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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9일 중의원(하원)을 해산하고 27일 조기 총선거를 실시할 예정인 가운데 여야가 주요 이슈를 둘러싼 기존 주장에서 후퇴해 현실 노선을 채택하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새 총리 취임 후 전후 최단기간(9일)에 중의원을 해산해 선거가 치러지는 탓에 지지층 결집을 방해할 수 있는 급진적인 정책은 최대한 피해가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8일 니혼게이자이·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전날 중의원 대표 질의에서 지난달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주장한 자신의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창설과 미일지위협정 개정과 관련해 “단시간에 실현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선은 중요한 외교·안전 보장상의 과제에 대처해 나가겠다”고 답해 한 발 물러 서는 모습을 보였다. 아시아판 나토 창설은 일본의 집단 자위권 정의에 부합하지 않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평화 헌법과도 어긋날 수 있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미일지위협정 개정 역시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할 경우 미일 외교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바 있다.
취임 전 주장한 금융소득과세 강화 방안에 대해서도 “현시점에서 구체적으로 검토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총리는 “저축에서 투자로의 흐름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당초 언급했던 법인 증세에 대해서도 언급을 피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의 막판 지지율을 끌어내렸다는 평가를 받는 선택적 부부 별성 허용에 대해서도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결혼 후 남편이나 아내 한쪽의 성을 따라야 하는 일본에선 부부가 혼인 후에도 다른 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 도입 논의가 활발하다. 이시바 총리도 이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으나 자민당을 지지하는 보수층에서 반대가 많자 취임 후엔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이시바 총리는 관련 질의에 “여러 의견이 있어 국민 각층 의견이나 국회 논의 동향 등을 근거로 해 더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도입 여부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는 것은 삼가겠다”고 밝혔다. 닛케이는 “이시바 총리가 아시아판 나토 구상이나 선택적 부부 별성 등에 관해 전 정권(기시다 후미오 전 정부)의 입장에 접근하는 현실 노선으로 수정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고 분석했다. 총리는 취임 후 중의원 해산 방침을 밝힌 뒤 공식 석상에서 기존에 자신이 주장했던 정책 언급을 삼가며 ‘이시바 색(色)을 지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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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총선에서 ‘자민당 타도·정권 탈환’을 내건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도 비슷하다. 전날 발표된 당의 중의원 선거 공약 중 원전에 대한 언급이 대표적이다. 입헌민주당 당 강령에는 ‘원자력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원전 제로 사회를 하루라도 더 빨리 실현한다’고 돼 있으나 이번 선거 공약에서는 ‘원전 제로’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2050년까지 가능한 이른 시기에 화석연료와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탄소 중립을 달성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노다 요시히코 입헌민주당 대표는 “(원전 제로는) 단번에 실현할 수 없다”며 “현실적으로 생각해 이 표현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입헌민주당은 또 2021년 중의원 선거와 2022년 참의원(상원) 선거 공약인 한시적인 소비세 감세를 이번 공약에선 제외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야당이 현실 노선을 내세워 정책 면에서의 안정감을 어필해 비자금 스캔들로 자민당을 떠난 온건보수층을 흡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간판 정책의 보류를 두고는 당 안팎의 비판도 적지 않다. 요미우리는 “(발표된 공약이) 에너지나 외교·안보에서 여당과 크게 차별화가 되지 않아 ‘그렇다면 자민당으로도 괜찮다’는 움직임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당내에서 나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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