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입사한 지 5년이 넘었지만 나이가 어려 궂은일을 도맡아 합니다. 정말 못 견디겠는 건 술도 못 마시는데 끊임없이 회식 참석을 요구하는 겁니다. 이번에는 지방까지 원정 회식을 하러 가는데 대리운전까지 하라고 합니다. 거절 의사를 비치니까 추가 업무를 명령합니다. 상사가 부당하다고 생각해 퇴사를 생각 중입니다.(2024년 9월, 닉네임 ‘헬프미’)
A. ‘회식 갑질’ 징글징글하네요. 회사에 회식 못 해 죽은 귀신이 있나. 회식 안 하면 회삿돈도 아끼고 사고도 예방하고 좀 좋아요? 이젠 사라질 만도 한데 인동초보다 질기네요.
근로계약서에 없는 궂은일 강요나 회식·음주 강요는 고용노동부 매뉴얼에 명시된 직장 내 괴롭힘입니다. 술 못 먹는 직원 원정 회식 대리운전은 정말 압권이네요. 2024년 맞나요? 잘 거절하셨어요. 가만히 있으면 사내 대리기사 됩니다. 그런 사람 많이 봤어요.
상사가 회식도 업무의 일환이라며 불참자에게 추가 업무를 지시한 것 같은데요. 회식 시간이 근무시간이라면 퇴근 전까지 일하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다음날 하시고요. 야근까지 했으면 기록을 남겨 연장근로수당을 받으세요.
‘헬프미’님 잘못이 아니고, 좋은 회사로 이직하는 것도 아니라면 그만두지 마세요. 자발적 퇴사는 실업급여 못 받습니다. ‘술꾼 상사’가 살아남는 회사라면 사장도 비슷한 부류겠지만 일단 부딪쳐보세요. 사장에게 편지를 보내면 어떨까요?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쓰고, 허드렛일·회식·음주·대리운전 강요는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사실도 적으세요. 회사를 계속 다니고 싶지만 ‘회식 갑질’이 바뀌지 않으면 노동청에 신고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시고요.
상식적인 사장이라면 ‘헬프미’님을 불러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상의할 겁니다. 그런데 몰지각한 사장은 상사를 불러 ‘헬프미’님 쫓아낼 방법을 궁리하겠죠. 교묘하게 따돌리고 증거가 남지 않게 괴롭혀서 제 발로 걸어 나가게 하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편지를 본 사장은 괴롭힘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에 △지체 없이 조사 △피해자 보호 △비밀 누설 금지를 해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신고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하면 3년 이하 징역. 녹음 등 증거 확보 필수!
얼마 전 한 공무원이 직장갑질119에 회식, 음주, 술 따르기 강요 사례를 제보하면서 회식 장소는 늘 정육식당이라고 했습니다. 정육식당이라니, 안 봐도 비디오!
“젊은 사원들이 가장 못 견뎌 하는 것이 삼겹살집과 노래방. (중략) 상사는 ‘요즘 젊은것들은 회식에도 참석 안 한다’라고 화를 낸다. 하지만 이미 세상은 바뀌고 있다. 젊고 이해심 많은 상사로 인정받고 싶다면 지금 당장 회식 장소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1999년 11월8일 경향신문 기사입니다. 무려 25년 전. 당신은 어떠세요? 회식을 일주일에 1회 이상 하세요? 메뉴는 사장이나 부서장이 정합니까? 술 돌리고 노래방도 간다고요? 직장갑질119의 9월 설문조사에서 직장인 3분의 2는 직원 의견을 모아 메뉴를 정하고, 4분의 3은 음주 강요가 없다고 답했어요. 술이 좋다고요? 그럼, 술꾼들끼리 노세요. 제발.
추신) 해외순방에서 재벌 회장들 불러 새벽까지 술 ‘멕’인다는 소문이 자자한 대통령 때문에 술꾼인 게 창피한 1인의 간곡한 부탁입니다.
한겨레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 webmaster@huffingto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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