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화재사고로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하고 있다. 과열이나 배터리 관리 시스템 결함에 따른 화재 우려로 전기차의 안전성에도 의구심이 커지면서다. 전기차에 부정적 인식이 높아져 소비자가 구매를 꺼리게 되면 배터리 수요도 함께 위축될 수 있다. 배터리 업계에는 대형 악재다. 이에 우리나라 배터리 업계가 화재 안전성을 높이는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며 전기차 포비아 극복에 나섰다.
LG화학은 배터리 화재를 초기에 막는 열폭주 억제 신소재를 개발했다.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배터리공학과 이민아 교수 연구팀과 공동 연구를 통해 열폭주를 억제하는 온도 반응성 ‘안전성 강화 기능층’ 소재 해석을 진행했고 안전성 검증은 LG에너지솔루션이 함께 참여했다.
LG화학이 개발한 열폭주 억제 소재는 온도에 따라 전기 저항이 변하는 복합 물질이다. 온도가 오르는 초기 단계에서 전기 흐름을 차단하는 ‘퓨즈’ 역할을 한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의 주요 원인인 열폭주는 전지 내부의 양극과 음극이 의도치 않게 직접 접촉해 단락과 발열이 발생하며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 초 만에 온도가 1000도(℃) 가까이 치솟으며 화재가 이어지는 만큼 발열 초기에 빠르게 반응 경로를 차단하는 열폭주 억제 소재가 화재 방지에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전기차용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에 약 10㎏ 무게추를 떨어뜨리는 충격 실험에서 일반 배터리는 모두 화재가 발생했다. 반면 열폭주 억제소재를 적용한 배터리는 70% 비율로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 30%는 불꽃이 발생했지만 수 초 내로 꺼지는데 그쳤다.
이종구 LG화학 CTO는 “양산 공정까지 빠른 시일 내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가시적인 연구 성과”라며 “고객이 안심하고 전기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안전성 강화 기술을 고도화하고 배터리 시장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SDI는 최근 LFP+ 배터리의 기술 개발을 완료하고 다수의 고객과 양산 협의를 진행 중이다. LFP 배터리는 구조적 안전성이 우수해 화재 위험도가 비교적 낮은 장점이 있다. 삼원계 배터리 대비 70~80% 수준인 에너지 밀도와 출력 역시 개선되고 있다.
삼성SDI의 LFP+ 배터리는 신규 극판 기술을 적용해 기존 LFP 배터리 대비 에너지 밀도를 10% 이상 향상시켰다.
독일 하노버와 프랑크푸르트(350㎞)를 1400번 이상 왕복할 수 있는 장수명 성능을 확보했다. 20분에 80%까지 충전이 가능한 급속 충전 기술을 적용해 장거리 운행이 필수인 상용차에 적합하다. 인접 셀로의 열 확산을 방지하는 독자적인 열 전파 차단 기술을 적용, 안전성을 더욱 강화했다.
SK온은 앞서 6월 고(故) 굿 이너프 텍사스대학교 교수 연구팀과 상온에서도 구동할 수 있는 리튬메탈 배터리용 고분자 전해질 공동개발에 성공했다. 고체 배터리 성능 개선에 기여하는 동시에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도 속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고분자 전해질은 가격이 저렴하고 제조가 용이해 차세대 고체 배터리 소재로 각광받는다. 하지만 산화물계, 황화물계에 비해 이온전도도가 낮아 70~80도의 고온에서만 구동하는 점이 극복해야 할 과제였다.
SK온이 개발한 신규 고분자 전해질인 ‘SIPE(single-ion conducting polymer electrolyte)’는 이온전도도와 리튬 이온 운반율을 개선해 상온 구동을 가능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고체 전해질 계면(Solid Electrolyte Interphase) 안정성을 높여 덴드라이트(Dendrite) 형성을 억제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덴드라이트는 충방전 과정에서 리튬 이온이 양극과 음극을 오갈 때 음극 표면에 쌓이는 가지 모양의 결정체다. 배터리의 수명과 안전성을 저하시키는 원인 중 하나다.
SIPE는 높은 기계적 내구성을 갖춰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열적 안전성이 우수해 250도 이상 고온에도 견딜 수 있다. 차세대 복합계 고체 배터리에 적용할 경우 충전 속도와 저온 성능을 개선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태경 SK온 차세대배터리센터장은 ”이번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고분자 전해질을 적용한 고체 배터리 개발에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SK온은 신규 소재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향후 차세대배터리 분야의 성장 기회를 선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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