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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통일 30년이면 될까?”에 김정일 “50년 지나도 어려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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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9월 19일 9.19 평양공동선언 기념식의 기념사에서 통일을 후세대에 미루고 평화 구축에 집중하자며 △영토를 규정한 헌법 3조의 개정 및 폐지 △국가보안법 폐지 △통일부 중단 등을 주장했다. 이를 두고 김정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따라간 것 아니냐며 여권을 중심으로 강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과 임종석의 텍스트를 갖다 놓고 나란히 보면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내부 구조는 전혀 다르다”라며 임 전 실장의 주장은 현실을 반영한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통일의 원심력과 구심력이 있는데 지금 북한은 구심력이 강한 상황”이라며 2020년 말에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2021년 9월 ‘청년교양보장법’, 2023년에는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예로 들었다.

정 전 장관은 이 법에 대해 “남한 문화를 차단하고 소위 ‘백두혈통’인 김정은 원수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된다는 것을 청년들에게 강요하는 법인데, 이는 그만큼 청년들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겁이 난다는 뜻”이라며 현재 북한이 통일은 고사하고 남한과 접촉을 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지정학적 및 국제정치적 상황을 보더라도 향후 통일을 실현하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그는 “현재 동북아시아에서는 중국의 힘이 점점 커지고 미국의 힘이 약화되고 있는데, 미국은 여기에 밀리지 않기 위해 한국에 계속 남아 있고 싶어 한다”며 “주한미군은 북한이 아니라 중국 압박을 위한 전진기지로 주둔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입장에서도, 북한이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남한에 흡수통일되면 미국이 지원하는 통일이 이뤄지는 셈인데, 이는 인중에 비수가 꽂히는 격이 된다”며 “미국의 압박 강도가 강해지면 중국은 북한을 놓을 수가 없다. 지금은 러시아에 맡기고 있지만 북한을 붕괴하지 못하도록 하고 통일을 반대하는 역할을 중국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 전 장관은 “중국이 아무리 북한과 마찰이 있어도 여전히 북한의 뒷배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남한과 북한을 서로에 대한 완충 지대로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미중 국가 이익 때문에라도 통일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그는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전해준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6.15 정상회담 당시 남측의 연합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를 합의하는 과정에서 “남북 연합을 하면 30년 후 정도에는 통일이 될까” 라고 이야기하니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50년이 지나도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은 “임 전 실장의 주장이 원론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일 수 있으나, 본인이 전대협 의장으로 임수경을 북으로 보냈는데, ‘통일 지상주의자’에서 ‘평화 지상주의자’로 바뀌게 된 부분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는 점이 좀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박 고문은 이어 “사실 2018~2019년의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골자로 한 남북·북미관계 개선은 시작도, 결렬도 미국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여전히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데 남북 간 평화롭게 지내자고 하면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까?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며 실제 남북 간 합의가 남북관계를 규정하는데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사실 7.4 공동성명부터 1991년 유엔 동시가입, 남북 기본합의서 도출 등이 우리의 주동적인 선택이었기 보다는 국제정세의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있다. 7.4 공동성명은 미국과 중국의 화해 분위기가, 1991년의 유엔 동시가입 및 기본합의서 도출은 냉전 종료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박 고문은 “국제적으로 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헤즈볼라 등 전 세계에서 미국 지배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남북이 합의만 하면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라며 “이런 데도 남한의 책임있는 정치인이 이러한 주장을 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상황과 맥락을 보면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북이 적대적인 상황에서 최선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봐야 하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대담은 2일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사)한국통일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이재호)

박인규 : 1991년 남북은 유엔 동시 가입과 기본합의서를 통해 잠정적 공존체제를 마련했다. 2018년 지속적인 공존 체제로 바꾸려고 했으나 현재 결국 적대적 대결 체제가 됐다. 이게 일시적일 것인지, 계속 갈 것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난 9월 19일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광주에서 열린 ‘9.19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기념사에서 통일하지 말자면서 평화 구축을 강조했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일 수 있으나 좀 당황스러운 것은 본인이 전대협 의장으로 임수경을 북으로 보냈는데, ‘통일 지상주의자’에서 ‘평화 지상주의자’로 바뀌게 된 부분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연설에서 이를 다 설명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런 부분이 아예 없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또 기념사에서 헌법 3조 폐지 및 개정, 국가보안법 폐지, 통일부 정리 등을 주장했는데 국내 정치 상황 상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사실 2018~2019년의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골자로 한 남북, 북미관계 개선은 시작도, 결렬도 미국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여전히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데 남북 간 평화롭게 지내자고 하면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까?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사실 7.4 공동성명부터 1991년 유엔 동시가입, 남북 기본합의서 도출 등이 우리의 주동적인 선택이었기 보다는 국제정세의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있다. 7.4 공동성명은 미국과 중국의 화해 분위기가, 1991년의 유엔 동시가입과 기본합의서 도출은 냉전 종료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임종석 전 실장의 주장에 따르면 남북이 합의만 하면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현재 국제적으로 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헤즈볼라 등 전 세계에서 미국 지배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를 다 무시하고 남북이 합의만 하면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이런 데도 남한의 책임있는 정치인이 이러한 주장을 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상황과 맥락을 보면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북이 적대적인 상황에서 최선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봐야 하지 않나.

정세현 : 기념식 행사 준비할 때부터 본인이 하겠다고 했었다. 적극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념사 시작하자마자 거두절미하고 통일하지 말자고 하더라. 운동권에서 소위 ‘NL'(National Liberation, 민족 해방)계로 분류되던 임 전 실장이 고유의 신념을 가지고 있을 텐데 왜 저런 이야기를 하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 맞는 말도 있었다.

사실 현실적으로 통일이 어렵고 이건 북쪽도 마찬가지다. 1977년 통일부의 전신인 국토통일원에 들어갔을 때 통일은 ‘재통일’의 개념이었다. 원래 하나인데 두 개로 쪼개졌으니까 붙이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로 넘어 오면서 북한이 1980년 10월 10일 노동당 6차 당 대회에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내놓으며 공세를 취했다.

북한이 내놓은 방안을 뜯어보니 진심으로 통일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선결과제라는 것을 내세웠는데 주한미군철수, 보안법 철폐, 반공법 철폐, 반공교육, 민주인사 집권 등을 제시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되면 연방제로 통일할 필요가 없지 않냐는 생각이 들어서 북한이 통일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생각하게 됐다.

북한이 우리한테는 선결과제 5개를 이야기해놓고 외국에는 이 과제를 빼고 자신들의 방안을 설명했다. 이용희 통일부 장관은 영국의 노동당 당수가 “남한은 북한이 제시한 연합도 받지 못하냐”라는 식으로 물어봤다는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선결과제를 듣지 못했다고 영국에 설명했다고 한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이 나온 이후 1981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여기에 대응하는 통일방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민족화합민주통일 방안’을 만들었다. 이 방안도 낮은 단계의 연합 개념으로 시작한다. 도형으로 시각화하자면 마름모 꼭대기에 정상회의가 있고 중간에 남북 국회와 장관급 회담, 아래 꼭짓점에는 공동 사무국이 있는 형태다. 사무국은 서울과 평양에 같이 두기로 했다.

7.4 남북공동성명을 작업했고 그 시기에 남북대화 업무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공동성명에서 합의했던 ‘남북조절위원회’보다 조금 더 낮은 단계부터 남북관계를 시작해야 한다는 현실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조절위만 있고 이행할 공동 기구가 없으니 추진력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을 ‘엎어치기’ 하기 위해 만든 이 방안은 다음해인 1982년 1월 초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공개된다. 이렇게 북한의 방안을 비판하고 대응논리를 구축하는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것은 통일 문제가 결국 ‘말싸움’으로 흘러가더라는 점이다.

우리 경제는 1970년대 중반을 계기로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은 1980년대 제로 성장 초기였다. 그래서 경제 격차 때문에라도 말로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을 외쳐대지만 실제로 우리가 전제요건 빼고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을 그대로 하자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지 미지수다.

우리 방안이 북한의 방안을 엎어버릴 수 있을 정도도 아니었지만, 현실적으로 경제 격차가 나기 시작하면 생활 형편 때문에 북측이 본심으로는 통일을 안하려고 하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김일성 체제가 무너지게 생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통일은 말싸움으로만 끝나지 실제로는 접점을 못 만드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1980년대에 하게 됐다.

세월이 흘러 1989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난데없이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은 이제 통일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가 누구에게 먹히는 식으로 돼서는 안된다는 소리를 하더라. 이걸 듣는 순간 처음에는 이게 또 무슨 뒤통수를 치려고 이렇게 난데없는 소리를 하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 시기가 동유럽이 막 흔들릴 때다. 1980년대 중반부터 5~6년 지간에 흔들리지 않았나. 그러면서 미국 쪽에서 시스템 체인지 등의 말도 나오고 있었다. 그때는 흡수통일을 염두에 두지 못했는데, 동유럽의 흐름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국가에 먹히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에 당시 국토통일원 이홍구 장관은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수립하면서 남북연합 개념을 내놨다. 영어로는 이걸 ‘코리언 커먼웰스'(Korean Commonwealth) 라고 했는데 영국의 ‘영연방’ (Commonwealth of Nations)과 유사한 개념이다. 이는 컨페더레이션(confederation, 연합) 보다 느슨한 개념이었는데, 북한의 흡수 통일에 대한 공포를 일정 부분 완화시켜주는 효과도 있었다.

남한 정부가 통일 방안을 이렇게 가져가는 것을 보고 1991년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또 통일은 먹고 먹히는 것이 아니라면서 통일 방안도 ‘느슨한 연방제’ 형태로 나가야 된다고 밝혔다. 이걸 보면서 통일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북한이 1960년에 연방제를 내세울 때는 경제적으로 남한보다 좋을 때고 남한이 4.19 혁명 이후 정치적 혼란 상황이 계속될 시기다. 이 때 연방제라는 프레임으로 남한을 잡아먹으려고 했다. 연방제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면 남북경제협력위원회부터 만들자고 했다. 자기들이 경제 우위에 있으니까 경제 경제협력의 틀 속으로 남한을 끌어넣어서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연방 정부를 만드는 식으로 가려 했던 것이다.

이게 1960년 8.15 때 나온 연방제인데 이를 좀 더 충실하게 만든 것이 그로부터 20년 후에 나온 고려 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이다. 그런데 북한 경제가 내리막길을 걸으며 제로 성장을 시작했고 1980년대 중반에 동유럽이 흔들리고 중국 및 구 소련에서 들어오는 지원이 끊어지니까 경제 상황이 더 악화됐다.

이런 와중에 나온 북한의 통일 청사진을 보며 이제 통일에서 도망가려는 건가 하는 의도가 보였다. 1991년의 경우도 1989년 베를린 장벽 무너지고 동서독이 통일된 것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김일성이 보기에 당시 동서독 통일은 흡수통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유엔 동시가입도 북한이 우리보다 살짝 먼저했다. 북한이 입으로는 통일을 달고 살지만 실제로는 흡수통일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기본합의서에서 남북은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상대를 정의했다. 1항은 상호 체제 및 존중, 2항은 내정 불간섭, 3항은 비방‧중상 중지, 4항은 상호 불가침으로 구성돼 있다.

기본합의서 체결 이후 1992년 2월 22일로 기억하는데 통일연구원 부원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갑자기 노재봉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연락이 왔다. 북한이 김용순 국제비서를 미국까지 보내서 아놀드 켄터 국무부 부장관에게 충격적인 제안을 한 것 같다면서 대응 방안 보고서를 마련해 달라고 했다.

당시 김용순은 미측에 한반도에 주한미군 있어도 좋으니 수교하자, 통일된 뒤에도 미군은 조선반도 어디에든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제안을 했다. 미국이 아직 답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우리 입장은 미국에 안된다는 쪽으로 이야기하라는 것이었다. 북미 수교가 되면 이건 결국 두 개의 한국, 즉 ‘투코리아’로 가겠다는 의도였다. 물론 기본합의서 1, 2, 3, 4항까지 ‘투코리아’를 기본으로 하는 부분이 있다.

이렇듯 탈냉전 시기 남북관계의 현장에 있으면서 통일은 더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북한의 핵문제까지 불거지면서 통일이 더 어려운 길로 들어섰다. 당시 북한이 핵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자위수단으로 삼게 된 것은 김영삼 정부가 아니라 미국의 영향이 컸다.

조지 H.W. 부시 정부 때 미국은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전제로 한 북한의 수교를 거절했는데, 당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가 다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도 곧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련도 무너졌고 중국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할 때라 미국이 밀고 올라가면 북한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소위 북한의 급작스런 붕괴를 기회로 잡아서 밀고 올라가면 한반도가 통일된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인식이라면 곧 사라질 국가인 북한과 수교를 할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1991년 합의로 열리지 않았던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인 팀 스피리트가 1993년 재개됐다. 노태우 정부 말기 우리 국방부가 미국에 요청해서 훈련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에는 국방부와 미국이 결정한 뒤 알렸다고 하는데, 정권 교체기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에 수교 거절당하고, 훈련 재개되고 한국과 미국의 정권이 바뀌는 등의 변화가 생기자 확실한 자위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핵 개발로 넘어가게 됐다.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북한에도 그렇지만 남한도 핵개발을 못하게 묶어두는 것이었는데 북한이 살아남기 위해 자위 수단으로 핵 보유의 길로 들어서면서 통일은 커녕 대화가 제대로 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이런 상황에 대통령 주변에서는 북한이 망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해져 있었다. ‘북한 붕괴론’이 확산되면서 통일은 고사하고 평화 공존도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관계의 현실과 남한 정부의 입장을 보고 있으면, 어느 세월에 평화공존의 결정판인 남북 연합(Korean Commonwealth)까지 갈 수 있겠나 싶었다.

국제정세도 문제다. 남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다가 통일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동서독의 경우 동독의 뒤를 봐주던 소련이 무너지면서 동독도 무너지게 된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중국이 아무리 북한과 마찰이 있어도 여전히 북한의 뒷배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남한과 북한을 서로에 대한 완충 지대로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중 국가 이익 때문에라도 통일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박인규: 통일과 관련해 지난 2020년 「판문점의 협상가」 출간 당시 통일이라는 화두를 쉽게 버리기 어렵다, 이걸 버리는 순간 국민적 지지의 문제도 있다면서 통일이라는 주제는 굉장히 복잡하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평화 공존이 그나마 우리가 세울 수 있는 현실적 목표라고 본다. 2019년 「코리아 양국체제」 라는 책을 펴냈던 김상준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 교수도 통일을 이야기할수록 오히려 통일은 멀어진다고 주장한다.

남북 기본합의서에서 남북은 서로를 ‘특수관계’라고 규정했는데 독일은 1972년도에 기본조약을 맺었을 때 국가 간 관계라고 정의하고 서로 대표부를 만들었다. 이후 양측의 장관급이 상주했다. 또 1974년 미국과 동독이 수교했다. 1972년부터 최소한 10년 이상을 교류한 셈이다. 교류도 없고 전쟁을 한 우리와 매우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비하기가 어렵지만, 김 교수는 애초에 기본합의서를 체결했을 때 남북을 특수관계가 아닌 ‘양국 관계’로 규정했다면 더 진전된 걸로 볼 수 있지 않았겠냐고 평가한다.

통일이든 평화 공존이든 내부의 주체적 역량과 외부의 국제 정세가 맞아떨어져야 되는데, 1960년대는 우리 내부가 상황이 좋지 않았고 냉전도 강력했던 때였다. 1987년도에 그나마 좀 상황이 좋아졌는데 당시 김대중‧김영삼이 분열하면서 내부 정치가 어려워졌다.

이후 김영삼이 보수 진영으로 들어가면서 대통령 선거 당선을 위해 반북 정서를 일으켰고, 이처럼 온전한 민주진영을 만들지 못함에 따라 기본 합의서의 부속서도 못 만들고 국회 비준도 받지 못하는 반쪽 합의가 돼 버렸다는 지적도 있다.

또 미국이 1992년부터는 냉전 후에 시리아, 리비아, 이라크 이런 국가들을 손보기로 마음먹었고, 한국 정부 내부적으로도 노재봉 당시 비서실장 같은 사람들, 즉 북미 수교를 하면 안된다는 전략을 세우는 세력이 있었다는 점 등이 보다 진전된 남북관계로 가는 데 있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이걸 좀 확대해서 보면 김 교수는 촛불 혁명으로 온전한 민주 정부가 생겼고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하고 트럼프가 당선되는 등의 환경 속에 2020년 4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했다면, 9.19 평양공동선언이든 4.27 판문점 선언이든 국회 비준을 통해 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들었어야 했던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 ⓒ프레시안(이재호)

정세현 : 통일의 원심력과 구심력이라는 개념을 이용해서 이 문제를 풀어볼 필요가 있다. 통일을 해야하는 당사자 양측의 구심력이 커져서 서로 만나려고 할 때 이를 밖에서 잡아당기는 원심력이 줄어들면 통일은 된다. 독일의 경우 동서독 간 교류 협력을 통해서 통일에 대한 구심력이 커졌다. 그러던 와중에 원심력으로 작용해왔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련이 붕괴되면서 한쪽의 원심력이 없어지니까 미국은 서독 중심의 통일이 될테니 그대로 놔두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런데 유럽은 미국과 좀 달랐다. 영국의 대처 수상이 프랑스 대통령에게 소련의 고르바초프 주석을 만나자고 제안한다. 동서독이 통일되면 또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동서독을 떼어 내자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그런데 고르바초프는 “늦었다, 우리는 그럴 힘이 없다”고 해서 독일 통일의 원심력이 확 줄어버렸고 그래서 통일이 가능했다.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이 나올 때 남북 간 통일의 구심력은 없었다. 국제정세도 변했고 남북 간 성명을 만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김영삼 정부가 핵 문제 때문에 대북 정책이 조금 강경 쪽으로 흐르긴 흘렀지만 이후 김대중 정부로 넘어오면서 햇볕 정책 때문에 우리 사회 내부에서 통일의 구심력은 좀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당시 남한에서는 햇볕 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상당히 높았다. 1999년 6월 15일 서해에서 연평해전이 발생했을 때도 여론조사를 했는데 대북 정책에 대한 지지율이 83%를 기록하기도 했다. 반면에 북쪽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통일의 구심력이 점점 줄어들었다. 물론 2000년 6.15 정상회담을 하면서 외형적으로는 남북이 뭘 하는 것 같지만 김정일은 당시 ‘고난의 행군’이 끝난 이후라 남한이 도와주겠다면 그건 받겠다고 했는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본다.

이어 북한은 장마당도 열었고 2002년 7월 1일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추진하면서 ‘장마당 세대’라는 것이 생겨날 정도가 됐다. 그런데 이게 약 15년 정도 지나면서 북한 사회가 소위 ‘한류’에 영향을 받게 됐다.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 문화가 들어가니까 통일의 구심력이 나올법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집권층이 볼 때는 이거 큰일 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김정은은 이걸 막기 위해 남북 간 정상회담도 하고 공존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이나 9.19 평양공동선언이 나오고 9.19 군사분야합의서까지 만들어낸 것을 보면, 군사분야합의서는 어디까지나 서로 상대방을 건드리지 말자는 합의이고 군사적으로 불가침 선언을 한 셈인데, 정치적으로도 넘어 오지 말라는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이후 북한에서는 2020년 말에 북한에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한다. 이후 2021년 9월 ‘청년교양보장법’을 만들고 2023년에는 ‘평양문화어보호법’을 만든다. 여기에는 남쪽 문화 콘텐츠를 USB 등을 통해 가지고 들어와서 유포하면 사형, 단순 시청은 징역형을 내리는 것 등이 명시돼 있다.

남한 문화를 차단하고 소위 ‘백두혈통’인 김정은 원수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된다는 것을 청년들에게 강요하는 법인데, 이는 그만큼 청년들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겁이 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청년들 머리가 남쪽으로 넘어가게 두면 안된다는 판단이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독일의 통일 상황과는 좀 다르다. 현재 동북아시아에서는 중국의 힘이 점점 커지고 미국의 힘이 약화되고 있는데 미국은 밀리지 않기 위해 한국에 계속 남아 있고 싶어 한다. 사실 주한미군은 북한이 아니라 중국 압박을 위한 전진기지로 주둔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 입장에서도 북한이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남한에 흡수통일되면 미국이 지원하는 통일이 이뤄지는 셈인데, 이는 인중에 비수가 꽂히는 격이 된다. 미국의 압박 강도가 강해지면 중국은 북한을 놓을 수가 없다. 지금은 러시아에 맡기고 있지만 북한을 붕괴하지 못하도록 하고 통일을 반대하는 역할을 중국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북미 관계 개선도 통일의 원심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북한이 비확산을 약속하면 북미 수교도 가능할 수 있고 연락대표부 교환도 가능하다고 한다면 북한이 굳이 통일이라는 길을 생각할 이유가 없어진다.

임종석 제기한 평화적 두 국가론, 지속가능성은

박인규 : 임종석 전 실장의 발언을 두고 ‘종북’이다, ‘충북'(북한에 충성)이다 등등의 보수진영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세현 : 임종석 전 실장이 당분간 통일을 잊어버리고 평화 구축하고 통일은 30년 뒤에 세대들에게 맡기자고 했는데, 김대중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통일은 후세대에 맡기고 남북 간 교류협력을 활성화시키자 했다.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박지원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6.15 정상회담 당시 남측의 연합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를 합의하는 과정에서 남북 연합을 하면 30년 후 정도에는 통일이 될까 라고 이야기하니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50년이 지나도 어려울 거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임종석 실장 기념사 이후 만찬에서 만나서 맞는 말 한거라고 했더니 반색을 하더라. 다만 영토 규정한 헌법 3조 개정과 국가보안법 폐지는 너무 앞서갔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는데, 죽기 전에 통일되길 바라면서 국가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지금 와서 통일하지 말고 우리 영토 아니라는 식으로 내버리자는 것은 비판받기 쉽다.

물론 정치권으로 돌아오려면 그런 식의 충격요법을 써야 한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바로 다음날부터 김정은이 했던 적대적 두 국가 이야기를 따라갔다는 비판이 나오지 않나. 물론 김정은과 임종석의 텍스트를 갖다 놓고 나란히 보면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내부 구조는 전혀 다르다.

▲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김대중(왼쪽)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손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인규 : 임 전 실장의 “통일을 잊고 평화를 말합시다” 라는 것이 야당 대북 정책으로 합의가 가능할까?

정세현 : 그건 어렵다. 민주당 내에서 임종석 전 실장의 위상으로 봤을 때 저 주장이 맞다고 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친명계도 임종석을 비판하고 나서지 않았나.

통일 문제는 국제정치뿐만 아니라 국내정치와도 연결 돼있다. 민주당 입장에서 볼 때 윤석열 대통령의 8.15 독트린은 틀리고 임종석 전 실장의 주장은 맞다고 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지만 임 전 실장의 행보 때문에 역사적, 현실적으로 합리적이라고 하더라도 명분상 찬성하기 어렵기도 하다. 민주당으로는 괜히 ‘긁어부스럼’이 될 수도 있는 문제다.

박인규 :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쇠퇴하는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이 미국의 대리전쟁으로 가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식 가치와 제도를 지키지 않으면 없어져도 마땅하다는 식인데, 북한도 이렇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렇듯 대북 문제는 국제적 형세와 연관지어 갈 수밖에 없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지 않나.

정세현 : 우리나라는 국제정치나 외교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독자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김영삼 대통령은 본인은 미국이 시키는대로만 할 수는 없다는 정신은 있었는데 이를 뒷받침할 참모들이 없었다. 실제 외무부 장관과 외교안보수석 간 좀 불편하기도 했다. 외무부는 미국이 뭐라고 하는지 확인하고 대통령에게 이를 입력시키는 역할을 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친미적이다. 미국과 협조를 하면서도 우리 국가 이익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을 설득해서 끌고 갔던 대통령이기도 하다. 2008년에는, 중국이 G2로 올라서기 전인데도, 앞으로 우리 외교는 미국 중국과 사이에서 등거리외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종석 NSC 사무차장이 자주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종석은 우리 입장이 있으면 그에 맞춰서 미국을 설득할 부분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종석이 NSC를 떠나 통일부 장관으로 나오면서 남북관계가 한 발짝 뒤처지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 때는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2018년 9.19 군사분야합의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 합의서를 미국의 군사적 보호에서 벗어나려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화들짝 놀랐다. 작전 통제권이 자신들에게 있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10월에 한미 간 협의 조직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길래 발목 잡으려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결국 11월 한미 워킹그룹이 발족됐다. 그 이듬해 1월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를 급진적으로 발전시킬 것들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달에 남한이 북한에 타미플루를 보내려고 했는데 트럭의 출입이 안된다고 해서 결국 전달에 실패했다. 그 때 리어카라도 끌든지 지게라도 지고 갔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고, 결국 북한이 실망하게 됐다.

그해 2월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다.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2018년 6.12 싱가포르 회담의 연장선상에서 하노이 ‘빅딜’이 이뤄지면 남북관계, 북미관계 좋아지고 이럴 경우 일본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추구하는 외교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타격이 온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표적 네오콘 인사인 존 볼튼을 쑤셔서 회담장에 들어가게 하고 결국 회담을 결렬시켰다.

박인규 : 1991년 이후 남북관계는 집권세력의 교체에 따라 협조적 공존과 적대적 대결이 교차하다가 2020년 이후 특히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는 서방 대 비서방 간 대결이라는 국제 정세와도 연동되어 적대의 심화로 나타나고 있다.

2차 대전의 결과로 한반도가 해방됐고, 한국전쟁이 미소 간 냉전의 군사화를 초래했던 것처럼 한반도 상황과 국제 정세는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향후 민주당의 대북 및 대외 정책의 기조는 어떻게 돼야 하나?

정세현 : 임종석의 두 국가론을 기초로 하기는 좀 어렵고 그럴 필요도 없다. 이재명이든 누구든 대선 주자는 남북한 평화부터 정착 시켜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면 된다. 또 역대 정부가 계속 준중해 왔던 통일방안을 인정하면서 그 연장선에서 나간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대미‧대중 외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외교하면서 북한도 적당히 구슬리고 미국과 협조하면서 중국과 관계를 복원해 동아시아 지역에서 우리 문제를 주도권을 가지고 풀겠다는 선언 정도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정권 출범 이후에는 안보실장을 장관급으로 둘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장관급 실장을 앉혀놓으니까 이 사람이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장관을 지휘하게 된다. 안그래도 차관급인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NSC에 나와서 발언할 때보면 대통령의 생각을 이야기하니까 무게감이 있어 사실상 장관급과 같은 비중으로 인정되는데 여기서 장관급 안보실장이 있으면 어떻게 되겠나? 높은 자리 많이 만들 필요 없다. 차관급이면 충분하다.

▲9월 19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임종석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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