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자음을 ‘기역, 니은, 디귿 …’ 대신 모음 ‘ㅏ’를 붙여 ‘가, 나, 다 …’로 읽는 것이 배우기에 좀더 체계적이고 실용적이라는 제언이 나왔다.
한글날인 9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관규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한말연구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한말연구 최근호에 게재한 논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이 교수는 우선 1988년 문교부 고시 ‘한글 맞춤법’에 따른 현행 자음자들의 이름이 과학적이지도 체계적이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ㄱ(기역), ㄷ(디귿), ㅅ(시옷)’을 제외한 나머지는 ‘니은, 리을, 미음, 비읍’처럼 ‘ㅣ’와 ‘ㅡ’를 기준으로 해서 초성과 종성 부분에 해당 자음자를 놓아 2음절로 명명하고 있다.
이것은 조선의 학자 최세진이 1527년 훈민정음을 이용해 한자를 가르치려고 만든 학습서 ‘훈몽자회’의 이름자를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초성과 종성에 둘 다 쓸 수 있는 자음자와 초성에만 쓸 수 있는 자음자가 구별돼 있었다. 초성과 종성에 모두 쓰이는 자음자의 경우 ‘기역(其役), 니은(尼隱), 디귿(池末), 리을(梨乙), 미음(眉音), 비읍(非邑), 시옷(時衣), 이응(異凝)’의 2음절로 제시했다.
대부분 한자음의 소리를 빌려 썼고, 디귿의 ‘귿’과 시옷의 ‘옷’은 한자음이 없어 각각 ‘末'(끝「귿」 말)와 ‘衣(옷 의)의 뜻을 빌려 표시했다.
종성에는 쓰이지 않고 초성에만 쓰이는 자음의 경우엔 ‘키(箕), 티(治), 피(皮), 지(之), 치(齒), 히(屎)’ 등 1음절로 표기했다.
그러나 지금 맞춤법은 받침 글자의 다양화를 인정하기 때문에 종성에도 쓸 수 있는 자음자를 구분하려고 구태여 2음절 이름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 교수의 얘기다.
또 당시 ‘윽, 읃, 읏’에 해당하는 한자가 없어 ‘ㄱ, ㄷ, ㅅ’을 ‘기역, 디귿, 시옷’으로 대신한 부분도 체계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ㄱ’은 ‘기역’인데 ‘ㅋ’은 왜 ‘키읔’인지도 설명하기 어렵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왜 ‘ㅣ’와 ‘ㅡ’를 사용해 2음절로 명명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밝혀진 바가 없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이 교수는 이에 따라 현행 2음절 이름보다는 각 자음자에 같은 모음 하나를 붙이는 1음절 이름이 더 타당하고 배우기도 쉬우며, 모음 중에서도 ‘ㅏ’를 사용하는 것이 유용하다고 제안했다.
‘ㅏ’가 개구도(발음할 때 입을 벌리는 정도)가 커서 자음자의 특성을 잘 드러낼 수 있고, 모든 모음자의 첫 번째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그 근거로 꼽았다.
이 교수는 “입을 가장 크게 발음하면 상대적으로 자음자가 크게 들리고, 음성학적으로 다른 모음에 비해 동반하는 자음자를 잘 드러내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성 모음으로서 가치를 인정해 모음자의 이름은 ‘ㅏ, ㅑ, ㅓ, ㅕ …’로 순서화되어 있어 ‘ㅏ’는 현재 모음자의 대표적인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더해 자음자를 ‘가, 나, 다, 라 …’로 읽는 것이 대중성과 실용성 차원에서도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자음자 이름은 용이성이 꼭 필요하다. 한글을 쉽게 배울 수 있어야 한다”며 “‘가나다라마바사…’ 등 노래 가사는 한국인에게는 아주 일반화돼 있고, 실제 한글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글 자모자를 교육하는 데도 훨씬 효과적이다”고 설명했다.
일반 시민과 외국인 중에도 이 교수의 제안에 공감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직장인 박모(41) 씨는 “초등학교 입학 전 한글을 배울 때부터 ‘기역, 니은, 디귿’으로 익혔기 때문에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가, 나, 다’로 변경하면 여러모로 합리적일 것 같다”며 “아이가 한글을 떼기도 한결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유학 중인 재미 교포 김모(23) 씨는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배우며 가장 먼저 맞닥뜨린 어려움이 ‘기역, 니은, 디귿’이었다. 달리 익힐 방법이 없어 달달 외우는 수밖에 없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