님 책부터 독파하려고 처음으로 ‘서점 오픈런’이란 걸 해봤어요!”
13일 오전 11시께 친구와 함께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차려진 야외도서관 ‘광화문 책마당’에서 소설가 한강의 책 ‘소년이 온다’를 읽던 이이슬(30)씨의 말이다. 이씨는 온라인 서점에서 한강 작가의 책을 구매하려다 ‘예약’이 뜨는 걸 확인하고는 아침 일찍부터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를 찾았다. 그는 “오랜만에 한국 사회에 좋은 일이 생긴 것 같아 기쁘다”며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우리 국민들에게도 책을 더 가까이하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한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알려진 뒤 국내에서는 뜻밖의 책 읽기 바람이 불고 있다. 수상 소식이 전해진 당일 한 작가의 베스트셀러가 모두 팔리는가 하면, 야외도서관도 한 작가 작품을 읽으려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이날 오전 한겨레가 찾은 광화문 책마당에도 책을 읽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 빼곡했다. 서울시는 전날부터 서울야외도서관(책읽는 서울광장·광화문 책마당·청계천 책읽는 맑은냇가) 3곳에 한강 작품 10종, 총 216권(번역본 포함)을 전시해 방문하는 시민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행인들도 발길을 멈추고 진열된 한 작가 작품들을 구경하고, 광화문을 배경으로 책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번역본을 하나씩 골라잡고 자리를 잡은 외국인들도 곳곳에 보였다.
시민들은 한 작가의 수상을 하나같이 감격스러워 했다. 두 자녀와 야외도서관을 찾은 조소영(41)씨는 “5·18 민주화 운동과 제주 4·3 등을 다룬 한강 작가님이 상을 타서 더 감격스러운 것 같다”며 “아직 ‘채식주의자’만 읽은 상태인데 한강 작가님이 아픈 역사를 어떻게 풀어냈는지 다른 책들도 하나씩 읽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번역 일을 하는 정현지(44)씨는 “문학계나 출판업계도 이번 수상이 기쁘겠지만 번역업계 사람들도 큰 힘을 얻었다”며 “한강 작품 외에도 뛰어난 국내 작품이 많은데 이번 기회에 번역 쪽에도 붐이 일어서 세계인이 우리 문학을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책 읽기를 다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 마포구에서 온 취업준비생 이수한(25)씨는 “취업 준비로 바쁘지만 이번 계기로 책 읽기 습관을 다시 가져보려 한다”며 “문과 출신에 늘 따라붙는 말이 ‘문송합니다’(문과라 죄송합니다)란 말인데, 한강 작가의 수상 덕에 조금이나마 한국 사회가 이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호주에서 온 벤 클라크(23)씨도 “한국 문학이 이렇게 섬세하고 훌륭한지 몰랐다”며 “앞으로 한국 문학을 많이 찾아보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온라인에서도 책나눔이 활발히 이뤄지는 등 책 읽기 열풍이 한창이다. 누리꾼들은 한강의 수상을 축하하며 본인이 가진 한 작가의 책을 무료로 나누거나, 이번 기회에 책 읽기 열풍을 일으키자며 서점 ‘기프티콘’을 선물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한 작가 작품뿐 아니라 다른 국내 문학, 특히 여성 작가가 쓴 작품을 추천하는 글들도 잇따르고 있다. 전날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에는 이례적으로 ‘교보문고’가 실시간 트렌드로 오르기도 했다.
한겨레 박고은 기자 /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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