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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노벨문학상 만들어낸 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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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4일 열린 한강 작가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간담회 모습. ⓒ 데일리안 DB

한강이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정치적 의미도 담긴 노벨평화상 이외에, 지적 활동의 소산에 수여하는 노벨상 수상자가 우리나라에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그간 열패감이 컸다. 일본엔 그런 노벨상 수상자가 다수 존재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두 명이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 1순위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거론되기도 했다.

한국은 고은 시인의 수상에 다년간 기대를 걸었지만 매번 좌절됐고 그에 따라 희망이 희미해진 상태였다. 올해엔 노벨문학상 관련 보도조차 거의 없을 정도로 관심이 사그라졌는데 그때 한강의 수상이라는 엄청난 소식이 전해졌다. 인도 타고르, 일본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 중국 모옌에 이어 아시아 5번째 수상이고 여성 작가로는 아시아 최초다.

세계 무대에서 큰 인정을 받지 못했던 한국 문학이 당당히 주류 무대에서 인정받은 대사건이다. 이번 수상으로 한국 문학의 위상이 전반적으로 올라가고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커질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세계적 문학이 나오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이곳이 식민지, 내전, 4.19, 군사쿠데타, 초고속 산업화,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등 정말 놀라운 현대사를 살아온 나라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한강이 그 현대사에서 길어 올린 주제로 세계적 인정을 받았다.

광주 출신인 그는 어렸을 때 서울로 이주했는데, 열세 살 무렵에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가 광주민주화운동 사진첩을 보여줬다고 한다. 거기에서 처참한 시신 등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 천착하기 시작했다. 또 한편으론 계엄군의 위협 속에서도 부상자들을 위해 헌혈하러 모여든 광주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폭력과 반대된 인간성의 또 다른 면에 대해서도 고찰하게 됐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나온 것이 광주민주화운동 문재학 열사를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 가부장의 폭력을 거부하는 ‘채식주의자’, 제주도 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다. 우리의 특수한 역사에서 길어 올린 주제를 보편적인 인간의 이야기로 써내 세계인의 공감을 받았다.

이 정도 국가적 경사의 주인공이 됐으면 크게 기자회견을 하든 뭔가 자축행사를 할법하다. 하지만 한강은 그러지 않는데, 그 이유를 아버지에게 말했다고 한다. “러시아, 우크라이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고 기자회견을 할 것인가”라며 기자회견을 안 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세계인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한강의 국제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생각의 지평이 넓기 때문에 한국적인 소재로 세계적인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의 이야기도 놀랍다. 2010년에 독학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해 불과 3~4년 만에 ‘채식주의자’ 번역에 돌입했다고 한다. 영국인인 그녀가 한국어를 공부하기로 결정한 건, “내가 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 나라 중에서도 한국이 상대적으로 부유한 선진국인 것으로 보아 문학계가 활발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이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선진국이기 때문에 한국어 공부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한국이 그렇게 선진국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급속히 부유해진 것이 산업화, 한강의 기적이다. 그 때문에 영국인 번역자가 한국어를 공부해 한강 작품을 본격적으로 서구 세계에 알려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질 국제적 인지도를 쌓게 한 것이다. 만약 산업화가 없었다면 데보라 스미스는 한국어를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은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현대사의 두 흐름이 모두 작용해 만들어진 결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류 문화 자체가 산업화의 부유함과 민주화의 자유가 동시에 작용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 한류 문화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서구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져 갔고 그것이 한국 문학에 대한 재평가로도 이어졌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봐도 이번 노벨상 수상에 우리 현대사가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임윤찬이 클래식계의 그래미상이라는 그라모폰 음악상에서 2관왕에 올랐다. 그리고 바로 이어 노벨문학상 수상까지 나타난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이 대중문화를 넘어서서 순수문화의 영역에서까지 위상을 구축하는 모습이다. 이번에 한강 수상으로 한국 문학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면서 다른 작가들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린 놀라운 현대사를 가진 나라다. 이 현대사 속에서 다양한 문학, 드라마, 영화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또 한국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수상 소식이 알려진 직후의 차분한 모습이었다. 물론 큰 화제가 터지긴 했지만 사안의 성격에 비추어봤을 때 비교적 차분한 편이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인이 서구권에서 인정받으면 카퍼레이드를 할 정도로 국가적 경축이 나타났고, 싸이가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올랐을 때도 방송언론이 발칵 뒤집혔었다. 지금은 무려 노벨문학상인데도 과거 국가 경축에 비해 차분한 편이다. 그만큼 우리가 성장하고 자신감이 커져서, 서구로부터의 인정을 과거보단 덜 갈구한다는 뜻이다. 이런 성장과 자신감이 바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 우리 현대사의 소산이다.

ⓒ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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