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취임 200일을 넘겼다. 성장 한계에 부딪힌 신세계 그룹의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그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유통 업태 변화 속에서 고전하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승진한 정 회장은 자신의 경영 실력을 입증해야 한다.
정 회장은 올해 안에 그룹 실적 반등의 동력을 만들어 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있다고 한다. 그는 취임 이전 활발하던 소셜미디어(SNS) 활동도 끊고 매일 야근하며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는 그룹 안팎의 이야기가 나온다.
정 회장은 신상필벌을 통한 인적 쇄신에도 나섰다. 수익성 개선을 위해서다. 올해 문을 연 스타필드 수원이나 리모델링을 마친 이마트 죽전점처럼 기존 오프라인 매장을 체류형으로 바꾸는 작업은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주력인 이마트는 강도 높은 체질 개선을 통해 실적이 나아지고 있다. 이마트는 연결 기준 상반기 흑자 전환을 달성했다. 증권가에서 나오는 3분기 실적 추정치도 일단은 밝은 편이다. 신세계 주가도 최근 3개월간 오르는 추세지만 취임 전인 2월 19일의 19만300원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전일 종가는 15만4900원이었다.
◇회장 취임 후 SNS 끊고 경영 매진
정 회장은 지난 3월 취임 당시 “격변하는 시장에 놓인 유통기업에게 변화는 필수 생존 전략이다. 나부터 확 바뀔 것”이라고 했다. 정 회장은 실제 지난 3월 2일을 기점으로 개인적인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정 회장은 과거 인스타그램을 통해 활발하게 소통했다. 팔로워만 83만여 명에 달했다. 또 사회적으로 의견이 갈리는 쟁점적 사안을 올리기도 해 대중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취임 후 인스타그램 활동을 거의 중단했다. 논란이 됐던 과거 게시물도 모두 삭제했다. 또 SSG랜더스 경기를 보기 위한 야구장 방문을 자제하고 있고, 골프도 사실상 중단했다고 한다.
정 회장은 대신 사내에서 경영에 매진하고 있다. 현안에 대해 세밀하게 챙기면서 하루에도 장시간 회의를 수 차례 열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정 회장이 본인부터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야근을 일상화하면서 신세계 그룹이 사실상의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상필벌 강조’ 인적 쇄신과 구조조정
정 회장은 올해 안에 이마트를 비롯한 핵심 계열사 실적 반등의 동력을 찾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초기 행보는 인적 쇄신과 구조조정에 집중됐다. 주력 계열사들 수익성 회복을 위해서다.
이마트는 2011년 신세계그룹에서 인적 분할된 뒤 지난해 처음 적자를 기록했다. 지마켓(G마켓) 매출액은 지난 1분기 255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9억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SSG닷컴 매출액은 4134억원으로 79억원 줄었다.
이에 지난 3월 이마트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이미트뿐만 아니라 아마트에브리데이, SSG닷컴도 법인 설립 이후 최초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최근엔 지마켓도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그는 취임 100일이 되기 전에 정기인사가 아님에도 계열사 수장을 3명이나 연달아 교체했다. 신상필벌을 강조한 인사다. 신세계건설 대표와 SSG닷컴, 지마켓 대표를 바꿨다. 헤드쿼터인 경영전략실 개편과 핵심성과지표(KPI) 수립 등 조직 전반 쇄신에도 나섰다. 경영전략실은 콘트롤타워로 세우고, 성과 중심의 인사체계 도입을 지시했다. 임원 급여에서 인센티브 비중을 높였다.
◇비효율 사업 부분 과감 정리… SSG닷컴 사옥도 이전
정 회장은 비효율 사업도 과감히 정리하고 있다. 신세계푸드의 스무디킹코리아와 신세계L&B의 주류사업장이 대표적이다. 신세계푸드가 운영하는 스무디킹코리아는 내년 10월 한국에서 철수한다. 신세계푸드는 2015년 10월 스무디킹 한국 사업권 지분을 인수해 운영해 왔지만 업황이 부진해 작년 적자 전환했다.
종합주류 계열사인 신세계L&B도 재정비했다. 최근 신세계L&B는 올해 주류 전문매장 ‘와인앤모어’의 4개 매장을 폐점한 데 이어 연내 2개 매장을 추가로 정리할 예정이다. 이마트가 2016년 인수한 ‘제주소주’도 매각을 공식화했다.
지난달에는 이마트의 자회사 신세계건설의 상장폐지도 단행했다. 신세계건설 대주주 이마트는 약 390억원을 들여 신세계건설 잔여 지분 전량에 대한 공개매수에 나서기로 했다. 신세계건설은 부동산파이낸싱 투자실패로 재무부담이 커지면서 2022년 이후 2년 연속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이마트 실적 악화의 최대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이커머스 계열사들에 대한 비용 절감 조치도 이어지고 있다. SSG닷컴과 W컨셉 사옥을 내년 2월 기존 강남에서 KB영등포 타워로 이전한다. 임대료 감축을 위해서다.
◇CJ와 물류 협업·체류형 오프라인 매장 등 핵심 사업 경쟁력 강화
정 회장은 본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협업 카드를 선택했다. 이커머스 시장 물류 인프라 대응을 위해 CJ그룹과 협업을 선포했다. 지마켓과 SSG닷컴의 배송과 물류를 CJ대한통운이 맡게 된 것이다. 지마켓은 CJ대한통운의 내일도착 보장 서비스를 도입하고, SSG닷컴은 물류센터 운영권을 CJ대한통운에 이관하기로 했다.
쿠팡에 대응하기 위해 온라인 배송인프라를 스스로 구축하는 것이 성과를 내지 못하자 물류는 CJ대한통운에 넘기고 신세계는 직매입 경쟁력 강화 등 본업에 더 집중하자는 정 회장의 전략적 결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오프라인 본업 경쟁력을 위해서는 가격 경쟁력 강화와 체류형 매장 전환에 집중하고 있다. 이마트는 직소싱과 대량 매입 등 유통 노하우를 동원해 가격 역주행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마트에브리데이와 주요 상품을 공동 판매해 통합 시너지를 내고 있다.
특히 이마트 죽전점과 스타필드 수원 등 체류형 매장으로의 전환도 좋은 반응이 나왔다. 올해 1월 개점한 스타필드 수원은 오픈 사흘 만에 33만 명, 열흘 만에 84만 명의 방문객이 몰리며 주변 상권을 빠른 속도로 흡수했다. 특히 오픈 초기에는 재난 문자가 올 정도로 사람이 몰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 회장의 신사업 야심작은 테마파크다. 신세계프라퍼티는 파라마운트와 협업해 2029년까지 여의도 크기의 테마파크를 화성시에 짓기로 했다.
◇‘사업 부진 결과 직원들이 떠안나’ 비판도
정 회장의 행보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비용 절감을 통해 실적 회복이란 숙제는 어느 정도 풀어내는 모양새지만, 아직까지는 치적이라 할 만한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것이 시장의 시선이다.
정 회장은 취임 이전 손댔던 많은 사업이 부진했다. 그가 주도했던 제주소주, 삐에로쑈핑, 부츠 등이 사업을 철수했고, 주요 계열사 실적 부진 역시 정 회장과 무관치 않았다. 정 회장이 강조하는 신상필벌이나 인적 구조조정이 직원들에게 ‘책임 떠넘기기’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가 최근 단발적으로 재개한 SNS 활동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선이 있다. 정 회장은 지난달 16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영문 글귀가 새겨진 검은색 티셔츠 사진을 본인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이 사무실에서 매일 12시간씩 머물며 수시 경영 보고를 받는다고 한다. 체질 개선 작업에 그룹의 명운이 달려있다고 보는 것”이라며 “파라마운트 테마파크 등 굵직한 신사업을 주도하면서 부진한 사업은 정리하고 있다. 곧 다가올 인사도 어떤 변화가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